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1.12.02 10:40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국가 안보에 있어선 여야가 따로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대선을 치르는 내년에 쓰여질 국방 예산안을 살펴 보면 군인들 표심 얻기에 있어선 여야가 한몸이란 생각이 든다. 

신무기 구입과 개발에 쓰는 '방위력 개선비'가 2007년 국방 예산에 편성된 이래 15년 만에 처음으로 국방예산에서 삭감됐다. 심지어 역대 최대폭이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16일 국회 국방위원회 예산심사에서 방위력 개선비 6122억원 감액이라는 초유의 예산 다이어트를 당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2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확정이 될 예정이다.

주요 예산 삭감 대상은 경항모(67억원), 조기경보기(3283억원), 대형공격헬기 추가 도입(154억원), F-35A 전투기 성능개량 사업비(200억원) 등이다. 

눈에 띄는 사업은 단연 피스아이(공중조기경보통제기) 도입과 F35 스텔스 전투기 개량이 좌절된 것이다. 피스아이는 적 전투기와 미사일 발사 움직임을 사전에 포착해 지상기지에 보고, 사전 무력화하는 핵심 전력이다. F35는 유사시 북한 핵·미사일·레이더 기지를 타격하는 첨단 전투기다. 

피스아이 도입에 대해선 여야는 일심동체가 된 듯 대폭 삭감했다.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비용이 과도하다"며 포문을 열었다. 신 의원은 "지금 미국·스웨덴·이스라엘 여러 가지가 있는데, 미국 측에서 과도하게 올린 것 아니냐. 상호 호환성을 높일 수 있어서 (미국의) E-737을 사는 게 좋다거나 이런게 정리가 안 된다"고 말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쟁 기종들과의 경제성 이런 것도 다시 봐야 된다"며 맞장구를 쳤고 기동민 소위원장은 "(가격) 협상력 제고를 위해 국회에서 시원하게 다 삭감해드리겠다"고 호응했다. 신형 조기경보기 사업은 결국 사업비 2600만원 만 초라하게 남은 채 3283억원이 증발됐다. 

예산의 효율적 편성이야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북한의 대량 살상 무기인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해 줄 '전략무기' 도입 지연이 불가피해졌다는 측면에서 우려가 적지않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경항모 사업은 김영삼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해군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예산 삭감 철퇴'에서 피할 수 없었다.

경항모 전단은 독도와 이어도를 포함한 한반도 해역에서 안보 위협과 분쟁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다목적 군사기지'로 꼽힌다. 하지만 여야는 "경항모 운용 목표가 명확하지 않고 적의 공격에 격파될 위험이 있다"며 72억원 중 달랑 5억원만 배정했다. 이에 대해 해군은 삼군 중에 유일하게 예산 삭감에 반발하며 경항모 건조 사업 예산의 증액과 사업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반면 장병 복지·수당 등 전력 운영비는 2158억원 늘었다. 여기에는 병사 면도기 등 개인용품 지급 증액, 장교·부사관 주택수당 증액, 육군훈련소 생활 여건 개선 등 장병 보건·복지 향상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다. 

특히 장병 개인용품 지급 예산이 112억원 증액됐다. 이는 정부안에서는 당초 물품으로 지급하기로 했던 면도기와 면도날을 장병 선택권과 만족도를 높인다는 이유로 현금 지급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당초 16억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했던 면도기·면도날 관련 예산이 128억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방위력 개선에 집중돼야 마땅할 국방 예산이 장병 복지에 투입된 모양새다. 덕분에 그동안 지켜온 문재인정부의 '자주국방 강화'란 구호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됐다.  

물론 문 정부 들어 국방예산을 줄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2020년도 2차 추경 편성 때 1조4759억원이 삭감됐다. 지난해 7월 3차 추경 때도 2978억원을 줄인 바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재난지원금 마련을 위해서였다. 

이런 전력이 있으니 내년 대선을 앞두고 '매표'를 노리고 '군퓰리즘' 예산 확보 차원에서 방위력 개선비를 칼질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국방예산도 성역일 수는 없지만 재난지원금이나 장병 복지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나라 안보와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방위력 개선비를 함부로 줄이는 것에는 신중을 기해야한다. 더구나 방위력개선비는 국방중기계획에 따른 중장기 예산이다. 고무줄처럼 예산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서 '엿장수 마음데로' 편성할 경우 국가 안보에 커다란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표와 안보를 바꿀 순 없다. 핵심 국방예산이 이런 식으로 삭감되는데도 서욱 국방부 장관은 한마디 말조차 없다.

각군 참모총장들은 국회와 방사청에 쓴소리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이 해군 페이스북에 경항모 예산 삭감에 대한 유감과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부 총장은 지난달 25일 해군 누리소통망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 해군은 국가의 안정과 번영이 바다에 있음을 인식하고 전방위 안보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미래 핵심전력인 경항공모함 사업이 정상적인 절차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가운데 반드시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며 "이제 군사력은 대북 억제력뿐만 아니라 전방위 위협에 대비할 수 있도록 건설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런 절실함이 통했는지 여당이 지난 1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43억원을 추가 편성하면서 기존 입장을 바꿔 좌초 위기에 있던 경항모 사업이 부활의 불씨를 되살렸다. 해군의 과감한 목소리가 없었다면 5억원만 살아남아 유명무실해질 사업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육군과 공군도 나서야한다. 총장들이 입을 닫는다면 군인으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 방위비가 선심성 공약보다 표심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그냥 깎을 일이 아니라고 목놓아 소리쳐야한다.

이제라도 방위비를 정상적으로 원상복구시켜야 한다. 병사들도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면도기 예산을 반납할 테니 무기 구입에 사용해달라"고 요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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