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02.07 14:00

허희영 "정부, 기업 경영 개입보다 지속가능한 기금 운용 개혁 집중해야"
최광 "세계 투자업계, 한국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정부, '선수'로 뛰고 있어"

(사진=국민연금)
(사진제공=국민연금)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국민연금이 대표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권한을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일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수탁위는 근로자 추천 3인, 지역가입자 추천 3인, 사용자 추천 3인 등 총 9인으로 구성된 자문기구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7일 오후 전경련 회관에서 '국민연금 대표 소송,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가' 좌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좌담회에는 최광 한국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허희영 한국항공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

대표소송은 회사의 이사가 법·정관 위법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국민연금과 같은 주주가 해당 이사에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뜻한다. 현행 지침에서 국민연금 대표소송 결정 주체는 원칙적으로 기금위가 맡는다. 기금위가 처리하기 곤란한 사안, 수탁위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이 수탁위에 회부할 것을 요구한 사안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탁위에 판단을 넘긴다.

현재 국민연금은 이원화된 대표소송 제기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2월 중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 활동 지침' 개정안을 심의·의결할 예정이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노동·시민 사회단체 추천 위원 위주로 구성된 수탁위에 대표소송 결정 권한이 넘어갈 경우, 기업 경영이 과도하게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태신 전경련 부회장은 "정부는 그간 국민연금이 기업을 감시·규제하는데 걸림돌이 되어 왔던 제도들을 꾸준히 제거해 왔다. 대표소송 제기는 이러한 기업 지배의 최종 마무리 단계"라며 "수탁위 결정으로 실제 소송이 이뤄진다면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대부분 상장사를 통제하는 무소불위의 기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희영 총장은 "국민연금이 소송에서 질 경우 장기간에 걸친 소송 비용으로 기금의 주인인 국민만 피해자가 된다"며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소송 자체로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고 주가가 떨어진다. 기업, 연기금 모두 손해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허 총장은 국민연금 대표소송 제기가 기업에 미칠 부정적 영향도 우려했다. 그는 "10년 전 경영 활동에 대해서도 소송이 가능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이 커진다. 이는 결국 기업의 투자 위축, 소극적⸱보수적 경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경영권 방어 수단이 없는 우리 기업 환경에서 국민연금의 대표소송을 계기로 한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 또한 한층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광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의 지배구조상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기금운용에 있어서 '감독' 기능만 해야 하는 정부가 직접 '선수'로 뛰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장관이 위원장인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투자정책전문위원회와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설치되었다. 두 위원회마다 3명의 상근전문위원 임명을 복지부가 관장함에 따라 복지부가 선수로 뛰는 체제가 완벽히 마련된 셈"이라며 "이는 해외 연기금이 세계 최고의 투자 전문가를 거느리고 하루 24시간 자산 운용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특정 시만단체나 노조 역시 위원회에 직접 참여하거나 이들의 임용에 영향력을 크게 행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사례"라며 "각국 정부를 훤히 들여다보는 세계 투자업계가 우리 기금운용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들은 국민연금 대표소송 제기 방침을 철회하고, 국민연금기금이 지속가능하도록 시급히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기업 내부에 문제가 있거나 기업 수익성이 낮으면 투자를 회수하면 된다"며 "정부나 기금운용 전문가 모두 기업 경영 전문가가 아니다. 경영에 개입할 수 없고 개입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허 총장은 "국민이 맡긴 노후자금을 기업인을 혼내고 벌주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 대표소송을 통한 기업 경영 개입보다는 지속가능한 기금 운용을 위한 제도 개혁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며 "지금 국민연금을 내고도 받을 돈이 없는 30대를 생각해야 한다. 정부가 국민연금 개혁을 미룬다면 기금의 존립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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