기자명 이숙영 기자
  • 입력 2021.05.02 08:55

한국, 사유리-젠 모자 계기로 법과 제도에 다양한 가족 형태 담기 위한 논의 본격화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젠 (사진=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젠 (사진=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뉴스웍스=이숙영 기자] "아이가 나중에 아빠를 궁금해 한다면 제게 가장 소중한 선물을 준 기프트(Gift)라고 소개하겠습니다." 

지난해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 상태로 '보조생식술'을 이용해 아이를 출산해 화제가 됐다. 사유리는 아이가 자라서 아빠에 대해 궁금해 할 때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아이에게 생물학적 정자 제공자에 대해 이같이 설명하겠다고 답변했다. 

사유리는 일본에서 비혼 상태로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비혼 상태로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해주는 병원이 없어 일본으로 건너가 임신과 출산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자발적 비혼모 사유리의 소식은 국내 MZ세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사유리와 그의 아들 '젠'의 방송 출연 소식이 알려지자 이에 반대하는 국민청원까지 올라오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해당 국민청원은 KBS 육아 예능 프로그램인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비혼 가정인 사유리가 출연하는 것은 비혼 출산을 부추겨 '건강한 가정'의 풍속을 헤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한국한부모연합,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비혼모 가정에 대한 혐오 중단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건강한 가정은 '형태'가 아닌 '관계'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며 "공영방송인 KBS는 우리 사회가 편견에 갇히지 않도록 새로운 가족 형태를 더 적극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사유리와 같은 비혼모에 대한 지지를 표현했다. 

비혼 출산에 대한 관심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4월 27일 여성가족부는 제4회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고 보조생식술을 이용한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논의를 추진한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브리핑을 통해 "최근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20대의 55%, 30대의 56% 정도가 수용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처럼 우리 사회의 (비혼 출산에 대한) 수용도가 높아져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송인 사유리와 아들 젠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지난 29일 예고편을 공개했다. (사진=슈퍼맨이 돌아왔다 예고편 캡처)
 방송인 사유리와 아들 젠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지난 29일 예고편을 공개했다. (사진=슈퍼맨이 돌아왔다 예고편 캡처)

◆작년 혼인 건수 사상 최저치…젊은 층 비혼 긍정적 인식 증가 

사유리 방송 출연 반대는 비혼 단독 출산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극명하게 드러난 경우다. 비혼 단독 출산 사례는 아직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지난 2008년 국내 1호 자발적 비혼모로 방송인 허수경이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출산한 바 있다. 당시 국내에서는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는 것에 대한 관련 법안이 없었기에 가능했으며, 비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부정적이었기에 거센 비판을 받았었다. 

다만 비혼 단독 출산은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비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충분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가족의 형태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혼인 건수는 21만4000건으로 전년 대비 10.7% 감소했다. 이는 1970년 혼인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다. 

젊은 층의 비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증가했다. 통계청의 2020년 사회조사에서 '결혼을 해야 한다'는 비율은 51.2%에 그쳤다. 특히 미혼 여성은 22.4%만이 '결혼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 2019년 실시한 '청년 세대의 결혼과 자녀, 행복에 대한 생각' 조사에 따르면 비혼·혼족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가 47.8%에 달했다. 향후 결혼 의향에 대해서는 '하고 싶지 않은 편 39.3%', '절대 하지 않을 것 8.0%'로 나타났다

비혼의 이유로는 남성의 경우 50%가 '조건이 어렵다'를 꼽았고, 여성은 25%가 ‘혼자 사는 것이 더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처럼 사회적·개인적 이유로 비혼이 증가하는 가운데, 비혼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비혼 상태로 아이를 가지는 자발적 비혼모 또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지난해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비혼 출산에 대해 찬성하는 의견은 30.7%로 8년 전보다 8.3%포인트 올랐다. 또한 '나도 비혼 출산을 할 수 있다'는 미혼 응답자도 4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캡처)
사유리의 예능 방송 슈퍼맨이 돌아왔다 출연에 반대하는 국민 청원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캡처)

◆여성 선택 강조한 '초이스맘'…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돼야

해외에서는 이미 자발적 비혼모를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임신과 출산을 선택한다는 의미의 '초이스 맘(Choice mom)'이라 부르며 분류하고 있다. 일본, 미국, 영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법적 부부뿐만 아니라 비혼모, 동성 부부 등도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보조생식술이 허용돼 파트너 없이 자유롭게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으며, 이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할리우드 스타 조디 포스터도 지난 1998년과 2001년 비혼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바 있다. 미국 내 18세 미만의 자녀가 있고 배우자가 없는 한부모 가정은 1100만 가구에 달하며, 그 중 850만 가구가 미혼모 가정이다.  

국내에서는 비혼 출산이 생소한 만큼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보호 제도가 미비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비혼·혼족에 대해 사회가 우호적이라는 응답은 7.4%에 불과했으며, 우리나라의 결혼 제도에 대해서는 '수정·보완해야 한다'는 응답이 80.5%를 차지했다. 

사회적 인식 또한 개선돼야 한다. 사유리 국민 청원에서 언급된 '건강한 가족'이라는 표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각에서는 남편과 아내, 자식으로 구성된 가정을 건강한 가족이라고 규정짓고 그 외의 가정의 형태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사유리씨의 출산은 출산과 임신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 화두를 던져줬다"며 "아직 국민적 인식의 변화를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은 우리 사회에 공존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 존중하고 이를 법과 제도에 담아내기 위한 논의를 진지하게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여가부는 오는 6월 비혼자 보조생식술에 대한 국민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정자공여자의 지위와 아동의 알권리 등 관련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제도 개선 필요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여가부가 추진하는 기본 계획의 목표는 모든 가족들이 차별받지 않고 함께 인권이 존중되고 보호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공감대를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나가고자 하는 것"이라며 "모든 가족들이 함께 정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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