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5.19 15:20

지난 2006년 전면 폐지했던 사형제 재도입 문제를 둘러싼 찬반 논의가 필리핀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오는 6월 말 취임하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당선인이 사형제 재도입을 공언하자 반발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마약과 강간, 살인, 납치 등 강력 범죄에 대해 사형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대응이 있어야 범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대선에서 그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취임 6개월 안에 범죄를 뿌리 뽑겠다’는 공약 덕분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다.

두테르테 당선인이 하원 의장으로 염두에 둔 판탈레온 알바레스 의원도 지난 18일 현지 언론에 "7월 17대 의회가 문 열면 사형제 도입이 최우선 안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며 "개원 100일 안에 관련 법안을 다룰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서 필리핀은 1987년 사형제를 없앴다. 이후 1993년 살인과 아동 성폭행, 납치 범죄에 한해 부활했다가 2006년 글로리아 아로요 정부 때 다시 폐지됐다.

사형제 폐지에는 특히 필리핀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가톨릭 세력의 목소리가 컸다. 따라서 이번 사형제 도입 추진도 쉽지만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필리핀 가톨릭 주교회의 공보담당 리토 좁슨 신부는 "우리가 삶과 죽음을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한다"며 사형제 부활 계획에 반대했다.

정치권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레니 로브레도 하원의원은 "과거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정부(1965∼1986년)와 피델 라모스 정부(1992∼1998년) 때 사형제를 시행한 경험을 돌이켜볼 때 사형이 흉악한 범죄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반대 목소리를 계속 낼 것"이라고 말했다.

로브레도 의원은 지난 9일 치러진 부통령 선거의 비공식 개표 결과 1위를 달리고 있다. 그가 부통령에 당선되면 두테르테 당선인과 충돌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 또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란힐리오 아키노 산베다법대 학장은 사형이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폭넓은 연구 결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사형제를 운영해도 강력 범죄가 줄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과 빈부 격차 해결 등 근원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한편 국제앰네스티 필리핀 지부 등 인권단체들도 사형제 재도입 저지에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어, 필리핀 차기 정부가 출범하면 사형제 부활 여부를 놓고 갈등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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