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1.06.18 18:09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맞추지 않으면 될 일도 되지 않고,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그런데 지금, 자동차산업에는 아직 그 때가 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완성차 노조들이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나서 취업난에 신음하는 청년들의 불안만 키우고 있다.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지엠(GM) 완성차 3사 노조가 지난 14일부터 국민연금과 연계한 정연연장 국회 입법화를 위한 국민 청원운동에 돌입했다.

고령화로 인해 은퇴 이후 경제적 공백을 겪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이들의정년연장 요구는 얼핏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취업난에 괴로워하는 젊은 세대의 불안감을 키운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옷을 입을 때도 시간·장소·상황(TPO)을 고려하는 데,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년연장이라는 문제를 꺼내는데 있어 업계 종사자들이 업종과 시기, 상황 등에 대한 사려 깊은 생각이 부족했던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이들은 국민연금법에 따른 노령연금 수령 개시일이 도래하는 전년도 말일까지 정년을 연장해 달라 요구하고 있다. 60세면 한창 일할 나이일 뿐더러, 그 이후의 생계를 위해 60세 정년 이후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1~5년 사이의 공백을 정년 연장을 통해 매꿔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와 사회가 이를 수용하기에는 때가 적절치 않다.

현재 자동차 업계는 '전동화'라는 산업전환의 시기에 놓여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전기차 수소차 등 미래차를 중심으로 한 사업구조 개편에 나서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내연기관차 모델 수를 50% 가량 줄여 전기차에 역량을 집중하고, 향후 2040년에는 완전 전동화를 이루려 한다.

문제는 산업 특성상 전동화 과정에서 인력조정이 필수적 요소라는 것이다. 미래차는 기존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현저히 적고, 생산 공정도 짧아 필요한 인력이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국내 완성차 업체는 '강성노조'가 버티고 있어 소속 노동자들에게 인력조정의 '인' 자도 꺼내지 못하고 자연감퇴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그 가운데 정년연장까지 진행된다면 기업의 부담이 고스란히 신규 채용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지난달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상황에서의 정년연장은 젊은 청년들의 일자리를 줄어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직접 말한 바 있다.

젊은 세대는 그 불안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다.

자동차 3사 노조가 정년연장 국민 청원운동에 돌입한 다음날 3사 중 한 곳에서 근무 중인 MZ세대 현장직 사원이라고 밝힌 이가 "완성차 3개사 정년연장 법제화 청원에 반대한다"고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

그는 "정년연장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는 사회적 이슈인 청년실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아니라 더욱 야기하는 반사회적 정책"이라며 "기업은 산업이 변화되는 시기에 젊고 스마트한 인재를 확보하기 어려워 더더욱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청년층 확장실업률은 24.3%를 기록했다. 한창 일해야 하는 청춘 4명 중 1명은 실직상태인 것이다.

실업률 수치가 매년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 가운데 업계의 상황까지 고려하면 MZ세대가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그런데 노조는 정작 이를 두고 자신들의 요구를 저지하려는 '가짜뉴스'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자신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고용'의 경험조차 못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불안을 외면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면서도 기업이 청년실업 해소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소한의 체면치례를 하는 것으로만 비칠 따름이다.

정년연장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언젠간 반드시 심각하게 논의해야 할 문제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정년연장을 요구하고 있는 이들 역시 지금이 그 시의적절할 때인지 다시금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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