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5.09 15:45
북송 시대의 유명한 관료 범중엄. 공적인 자리에 있는 이들에게 세상의 사람들을 위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몸가짐을 지니도록 당부한 글로 유명하다.

중국 후난(湖南)성 웨양(岳陽 악양)이라는 도시에 우리에게도 제법 귀에 익은 누각이 하나 있다. 우리말로 읽으면 악양루(岳陽樓)다. 경치가 아주 빼어난 곳에 높이 솟아 있는 누각이라 퍽 유명하다. 그러나 경치로서만이 아니다. 그 누각을 새로 증축할 때 지은 문장이 더 큰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 문장을 지은 사람은 범중엄(范仲淹 989~1052년)이다. 북송(北宋)의 문인 관료지만, 이족(異族)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적지 않은 공을 세웠다. 북방 민족과의 싸움에서 걸출한 전략가의 면모를 드러내 상대로부터 “가슴에 수 만 명의 병사가 있다(胸中自有數萬甲兵)”는 찬사를 들은 사람이다.

그에게 ‘절친’이 있었다. 등자경(滕子京)이라는 동료 벼슬아치가 있었는데, 전쟁터에 함께 나섰다가 범중엄이 원군(援軍)을 보내 결정적인 도움을 준 적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둘은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戰友)이기도 한 셈이다. 그 뒤 둘은 벼슬의 세계에서 부침(浮沈)을 거듭하지만 주로 안 좋은 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등자경은 지금의 악양루가 있는 곳, 범중엄은 그 인근의 벼슬자리에 부임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신념대로 펼쳐갔던 개혁이 좌절의 운명을 맞으면서 지방의 한직(閒職)으로 함께 밀려나 있던 신세였다. 그러나 그에 꺾이지 않고 둘은 지방행정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데 힘을 쏟았다.

등자경이 당시에도 유명했던 악양루를 증축했다. 그 낙성(落成)을 기념하기 위한 글이 필요했다. ‘절친’이자 품성이 곧고 개혁의 의지가 충만했던 범중엄을 떠올렸다. 그에게 부탁해 나온 글이 바로 ‘악양루기(岳陽樓記)’다.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명문(名文)이다.

악양루 인근에 펼쳐진 둥팅후(洞庭湖 동정호)와 장강(長江)의 절경, 개혁에 좌절했지만 늘 국가와 사회를 생각하는 자신의 심사(心思)가 함께 어울리면서 비장한 느낌까지 던져준다. 그러나 이 글이 숱한 동양 고전 속에서 명문으로 꼽히는 이유는 마지막 단락에 있다.

나라와 사회, 백성을 위해 공직(公職)에 선 사람의 자세를 말하는 대목이다. 먼저 “어떤 일이 좋다고 기뻐하지 말며, 내 일로써 슬픔에 빠지지도 말아야 한다(不以物喜, 不以己悲)”고 운을 뗀다. 이어 “관아의 높은 자리에 있어도 늘 백성의 안위를 근심하며, 강호에 멀리 나가 앉았어도 임금을 걱정한다” “아울러 나아가서도 근심, 들어와서도 걱정을 그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언제 기쁠 텐가”라며 자문한 범중엄은 “세상에 앞서 그 근심거리를 걱정하며, 모두가 다 즐거워진 뒤에야 기뻐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아주 유명한 말을 적는다. 나라와 사회, 나아가 백성을 지극히 섬기려는 충정(忠情)이 엿보인다. 범중엄의 실제 인품과 행동이 그러했으니 더 빛을 발한다.

이제 새 특보와 비서진으로 곁을 정비하고, 나아가 일부 개각을 벌인 뒤 청와대가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일 작정이라고 한다. 새로 공직에 나서는 이에게 과도한 기대를 품지 않으련다. 그저 세상의 근심에 앞서 걱정을 깊이 하며, 사회의 모든 이가 기뻐한 뒤에 같이 기쁨을 누리려는 자세를 보이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한자 풀이>

憂 (근심 우): 근심, 걱정. 병, 질병. 고통, 괴로움, 환난. 친상, 상중(喪中). 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걱정하다, 애태우다. 고생하다, 괴로워하다. 두려워하다.

 

<중국어&성어>

先天下之忧而忧,后天下之乐而乐(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 xiān tiān xià zhī yōu ér yōu,hòu tiān xià zhī lè ér lè: 뜻풀이는 본문 참조. 현대 중국인의 입말에서도 매우 많이 쓰이는 구절로서 이제는 성어에 가깝다. 공직자의 기본적인 마음가짐을 이야기할 때 자주 쓴다.

心旷神怡(心曠神怡) xīn kuàng shén yí: 마음(心)이 밝고(曠) 기분(神)이 즐겁다(怡)는 뜻의 성어다. 역시 범중엄이 지은 ‘악양루기’에 등장해 성어로 정착한 말이다. “이 누각에 오르면 마음이 밝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맥락의 문장에서 나온 성어다. 쓰임이 많다.

范仲淹 fàn zhòng yān: 북송의 유명한 관료이자 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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