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1.11.19 19:05

1~2인 가구용 원룸·빌라 공급 집중 '미스매치' 심각…이은형 "계약갱신청구권 끝난 집 나오면 시장 혼란·가격 상승"

1983년 준공된 영등포 A 아파트. (사진=전현건 기자)
1983년 준공된 영등포 A 아파트.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정부가 무주택 서민을 위해 전세가격을 잡겠다고 지난해 11·19대책을 내놓은 지 1년이 흘렀지만 매물은 씨가 마르면서 거래절벽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한 전셋값 급등으로 세입자 고통만 가중되는 부작용이 확산되는 실정이다. 부동산 가격 상승, 임대차보호법 시행 등으로 발생한 전세난 해소 차원에서 마련한 정부 대책이 의도한 정책 효과를 내기는커녕 정반대의 파장을 낳은만큼 서민을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 10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0.25% 상승했다. 이는 11·19 전세대책 발표 직전 1년(2019년 11월~지난해 10월) 상승률(5.02%)의 2배가 넘는 수치다.

전세난이 심각한 수도권의 경우 지난해 5월 0.22%에 그쳤던 아파트 전셋값 상승률이 새 임대차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시행을 계기로 급등하면서 같은 해 12월에는 1.33%로 치솟았다. 올해 2월 3기 신도시 공급계획 등이 포함된 2·4대책이 발표되면서 상승세가 둔화했다가 6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계기로 다시 급등한 뒤 좀처럼 진정되지 않고 있다.

전셋값이 이처럼 고공행진을 보이는 까닭은 한마디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임대차법이 개정되면서 계약갱신권을 활용해 2년 더 전셋집에 머무르는 세입자가 늘어나면서 시중의 전세 매물은 크게 줄었다. 또 다주택자 규제 강화 방침에 늘어난 보유세를 충당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한다거나 실거주 요건을 채우려고 전세로 내놨던 집에 직접 들어가는 집주인이 늘면서 세입자가 갈 곳은 더욱 찾기 어려워졌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1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501건으로, 새 임대차법이 시행된 지난해 7월 30일(3만8427건)에 비해 20.6% 감소했다. 최근에는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까지 맞물리면서 전세 거래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19대책에서 공공임대 건설을 늘리고, 기존 주택을 매입해 전세를 주거나 호텔과 오피스텔 등 비주택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내년까지 11만4000가구의 전세를 신규로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예정된 물량이 쏟아지더라도 정부 부동산 대책의 근본적인 정책 변화 없이는 전세난이 해소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세가격을 잡으려면 방법은 딱 2가지로 보인다. 집값을 안정화하거나 신규 주택을 많이 공급해야 하는 것"이라며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해 봤을 때 둘 다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전세난이 올해처럼 반복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특히 새 임대차법으로 계약이 연장된 기존 임대차계약의 만료가 돌아오는 내년 8~9월 이전부터 전세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지금의 전세 대란이 1 라운드라면 내년 하반기부터 계약갱신청구권이 끝난 전세주택이 시장에 나오면서 시장 혼란과 가격 상승이 되는 것은 2라운드가 될 것"이라며 "다음 정부에서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가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지난해 전세대책을 통해 내년까지 11만41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계획한 목표 공급 물량은 7만5100가구다. 주로 공공임대 공실활용(3만9100가구), 신축 매입약정(2만100가구), 호텔 등 비주택 공실 리모델링(600가구) 등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공급된 물량은 6만1000가구다. 목표치(11만4000가구)의 81.2%를 완료한 셈이다. 공실임대 활용으로 4만6000가구가 공급됐고, 나머지 3개 유형에서 1만5000가구가 매입됐다.

정부는 공급정책이 성과를 냈다며 뿌듯해 하는 모습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7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10월 기준으로 올해 공급 목표 중 81.2%인 6만1000가구가 공급됐다"며 "전세시장 수급 안정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공급계획 물량만 지켰을 뿐 전셋값은 지키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아파트를 원하는 전세 실수요자들의 요구와는 달리 정부가 내놓은 전세대책은 1~2인 가구용 원룸이나 빌라 공급에 집중돼 시작부터 '미스매치'가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물량 공급과 양질의 주택 공급은 엄연히 다른 것"이라며 "시장에선 정부의 자화자찬을 섞인 평가를 인정하기 힘들다. 전세시장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월세로 전환한 수요도 있기 때문에 절대 안정세일 수가 없다"고 평가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에서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39.9%에 달한다. 전년 동기의 30.1% 대비 9.8%포인트나 높아졌다. 종합부동산세 등의 부담이 커진 임대인들이 전세를 반전세나 월세로 돌리면서 월세 거래량은 지난해 4만8260건에서 올해 5만4000건을 웃돌며 6000건 넘게 증가했다.

송 대표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물량보다도 전세대책에 나와 있는 '다세대' 혹은 '오피스텔, 모텔'을 개조한다든지 요런 중심의 공급방안"이라며 "정부가 안정세로 자꾸 말하면 수요저들에 대한 원성만 들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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