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4.03 00:30

미국, '조정된 실용적 접근' 선택…핵능력 줄여도 북한과 정상회담 가능
중국, 지정학적 세력 균형 유지 위해 북한체제 안정적 유지 추구

정춘일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 (사진제공=정춘일 박사)
정춘일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연구부소장. (사진제공=정춘일 박사)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지역은 19세기말 이후 최대의 격변기에 봉착한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지역의 패권을 위한 미·중 경쟁 구도와 함께 중·일 갈등, 한·일 갈등, 남북한 갈등, 한·미 동맹 강화, 미·일 동맹 강화, 한·중 협력, 한·러 협력, 중·러 협력, 북·러 협력 등 다양한 양자 간의 동맹·협력과 갈등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강대국들 간의 세력 각축전 속에서 살아남아 번영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들이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 구축을 놓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전장에서 안착 지점을 찾지 못하면 주변 권력정치의 틈바구니에 갇혀 좌표와 목표를 상실한 채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의존하는 수동적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는 북한의 핵·미사일 이슈로 인해 강대국들 간의 권력정치 속에 점점 더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역내 강대국들은 각자 자신의 국가이익을 반영한 전략적 프리즘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이슈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합치점을 찾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출범 후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외교적 해법을 지향하는 '조정된 실용적 접근(calibrated practical approach)'을 선택했다.  

바이든 정부는 일괄타결에 초점을 두지 않고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함으로써 빅딜을 시도했던 트럼프 정부와 전략적 인내 정책을 채택했던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과 차별화를 선언했다. 오바마 정부와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 문제점을 조정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빅딜이 아닌 핵능력 축소 수준에서도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밝힘으로써 실용적 대북정책을 선택했다. 새 대북정책은 전부 또는 전무의 적대가 아닌 해결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미·북 간 빅딜이 아닌 스몰딜 또는 적정 수준에서도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정하고 동맹과 함께 외교와 강한 억지를 통해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국의 대북정책은 표리부동하며 이중적 특성이 강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해 외면적으로는 국제사회의 도덕적 규범과 합의를 존중하면서 유엔안보리의 제재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전략적 계산과 판단에 따라 지정학적 이익을 챙기기 위해 대북제재의 적극적 이행은 피하는 경향이 있다. '신형대국관계'의 발전을 추구하는 중국이 겉으로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라는 국제적 명분에 따르면서 속으로는 전통적 동맹의 명분을 내세워 전략적 실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신형대국관계'는 시진핑 지도부의 대외관계 정책 중 하나다. 과거의 강대국관계와는 달리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과 윈윈 관계 그리고 건설적인 경쟁을 이어가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관계를 지향한다. 중국은 현재의 미중관계가 과거 강대국 관계의 역사를 답습한다면 앞으로의 미중관계는 갈등적이고 경쟁적인 형태로 발전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경쟁적·갈등적 미중 관계를 보다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신형대국관계를 제시한 것이다.

더 나아가 시진핑은 신형대국관계를 통해 자국의 핵심이익 보호에도 상당한 전략적 중요성을 부여했다.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에게 있어서 핵심이익은 반드시 성취해야할 국가이익으로 미국은 중국의 핵심이익 추구를 방해해서도 안되고 방해할 수도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과의 신뢰회복을 통한 협력적 관계 구축과 중국의 '핵심이익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시진핑은 2013년 3월 취임 후 6월 오바마 대통령과 처음으로 만난 정상회담에서 신형대국관계의 내용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충돌과 대결을 하지 않는 것으로서 '상호간 전략적 의도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바라보고, 동반자로서 적이 되지 않으며, 대결과 충돌의 방식이 아닌 대화와 협력을 통해 모순과 차이점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둘째, 상호존중으로서 '각자가 선택한 사회제도와 발전 경로를 존중하고, 상호간 핵심이익과 중대한 관심사항을 존중하며, 같은 것은 추구하고 다른 것은 잠시 남겨놓고, 포용과 인내로 함께 발전하는 것'이다. 셋째, 협력 및 윈윈으로서 '제로섬의 사고를 버리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상대방의 이익도 함꼐 고려하며, 자신의 발전을 추구할 때 공동 발전을 촉진하고, 이익이 조화되는 구도를 끊임없이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북한을 특수성을 가진 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에게 북한은 단순한 이웃 국가 내지 우방 국가가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미·일 세력 진출의 완충지대로 중시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냉전기의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유지하고 있다. 유사시 한반도에 개입할 국제법적 근거를 유지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북한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해치는 다른 국가들의 정책과 행동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지역적 안보질서에 혼란을 초래하고 결국 중국의 국가이익에도 해로운 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중국에게는 지정학적 세력 균형의 유지에 필수적인 완충지대를 지키는 것이 훨씬 더 큰 전략적 이익인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겉으로는 국제사회의 평화 및 도덕적 명분 때문에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자신의 지정학적 이익이 걸려있는 북한체제의 안전 문제를 중시해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미온적이고 비협조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핵·미사일을 자신의 영토를 직접 겨냥하는 심대한 안보위협으로 인식하고 실질적 대비를 위한 군사적 방책들을 강구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의 1차적 공격 목표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 공격을 통해 주일미군에 대한 일본의 후방 지원을 차단하고 미군의 일본 내 기지 사용을 어렵게 만들 경우 한반도에서의 전쟁 상황을 유리하게 전개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에 일본은 대외적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및 압박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으며, 대내적으로 미국과의 공조 속에서 독자적 제재 방안을 강구함과 더불어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능력을 구비하는데 진력하고 있다.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한국과는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설정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지정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가운데, 남북한 양측에 대한 균형적 등거리 접근 정책을 견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한반도의 복잡한 안보 현안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보이나 당사자로서의 위치는 지키고 있다. 푸틴 정권은 한반도의 비핵화 및 북한의 핵 보유 불용, 한반도 문제의 정치·외교적 해법 강구 및 6자회담을 통한 해결이라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른 지역적 불안정성의 증폭을 우려하기보다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를 더 중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의 대북정책은 중국과 유사하며, 미·일의 대북정책과 엇갈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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