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남희 기자
  • 입력 2021.09.25 09:00

2024년까지 반도체 부족 지속 전망…8월 미국 신차 소비자물가지수(CPI) 사상 최고
전문가들 "공급망 다변화·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산 역량 확충해야"

현대자동차의 소형SUV 코나가 울산공장 생산라인에서 조립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라인에서 소형 SUV '코나'를 조립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

[뉴스웍스=김남희 기자]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차량용 반도체 부족난이 다시금 극심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수급 차질에 따른 생산 감소로 신차 가격의 상승 압박이 커질 것이라는 업계의 우려가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수급 차질이 지난달부터 다시 심화되고 있다. 

다수의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생산 업체가 위치한 말레이시아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의 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 수는 지난 5월 2500명대에서 지난달에는 2만명대로 8배가량 껑충 뛰었다.

현재 말레이시아 내 반도체 생산 공장의 가동률은 20%대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 등에 따르면 현지 반도체 업체 글로브트로닉스테크놀러지는 직원 3명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자 공장 두 곳을 수일간 닫았으며, 정상 가동까지 4주가 소요됐다. 말레이시아에서 반도체를 생산하는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시장 점유율 1위인 독일 인피니온도 이달 들어 부품 공급 업체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생산에 차질을 겪었다.

미국 반도체협회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반도체 생산량은 전 세계 시장의 7%를 차지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앨릭스파트너스는 지난 22일 올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신차 생산 대수가 약 770만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로 인한 손실 규모는 2100억달러로, 지난 5월 예상치 1100억달러의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각 글로벌 자동차 업체도 감산 계획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포드는 최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공장과 독일 쾰른 공장의 차량 생산을 일주일간 중단했다. 제너럴모터스(GM)는 미국 주요 공장들의 감산을 결정, 올 하반기 북미에서만 10만대의 생산 차질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도요타는 오는 9월까지 글로벌 생산 목표를 40% 하향 조정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당초 올해 하반기 점진적 회복세를 보이다, 내년 초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오는 2034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 다임러의 올라 켈레니우스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열린 'IAA 모빌리티 2021'에서 "반도체 수요·공급의 구조적 문제로 차량용 반도체 품귀가 내년까지 영향을 주고 내후년이 되어야 완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군나르 헤르만 포드 유럽이사회 의장도 "차량용 반도체 부족이 2024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도 반도체 부족의 영향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국내 업체 중 비교적 반도체 수급 상황이 원활한 현대자동차도 이미 이달에만 9~10일, 15~17일 총 두 차례 아산공장의 생산을 중단했고, 지난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 간 울산4공장의 가동을 멈춘 바 있다.

현대차의 판매량 역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8월 국내 5만1034대, 해외 24만3557대 등 전년 동월보다 7.6% 감소한 총 29만4591대를 판매했다. 이는 수요 감소보다는 생산 차질로 인한 차량 공급 감소가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생산 차질로 인해 차량 출고 대기 고객이 늘자 '아이오닉 5'의 경우 다른 모델로 전환 출고 시 할인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실시 중이다.

기아 역시 지난 7일 반도체 수급 차질 문제로 미국 조지아공장의 가동을 하루 중단했다.

올해 초부터 부평2공장을 절반만 가동한 한국지엠은 이달부터 부평1공장 가동도 50%로 줄였다. 한국지엠은 올해 상반기에만 반도체 부품 품귀로 8만대 이상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쌍용자동차 역시 부품 수급 차질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는 당초 계획 대비 8월은 약 10%, 9월은 약 20%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기아도 수익성이 높은 국내 공장 위주로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2분기에는 재고 판매가 전체 판매량을 방어했으나 3분기는 재고 판매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생산 차질이 판매 차질로 고스란히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품 공급망이 무너져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병목현상이 지속할 경우, 신차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업계는 예측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소비자와 시장을 고려해 당장 신차 가격을 올리지 않겠지만 생산 차질이 이어지면 이로 인한 매출 감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최근 TSMC 등 반도체 생산 업체가 제품가격 인상을 시사하고 있어 반도체 수급 차질과 가격 인상까지 이중고를 겪을 가능성도 높다. 여기에 자동차용 강판 등 다른 원자재 가격 상승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의 경우 신차 가격이 상승하는 추세다. 지난 14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8월 미국 신차 가격은 지난해 동월보다 7.6% 올랐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달 미국 신차 소비자물가지수(CPI)도 1947년 집계 이후 사상 최고치인 158.6pt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공급망 다변화 및 국내 차량용 반도체 생산 역량을 확충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앞서 올해 초 발발한 반도체 수급난 역시 MCU 파운드리 산업 시장 점유율 70%를 보유한 대만 TSMC의 공장이 멈추자 TSMC에 의존하던 많은 자동차 업체가 생산 차질을 빚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은 "국내에 '팹리스-파운드리-자동차' 업계 간 협력 산업 생태계를 조성해 해외 의존을 줄여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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