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1.09.28 14:54

"한국,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종합적 검토·논의 필요"

한국은행 본관 전경. (사진=뉴스웍스DB)
한국은행 본관 전경. (사진=뉴스웍스DB)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소비자물가지수에 자가주거비를 반영하는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은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종합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한은이 28일 발간한 '자가주거비와 소비자물가'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주요국의 주택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지난 7월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전략 점검 결과를 보면 2026년부터 유로지역 소비자물가지수(HICP)에 자가주거비가 반영될 예정이다.

자가주거비 이슈는 소비자물가지수 작성과 관련해 가장 어려운 문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는 소비자물가지수 내에서도 가중치가 가장 높은 항목으로서 주택임차료와 자가주거비로 구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비자물가지수 주지표에는 주택임차료만이 집세(전월세) 항목으로 포함돼 있으며 자가주거비는 소비자물가 내 집세지수를 의제해 보조지표인 '자가주거비 포함지수'에 반영되고 있다.

소비자물가의 정의에 비춰 볼 때 주택임차료는 임차주택 사용(주거목적)을 위해 실제로 지출한 금액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으므로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하는 데 논란의 여지가 없다.

다만 자가주거비는 자신의 소유 주택에 거주하는 데서 얻는 주거서비스에 대한 비용으로서 직접적으로 관측 가능하지 않다. 주택은 소비재(내구재)로서의 성격뿐 아니라 투자자산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데 국제기구의 CPI 매뉴얼에 의하면 투자자산 또는 자본재는 소비자물가 작성 대상에서 제외된다. 

자가주거비의 소비자물가 반영 필요성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소비자물가지수의 대표성 및 현실적합도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물가는 가계의 생계비 부담 변화를 제대로 측정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주거 점유형태를 보면 자가의 비중이 가장 크게 나타난다. 주요국의 소비자물가 내 주거비 비중을 보면 자가주거비가 소비자물가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국가의 경우 10%를 밑도는 낮은 수준이지만 자가주거비가 포함되는 경우에는 작게는 10%대 중반, 크게는 30%를 웃도는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소비자물가가 주거비 부담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경우 지표물가와 체감물가 간 차이로 인해 정책당국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가주거비를 소비자물가에 반영하는 데는 현실적인 제약요인도 적지 않다. 직접 관측되지 않는 자가주거비는 임대료 상당액 접근법, 사용자비용 접근법, 순취득 접근법 등의 방식으로 추정되는데 추정방법에 따라 자가주거비의 추정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 자가주거비 추정에 필요한 기초자료가 제때 이용 가능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자가주거비 반영 시 소비자물가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

이처럼 소비자물가지수의 편제목적, 주택시장의 특성, 기초자료의 이용 가능성 등에 따라 적절한 자가주거비 측정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보고서는 "가계의 생계비 측정 관점에서 보면 주택(스톡) 자체의 가격변화를 측정하는 순취득 접근법보다는 주거서비스의 가격변화를 측정하는 임대료 상당액 및 사용자비용 접근법이 바람직할 것"이라며 "임대료 상당액 접근법의 경우 주택가격의 변화가 소비자물가에 과도하게 반영되는 것을 제한하는 경향이 있어 상당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용자비용 접근법은 개념적으로 주거서비스의 가격변화 측정에 적합한 방법이나 기초자료의 수집이 어려운 데다 추정에 필요한 주요 변수의 설정 방식에 따라 자가주거비 추정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며 "스웨덴 등 주요국 사례와 같이 수정된 형태의 사용자비용 접근법을 이용할 경우 금리에 대한 민감도, 주택가격 반영도 등에 대한 조정이 어느 정도 가능한 측면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세 가지 측정방법에 따라 자가주거비 추정치 간의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 데다 주택가격 반영 정도, 통화정책의 물가에 대한 영향 등도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자가주거비의 주택가격 반영도가 높을수록 체감주거비와의 괴리가 축소되는 반면 변동성이 큰 주택가격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의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자가주거비가 금리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경우 통화정책의 의도와 물가가 상반된 방향으로 움직이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물가는 인플레이션 지표의 기능뿐 아니라 주요 경제지표의 실질화를 위한 디플레이터, 국민연금 지급액, 최저임금 결정 등 다른 국가정책의 준거로도 활용되는 만큼 자가주거비의 소비자물가 반영 이슈와 관련해서는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종합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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