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장진혁 기자
  • 입력 2021.07.13 12:05

[뉴스웍스=장진혁 기자] "휴대전화 사업에서 철수하는 LG전자가 애플의 판매업체도 아닌데 왜 아이폰을 팔려고 하나요?"

LG전자가 이르면 8월부터 자사 가전매장인 LG베스트샵에서 애플의 모바일 제품을 판매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중구에서 휴대전화를 판매하고 있는 이동통신 대리점 업주 A씨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LG전자 입장에선 애플 제품으로 젊은 층의 가전매장 유입을 노릴 수 있고, 휴대전화 사업 철수로 불안정했던 매장 근무직원들의 고용 보장도 담보할 수 있어 이같은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LG전자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은데도, 벌써부터 업계 이곳저곳에선 볼멘소리가 들린다. 영세 이동통신 대리점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대기업이 자체 매장을 활용해 타사 제품을 판매할 경우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LG베스트샵 매장은 전국에 400여개에 달하는 만큼, 아이폰 판매가 이뤄지면 영세 이동통신 대리점들이 입을 피해는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LG전자가 전국 LG베스트샵에서 아이폰을 판매할 경우 2018년 5월 체결한 '이동통신 판매업 대·중소기업 상생협약'을 정면으로 위배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당시 이동통신 유통점으로 구성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협회와 동반성장위원회, 삼성전자, LG전자가 공동 서명한 상생협약서에는 '삼성전자판매는 삼성전자가 생산 또는 공급하는 모바일폰을, 하이프라자는 LG전자가 생산 또는 공급하는 모바일폰만을 판매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다만, 상생협약은 기업과 이동통신 유통업계가 자율적으로 맺어 판매를 제재할 방안은 없다.

그동안 LG전자는 중소기업과 상생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을 강조해왔다. 회사는 지난해 동반성장위가 발표한 동반성장지수 평가에서 최우수 등급을 받기도 했다. 만일 아이폰 판매를 강행한다면, 국내 대표 대기업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은 불가피하다.

이종천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 이사는 뉴스웍스와의 통화에서 "LG전자의 아이폰 판매설은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라고 표현하고 싶다"면서 "태풍처럼 자연스럽게 소멸되길 기대하고 있지만, 피해 예상 경로로 들어온다면 거기에 맞춰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만일 LG전자가 상생협약을 어긴다면 법률적인 문제는 없을지 몰라도 누가 봐도 상당히 실망스러울 수 있는 부분이기에 원만히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스마트폰 유통 경로가 늘어나는게 낯선 일도 아닐 뿐더러 특별한 구매혜택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가뜩이나 어려운 영세 이동통신 대리점들이 LG전자와의 경쟁으로 인해 도태되면 장기적으로 소비자 선택권을 저하시킬 것으로 보인다.

과거 휴대전화 유통시장은 판매점·대리점에서 이동통신 요금을 가입하면서 단말기도 함께 구매하는 '묶음 방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단말기를 따로 구매한 후 원하는 이동통신사에서 개통해 사용할 수 있는 '자급제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아이폰은 통신사 공시지원금이나 판매장려금 규모가 작아 자급제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커머스까지 유통망이 다양해 소비자 입장에선 딱히 LG베스트샵을 환영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영세 이동통신 대리점들은 공시지원금 혜택도 줄 수 있기에 LG베스트샵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결국 LG전자가 아이폰을 판매한다면 '애플 왕국'을 넓히는데 공헌할 첨병으로 전락할 것은 불보듯 뻔하다. LG전자가 휴대폰 사업 철수를 결정으로 LG폰 재고 처리에 고심할 때, 손을 내밀어 도움을 준 곳은 단연 영세 이동통신 대리점들이다. 이들과의 상생협약을 저버린다는 것은 곧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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