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2.01.04 19:06

재판부 "백신 접종 강제, 충분한 합리성·정당성 갖췄다고 할 수 없어"…복지부 "즉시항고할 예정"

경기도 용인 소재의 태권도 학원에서 KT 랜선에듀를 이용해 태권도 교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KT)<br>
경기도 용인 소재의 태권도 학원에서 KT 랜선에듀를 이용해 태권도 교습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KT)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법원이 방역패스(백신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학원과 독서실 등에 적용하려는 정부 정책에 급제동을 걸었다.

본안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해당 시설에 방역패스 적용을 중단해야한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방역패스를 둘러싼 갈등 속에 백신 미접종자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첫 판단으로 오는 10일부터 정부가 백화점과 마트에까지 방역패스를 확대적용하려는 시점에서 나온 결정이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방역패스 헌법소원 사건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재판장 이종환)는 함께하는사교육연합·전국학부모단체연합 등이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를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에 포함하는 것을 멈춰달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4일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3일 보건복지부가 내린 특별방역대책 후속조치 중 학원 등과 독서실, 스터디카페 등을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로 포함한 부분은 행정소송 본안 1심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효력이 일시 정지된다.

보건복지부가 설정한 방역팩스 의무적용 시설에는 학원은 물론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시설·직업훈련기관, 취직·자격시험 학원도 포함되어 있다.

청소년 대상 방역패스는 3월 1일 시행되는만큼 당장 이번 결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성인이 학원이나 독서실 등을 이용할 때 방역패스를 제시하도록 한 조치는 이날부터 효력을 잃는다.

재판부는 방역당국의 결정이 백신 미접종자에게 회복하기 힘든 손해를 끼친다고 판시했다. 정부의 방역패스 의무적용 정책이 학습권과 자기결정권을 제한할 정도로 합리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사실상 방역패스에 위헌 소지가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재판부는 "(보건복지부의) 처분은 사실상 백신 미접종자 집단이 학원·독서실 등에 접근하고 이용할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며 "미접종자 중 학원·독서실 등을 이용해 진학·취직·자격시험 등에 대비하려는 사람은 학습권이 제한돼 사실상 그들의 교육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등을 직접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백신 미접종자라는 특정 집단의 국민에 대해서만 시설 이용을 제한하는 불리한 처우를 하려면 객관적이고 합리적 이유가 있어야 한다"며 "백신 접종자의 이른바 돌파 감염도 상당수 벌어지는 점 등에 비춰보면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커지던 시점인 작년 12월 중순께 12세 이상 전체 백신 미접종자 중 코로나19 감염자 비율이 0.0015%이고 같은 연령대 백신 접종자 가운데 코로나19 감염자가 0.0007% 정도로 두 집단 모두 감염 비율 자체가 매우 낮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두 집단의 감염 비율 차이가 현저히 크지 않아 감염 비율 차이만으로 백신 미접종자 집단이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훨씬 더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 치료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는 백신이 국민 개개인의 코로나 감염과 위중증 예방을 위해 적극 권유될 수 있다고 보인다"면서도 "그런 사정을 고려해도 미접종자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존중돼야 하며 결코 경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청소년의 경우 중증이나 사망에 이를 확률이 현저히 낮다"며 "감염으로 인한 위험성이 현저히 적은 것으로 드러나는 상황에서 청소년층의 감염가능성과 가족구성원과 지역사회에 전파할 가능성을 방지해야한다는 명분 아래 청소년에게 학원·독서실 등 이용을 제한하는 중대한 불이익을 가하는 방식으로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제하는 것은 청소년의 신체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직접 침해하는 조치이어서 충분한  합리성과 정당성을 갖추었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이번 결정을 내리면서 헌법 제10조 행복추구권, 헌법 제11조 평등원칙, 헌법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 등의 법리를 검토했다고 전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날 "법원 결정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즉시항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방역패스 적용 집행정지 판결에 불복하는 의미를 지닌 즉시항고 여부를 이르면 5일 결정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정부는 성인 인구의 6.2%에 불과한 미접종자들이 12세 이상 확진자의 30%, 중증환자 사망자의 53%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 시기에는 미접종자의 건강상 피해를 보호하고 중증 의료체계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방역패스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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