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1.23 12:05

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앞두고 경영·노동계 '우려'…김태기 "노동자 숙련도·전문성 높여야만 산재 감소"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가 안전고리를 결합하고 있다. (사진=뉴스웍스 DB)
공사 현장에서 노동자가 안전고리를 결합하고 있다.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시행이 임박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모호한 표현 때문에 '여론 재판'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고, 많은 노동자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법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이달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이 사업장 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근로자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경영책임자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경영책임자 대상 처벌을 강화해 산업 현장 전반으로 안전문화를 확산하고,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노동자 안전권을 보장하기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경영계는 이같은 입법 취지엔 동감하지만, 법률 규정이 불명확해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의무 주체 및 이행 방법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 없는데다 모호한 표현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령 사업주 안전·보건 확보 의무 중 '업무 총괄·관리 전담 조직 설치'에 관한 고용노동부 해설서를 살펴보면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규모 등을 고려한 합리적 인원으로 구성'하라고 적혀 있다. 관련 예산 편성에 대해선 '사업 또는 사업장 재정 여건 등에 맞춰 합리적으로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라고만 써있다. 안전·보건 확보를 위해 필요한 '합리적' 조치들의 기준은 알아서 판단하라는 식이다. 

처벌 대상에 대한 설명도 구체적이지 않다. 중대재해처벌법 2조 9호에 따르면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란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다.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은 회사의 대표 등으로 해석되지만, '이에 준하여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이 때문에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여론이나 정치적 필요에 따라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난 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서 열린 '제2차 중대재해 산업안전 포럼'에서 "중대재해처벌법령이 가지고 있는 불명확성이 매우 크다. 의무 주체 및 의무 이행 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횡행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며 "예방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주체가 어디인지, 누가 경영 책임자인지 모호하다. 사업장이나 장소를 지배·운영·관리하는 자가 각각 다를 경우 누가 예방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원청이 예방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하청이 해야 하는지 불명확한 경우도 많다"고 꼬집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화정현대아이파크 공사 현장 앞에 시민들이 몰려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노동계는 여전히 적지 않은 노동자가 법의 사각지대에 남아있는 점을 문제 삼는다.

27일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은 2년 유예기간을 둬 오는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을 고려해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중대재해의 대부분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지난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 828명 중 668명(80.7%)이 50인 미만 사업장에 속해 있었다.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 5인 미만 사업장에서만 317명(38.3%)의 사망자가 나왔다. 

직업성 질병의 범위에 뇌심혈관 질환 등이 빠진 점, 소위 '바지 대표이사'를 내세워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피할 수 있다는 점도 노동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김태기 일자리연대 집행위원장(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은 "처벌만으로는 절대 산재 사고를 줄이지 못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은 현시대에 맞지 않는 구식 법으로, 도입 의미가 없다"며 "처벌이 너무 무거우면 사고를 은폐하고, 책임을 외주나 하청으로 떠넘기는 경우만 늘어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산재 사고율은 미국·독일 등 선진국의 4분의 1 수준이지만, 사망률은 4배가량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본질적인 해결책은 노동자의 숙련도와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라며 "어려운 직무에 대해선 그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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