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16.05.14 08:00
미국 대선을 둘러싼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높다.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나올 것인지, 아니면 미국 사회에서 극도로 금기시되는 인종차별 발언과 성희롱, 여성 비하를 서슴없이 내뱉은 사람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지 여부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확정된 트럼프는 당내 분란을 수습하는 한편, 거침없이 쏟아내던 발언의 수위를 점차 낮추고 있다.
이제 그는 부동층을 공략하기 위해 중원으로 진출할 준비에 착수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가 당선될 수 도 있다는 말에 코웃음을 치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가능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의 대통령 당선은 허황된 미래도, 요원한 현실도 아니다.
◆ 백인 정치 냉소주의자, 대거 투표소로 몰릴 수 있다
지난 2014년 치러진 미국 중간선거의 투표율은 36.6%이었다. 그 전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했던 2012년 대선에서도 53.6%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투표율이 낮기로는 미국만큼 유명한 나라가 없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미국의 투표율 순위는 전세계 주요 국에서 꼴지 수준이다. 자유민주주의 본고장인 미국의 현실이다.
투표율을 끌어내리는 가장 주된 요인은 바로 ‘정치 무관심’ 층의 극단적 정치 냉소주의다. 연간 소득 1만달러 이하의 저소득층의 투표율은 25%를 채 넘지 못한다. 먹고 사는 문제에 급급한 미국민들은 이미 정치를 외면한지 오래됐다는 이야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저소득층, 특히 ‘백인 하위층’이 대거 트럼프로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공화당의 예비경선 투표율을 보면 그 변화를 정확히 알 수 있다. 메인주는 지난 2012년에 비해 234% 증가했고, 공화당의 텃밭인 텍사스 주에서도 100% 투표율이 상승했다. 트럼프 효과는 그 동안 투표장에 나오지 않던 숨어있는 지지층의 관심을 이끌어낸 결과다. 그 현상이 11월 본선에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반(反)트럼프만큼이나 높은 반(反)클린턴 정서
미국 양당의 대선주자는 이제 정해졌다. 더 이상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의 맞대결 외에는 가능한 시나리오가 없다. 하지만 양당의 사정은 상반된 모습이다.
공화당 내부는 이제 ‘좋든 싫든’ 트럼프로 결집하고 있다. 트럼프를 날선 어조로 비판해 온 공화당의 최대 주주 폴 라이언 미 하원 의장마저도 이제는 트럼프의 손을 잡았다. 한때 트럼프의 대안으로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촉망받았던 마르코 루비오도 트럼프가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의 엘리트층이 트럼프에게 하나둘씩 승복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은 여전히 판세가 혼탁하다. 이미 대선주자로 지명되기 위한 매직넘버 확보를 코 앞에 두고 있는 클린턴이지만, 최근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버니 샌더스가 경선에서 압승하는 등 샌더스 돌풍이 식을 줄 모른다. 그만큼 여전히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는 클린턴이 아닌 샌더스를 선호하는 유권자가 많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제는 클린턴이 대선주자로 지명될 경우 과연 샌더스 지지층을 온전히 끌어올 수 있는지 여부다. 물론 트럼프와 클린턴 사이에서 클린턴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며, 샌더스 역시 민주당의 승리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샌더스가 아니면 둘 다 싫은’ 충성 지지층의 이탈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클린턴에 대한 정치적 피로도가 높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과 NBC방송이 함께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클린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51%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퍼스트레이디부터 상원 의원, 국무부 장관 등 20년이 넘는 현실정치 경력을 보여준 반면, 이렇다 할 업적이 없어 이미 클린턴은 ‘식상한 후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설명하기도 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이른바 ‘이메일 스캔들’ 수사도 또 하나의 변수다. 오는 11월까지 대선 일정은 5개월이나 남았다. FBI는 단순한 보안조사가 아닌 ‘수사’ 차원에서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다루고 있다고 밝혀, 앞으로 더 강도 높은 수사가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클린턴이 월가 금융자본가들을 편드는 발언을 했다는 증언도 있어 ‘이중성’ 논란에도 휘말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까지는 여전히 클린턴의 가능성을 더 높게보는 시각이 다수다. 각 주별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형태의 선거제도인만큼, 클린턴이 오하이오·아이오와·플로리다 등에서 이기면 전국적으로 더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추격도 만만치 않아 미국 대선은 그 혼란이 더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트럼프의 이미지는 개선될 여지가 많은 반면, 클린턴은 현재의 우위를 지키는 데 급급해 '무리수'를 둘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