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2.02.12 07:30

여야, 추경 대규모 증액 요구…정부, '국채 시장 악영향·물가 자극·신용등급 하락 우려' 반대

(이미지제공=픽사베이)
(이미지제공=픽사베이)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정부가 14조원 규모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가운데 여야에서 대규모 증액 목소리가 거세다. 정치권에서 소상공인 지원 등을 위해 더 많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는 물가 및 국채시장 악영향 등을 우려해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는 국채 추가발행분 11조3000억원, 공공자금관리기금 여유재원 2조7000억원을 조달해 14조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추경안 편성으로 국가채무는 본예산 대비 11조3000억원 증가한 1075조7000억원(GDP 대비 50.1%)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연이은 추경 편성으로 인해 국가채무가 급격히 불어나면서 재정당국은 증액 반대입장을 고수 중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출석해 "1월 추경도 이례적"이라며 "통상적인 감액이나 증액 논의는 가능하지만 35조원, 50조원과 같은 규모는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정부안을 존중해 달라"며 대규모 증액에 지속적으로 선을 긋고 있다.  이 같은 재정당국의 추경 증액 반대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답답하다. 솔직히 화가 나기까지 한다"며 날을 세웠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여야가 큰 틀에서 해보자하면 검토하겠지만 무조건 몇십조원을 어디에서 짜내라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한 요구"라며 국회에 대규모 증액에 따른 재원을 마련해 올 것을 요구했다.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국채를 발행해 충당하자는 입장이지만 야당인 국민의힘은 세출 구조조정을 통한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오는 15일 이전에 추경안을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으나 국채 발행을 두고 여야간 이견을 보이면서 기한 내 처리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민의힘은 국채 발행이 아닌 세출 구조조정을 해야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류성걸 국민의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는 지난 11일 "추경을 앞두고 정부와 민주당이 무분별한 국채 발행을 사실상 주장하고 있다"며 "2000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 악화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이번 추경안 재원을 위해 11조3000억원의 국채발행을 주장하고 민주당 정책위에서는 20조원에서 최대 33조원에 이르는 국채 발행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무분별한 국채 발행은 금리상승을 가져오고 물가상승을 가져오고 국가와 가계부채를 증폭시켜 서민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부총리도 증액을 반대하는 이유로 '물가에 미치는 영향, 국채시장 영향, 신용등급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내세우고 있다. 

추경 재원 마련을 위해 적자국채가 발행된다면 시장금리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실제 여야에서 증액 논의가 활발하던 지난 8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2.303%로 2.3%를 상회했다. 2018년 5월(2.312%) 이후 가장 높았다. 국채금리가 빠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한은은 국고채 추가 단순매입, 통안채 월별 발행물량 조절 등을 적기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추경에 따른 국고채 발행분을 최대한 균등 발행해 시장 안정화에 나설 방침이다.

국채금리 상승은 대출금리 인상을 유발한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코픽스 금리(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한다. 코픽스 산출의 기준이 되는 은행의 자금조달원에는 정기예·적금, 주택부금, CD, 금융채 등이 포함되는데 이들이 국채금리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코픽스가 은행권 변동금리 주담대의 기준인 만큼 국채금리가 상승하면 결국 가계와 기업의 이자부담도 커지게 된다. 최근 연속된 기준금리 인상에 더해 국채금리 상승분까지 더해지면 가계 부담이 가중되는 것은 자명하다.  

고공행진 중인 물가에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14조원을 넘어 35조, 50조원에 달하는 돈이 풀리면 유동성 공급 과잉에 따른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넉 달 연속 3%대를 기록 중이다. 근원 소비자물가는 2개월 연속 상승폭이 확대됐는데 이는 에너지 가격 외에 다른 품목까지 물가 상승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유진투자증권은 "서비스 물가가 개인서비스를 중심으로 상승폭이 확대되고 있는데 1월 개인서비스 물가상승률은 3.9%로 2011년 10월 이후 최고"라며 "음식·숙박, 오락·여가 등 경제 재개 관련 물가 상승세가 확대되는 등 수요 압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서비스 물가는 지속성이 높아 물가 상승을 장기화 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물가가 계속되면서 한은도 연초부터 올해 물가 전망 상향을 예고했다. 한은은 지난해 올해 물가가 2.0%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17일 "한 달 전 물가상황설명회를 할 때에 비해 물가상승압력이 상당히 높고 범위도 넓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기존 경로를 크게 수정해 올해 물가상승률이 지난해(2.5%)를 웃돌 것으로 본다. 이 경우 2% 중후반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은은 이달 중 물가 전망치를 수정 제시할 예정이다.

재정수지 악화가 은행 부도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황순주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재정건전성이 금융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민간 신용이 많고 빠르게 확대되는 나라일수록 국가 부도 위험이 증가하면 은행 부도 위험이 더 큰 폭으로 증가한다"며 "재정건전성이 약화돼 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상당한 규모를 차지하는 국채의 가치가 하락하면 은행의 자산건전성이 악화되면서 금융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우리나라의 국채 CDS(신용부도스와프)는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당장 국가부도 위험을 걱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부채의 확산세와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대규모 지출 증가세를 고려할 때 재정건전성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연쇄적으로 금융건전성도 약화될 수 있으므로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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