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1.07.17 11:30

'통합 모듈' 도입으로 각종 케이블 최소화…신한은행 '디지로그' 행보·성과 주목

디지로그 서소문점의 입구는 은행이 아닌 카페에 들어서는 느낌을 준다. (사진=안윤해 기자)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일렬로 배치된 칸막이 창구, 고객들의 늘어선 줄, 왠지 답답해 보이는 인테리어. 

지난 15일 기자가 문을 열고 들어간 신한은행 서소문 '디지로그(digilog)' 브랜치(지점)에는 익숙했던 은행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인근에 문을 연 이곳은 답답한 벽 대신 출입면을 유리로 만들어 카페처럼 개방감을 줬다. 일렬로 늘어선 창구는 사라지고, 안쪽에 개별 상담 공간만을 찾을 수 있었다. 각종 금융상품을 안내하는 자질구레했던 입간판과 서류를 작성하는 필경대도 없었다. 은행이라기보다는 이른바 '인싸'들이 자주 간다는 애플 스토어에 가까웠다.

지난 12일 신한은행은 서소문을 비롯해 서울 신한 PWM목동센터, 인천 남동중앙금융센터 등 3곳에 디지로그 브랜치를 열었다. 디지로그는 디지털(Digital)과 아날로그(Analog)의 합성어다. 신한은행은 아날로그 물건에 디지털 기술을 입힌 '미래 금융 공간'이라고 표현했다. 은행 관계자는 "디지로그 브랜치는 자동차로 치면 '콘셉트카' 같은 개념"이라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실험을 하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기자가 찾은 서소문 디지로그 브랜치는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82년 문을 연 기존 서소문점은 신한은행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점포였다. 서소문 디지로그 브랜치의 오픈으로 기존 서소문점은 문을 닫고 39년 만에 디지털로 새롭게 출발하게 됐다. 

정식 오픈에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해 7월 기존 서소문점 일부를 활용해 반년 간 디지로그를 선보인 바 있다. '소소하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꿔보자'는 취지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고객이 방문하고 영업을 하는 상황에서 '바꿀 수 있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는 설명이다. 새로운 장소에 브랜치를 차린 이유다.

신한은행 디지털전략부 관계자는 "(기존 서소문점에) 디지털데스크 한 두대 들여놓은 것으로는 변화라 할 수 없겠구나 싶었다"면서 "직무 체계나 업무 프로세스, 디자인 등 모든 것을 바꿔야만 고객이 '바뀌었다'고 느낄 것 같아 처음부터 다시 기획했다"고 말했다.

CX 라운지에는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원목 테이블 위로 뿌려지고 있었다. (사진=안윤해 기자)

디지로그 서소문점은 기존 은행과 아예 구조 자체가 달랐다. 크게 ▲CX Zone(고객 경험제공) ▲컨설팅 라운지 ▲컨시어지 데스크라는 세 가지 파트로 구성됐다.

출입문 바로 앞에 위치한 CX존에는 원형의 원목 테이블 위로 프로젝터가 다양한 화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나타난 화면에는 신한은행 캐릭터 '쏠(SOL)'과 '몰리(MOLI)'가 다양한 콘텐츠를 소개하고 있었다. 성격유형 검사인 MBTI를 활용해 16가지 금융 형태를 분석한 'SFTI(Shinhan Financial Type Indicator)', 고객을 성별·연령·세대에 따라 98개 유형으로 나눠 맞춤형 금융상품을 제시하는 '보통사람 보통금융'의 설명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CX존은 고객이 언제든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마련된 금융공간이다. 은행 관계자는 "오프라인 영업점의 가치와 경쟁력은 고객이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아니겠냐"면서 "처리해야 할 은행 업무가 없더라도 언제든지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부연했다.

컨설팅 라운지는 칸막이가 아닌 룸으로 만들어져 고객의 상담 내용에 대한 보안을 유지해 준다. (사진=안윤해 기자)

1층 안쪽으로는 상담 공간인 컨설팅 라운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일렬로 늘어선 창구 대신 프라이버시 글라스를 적용한 4개의 방으로 만들어졌다. 민감한 상담 내용이 옆에 들리는 것이 싫다는 고객 의견을 반영해 룸 타입으로 만든 것이다. 컨설팅 라운지는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만일 고객이 전문가 상담을 원할 경우는 화상을 통해 본사의 부동산·세무·외환 등 분야별 전문가와 상담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기존 창구에서 지저분하게 늘어서 있던 각종 케이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감 스캐너, 신분증 스캐너, 정맥인증기기, 핀패드 등을 하나로 묶은 통합 모듈을 시중은행 최초로 도입했기 때문이다. PC도 올인원 PC를 배치해 눈에 거슬리는 케이블을 최소화했다. 

컨시어지 데스크(왼쪽)는 고객 안내를 담당하며, 디지털데스크에서는 간단한 은행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사진=안윤해 기자)

2층으로 올라가자 소상공인을 위한 소호(SOHO) 컨설팅 라운지와 VIP를 위한 프리미어 라운지가 눈에 들어왔다. 

입출금, 공과금 납부 등 단순한 은행 업무를 위해 방문한 고객이라면 컨시어지 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아 키오스크나 디지털 데스크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사전에 상담 업무를 예약한 고객도 컨시어지 데스크에서 안내를 받은 뒤에야 컨설팅 라운지로 들어갈 수 있다. 

별도의 방으로 꾸며진 디지털 데스크에서는 본사 전담 직원과 화상을 통해 계좌 개설, 대출 상담 등이 가능했다. 증명서를 보낼 수 있는 스캐너도 마련돼 있어 비대면 업무를 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였다. 또 ATM기기도 일렬로 늘어선 것이 아니라, 원형 구조(셀프뱅킹존)로 새롭게 구성해 타인의 시선을 피할 수 있게 배려했다.

"은행 같지 않은 은행을 만드는 게 목표였죠."

신한은행 관계자는 디지로그 브랜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공간 하나하나에 스토리를 담아 고객에게 즐겁고 혁신적인 금융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면서 "디지털 기술과 휴먼터치가 결합된 디지로그 브랜치라면, 빅 테크와 차별되는 신한은행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서소문점을 나오면서 신한은행의 디지로그 브랜치 차기 작품이 어찌 발전할지 그려보면서 과연 고객만족 제고를 통한 영업성과 향상으로 이어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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