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1.10.03 07:00

HUG, 유사 사업장 평균시세 적용 따라 인상 가능성…재건축 공급 늘겠지만 '현금부자만의 리그' 공고화 우려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조감도. (사진제공=서울시)
둔촌주공 재건축 단지 조감도. (사진제공=서울시)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영끌하지 말라는 정부말을 믿고 일해서 내집 사려다가 벼락거지된 무주택 가장이다. 지금 아파트값이 수도권 어디든 최근 1년사이에 거의 2배가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집값을 되돌릴 정책을 내놔도 용서받지 못할 정권이 Hug 분양가 심사기준 또 완화해서 분양가를 높이겠다니. 다 같이 죽읍시다. 열받아서 못살겠다. 무주택자 거지 만들어놓고. 분양가도 높이겠다? 가만히 안있겠다. 영끌하지 말라해서 기다렸던 무주택자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다"

자신을 15년차 무주택 가장이라고 소개한 A씨는 최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이 같이 울분을 토로했다.  

정부가 분양가 규제 개선을 본격화하면서 무주택 청약 대기자들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시세는 한껏 올려놓고 이제와서 분양가 규제마저 완화하면 분양가는 오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분양가 상승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청약 대기자들이 받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HUG, 고분양가 관리제도 개선…둔춘주공 등 재건축 단지 사업 추진 속도 붙을 듯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지난 2월 전면 개정됐던 고분양가 심사제도를 7개월 만에 일부 개선하겠다고 지난 29일 밝혔다. 주택사업자들이 인근에 신축 단지가 없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등 지역에서 비교 사업장 부족 등으로 분양가격이 예상보다 낮게 책정돼 분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HUG는 올해 2월 고분양가 심사제도를 한 차례 개편했다. HUG는 고분양가 관리지역에서 새 아파트 분양가를 인근 500m 이내에 있는 준공 20년 미만 아파트를 비교단지로 설정해 책정하고 있다. 분양가격이 이 시세의 90%를 넘어가면 분양보증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규제한다.

하지만 이 시세의 객관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다. 최근 분양 또는 준공된 신축 단지가 없을 경우에는 비교 사업장이 부족해 분양가가 과도하게 감소되기 때문이다. 이에 업계는 국토부에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을 요구해왔다.

고분양가 심사제도란 주택분양보증 심사업무의 일환으로 적절한 분양가 산정을 통해 고분양가 등으로 인한 미입주 사태 발생을 미연에 막기 위한 리스크 관리 방안이다. 

구체적으로 인근시세 산정 절차를 합리화하기 위해 단지 특성과 사업 안정성을 기준으로 인근 사업장을 평가하고 신청사업장과 유사한 사업장의 평균시세를 적용한다.

그간 심사평점 요건으로 비교 사업장이 부재한 경우 분양·준공 사업장 중 1개의 사업장만으로 심사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앞으로는 심사평점 요건을 완화해 분양·준공 비교사업장을 각 1개씩 선정해 비교 사업장 부재에 따른 심사 왜곡을 방지할 계획이다. 고분양가 심사결과 분양가가 현저히 낮은 경우 지역분양가 수준을 고려해 일부 조정하던 것을 앞으로는 해당 시군구나 시도 평균 분양가를 고려해 심사에 반영한다.

심사기준 개편안대로 추진될 경우 이전보다 유사한 단지들을 비교 대상으로 분양가가 책정돼 분양가가 더 높아질 수 있다. 수도권·광역시 등에서 1년 내 분양·준공된 사업장이 없어 낡은 구축과 비교되는 구조도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편으로 그동안 낮은 분양가로 수익성 실현이 어려웠던 일부 단지들에서는 주택 공급 움직임이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그동안 분양가 규제에 반발해 분양을 미뤘던 일부 재건축 단지에서는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불리는 서울 강동구 둔춘주공(1만2032가구)을 비롯해 서초구 신반포15차(641가구)·송파구 잠실진주(2636가구)·동대문구 이문1구역 재개발(2904가구) 등이 대표적이다.

힐스테이트 만촌역 투시도. (사진=힐스테이트 홈페이지 캡처)

9억 이상 주택 중도금 대출 제한…특공도 물량 배정 없어

문제는 집값 상승으로 사업장 인근 시세가 뛸만큼 뛴 상황에서 분양가가 덩달아 오를 경우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부담은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무주택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분양가 상승에 대한 우려와 반발이 확산되는 것도 당연한 귀결이다.

게다가 대출 규제가 여전한 상황에서 분양가 상승으로 청약시장은 현금부자들만의 리그가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 분양가가 9억원 이상 주택은 시중은행을 통한 중도금 대출이 제한된다. 또한 신혼부부·생애최초 등 특별공급 물량이 배정되지 않아 청년층에 돌아갈 몫 역시 적어진다. 

지난 9월 14일 1순위 청약을 받은 '힐스테이트 광교중앙역 퍼스트'의 경우 시행사가 아예 입주자 모집공고 때부터 분양분 전량에 대해 중도금 대출 알선을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자금이 부족한 서민 무주택자는 청약에 도전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HUG의 분양가 규제가 완화될 때마다 분양가는 상승했다. 지난 2월 HUG가 고분양가 심사 시 시세 상한선을 주변 시세의 70~80%에서 최대 90%까지 올렸다.

그러자 3월 대구에서 분양한 '힐스테이트 만촌역'의 평균 분양가는 3.3㎡당 2454만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갈아치웠다. 당시 업계는 HUG의 규제 완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다.

물론 국토부는 분양가 규제 완화에 따른 분양가 상승 우려는 기우라며 선을 그었다. HUG 고분양가 심사제도 개선과 분상제 개선은 분양가 인상 목적이 아니라 불합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영한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이번 개선 사항은 지자체별로 일관성 있게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서 업계의 예측 가능성을 침해하는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라며 "고분양가 관리제도도 입지나 브랜드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측면이 있어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분양가를 산출하도록 보완하는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양가 상승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 확정해서 말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현실화 요구가 일부 반영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무주택 청약자들을 위한 제도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분양가 상승으로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예상되는만큼 정부가 수요와 공급 사이에서 접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봤다.

대한부동산학회장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고분양가 관리제도 개선, 분양가상한제 심의기준 등 정책의 방향성은 바르게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부동산을 통제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자꾸 불만이 터져나오는 것"이라며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부의 대출 규제로 은행 도움 없이 중도금을 납부할 수 있는 사람만 청약에 몰릴 수 있기 때문에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일부 대출 규제를 느슨하게 해주는 등 '핀셋규제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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