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2.04.21 16:45

"구조개혁 통한 자원 재배분 노력 서둘러야…저성장 늪에 빠지기 전 정상궤도 회복 위해 통화·재정정책·구조개혁 함께 이뤄져야"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이창용 신임 한은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21일 청와대 본관에서 이창용 신임 한은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가 21일 취임했다. 이 신임 총재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아시아개발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IMF 아태 담당 국장으로 재직한 경제금융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하고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새로운 총재가 됐다. 이 총재는 가파른 물가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저성장 국면으로의 전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상태에서 출발하게 됐다.

이 총재는 이날 취임사를 통해 "중앙은행에 와서 금융·통화 정책의 최일선에 서게 되니 그야말로 벅찬 감회를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지만 주어진 기대와 책무를 생각하면 어깨가 참으로 무겁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총재직에 지명되고 나서 한국경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며 "단기적으로 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예상보다 빠른 통화정책 정상화,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중국의 경기둔화 가능성 등이 통화정책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한층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 회복세가 기존 전망보다는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성장과 물가 간 상충관계가 통화정책 운용을 더욱 제약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교하게 균형을 잡아가며 정책을 운용해야 할 때"라며 "합의제 의결 기구인 금통위원회에서 모든 위원들과 함께 항상 최선을 다해 최적의 정책을 결정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금통위는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정책결정기구로서 한은 총재 및 부총재를 포함해 총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총재는 금통위 회의에서 나머지 6명 위원의 의견이 갈릴 때 캐스팅보트 역할 등을 수행한다. 지난 14일 금통위에서는 총재 부재 속에 6인의 위원이 만장일치로 금리 인상을 결정했다. 한은 기준금리는 연 1.50% 수준이다.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총 4번의 인상을 거쳐 2019년 10월(1.50%) 수준까지 올랐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금통위는 금리 인상으로 물가 안정에 나서고 있다. 이 총재도 인사청문회에서 "인기가 없더라도 선제적으로 금리 시그널을 줘서 물가가 더 크게 올라가지 않는데 전념하겠다"고 답변하는 등 물가 관리에 만전을 기할 뜻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보다 긴 안목에서 보면 지금 한국 경제는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며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더불어 세계화의 후퇴 흐름이 코로나 이후 뉴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코로나 위기 이후 이러한 뉴노멀 전환 과정의 도전을 이겨내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추세가 이어지면서 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빠져들게 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제는 경제정책의 프레임을 과감히 바꿔야 할 때가 됐다. 민간 주도로 보다 창의적이고 질적인 성장을 도모해 나아가야 한다"며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과 공급망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고통이 수반되겠지만 이를 감수하고 구조개혁을 통한 자원의 재배분 노력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이 총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지금 디지털 기술발전에 따른 지식 집약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는 인구고령화로 인해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그리고 지역간 불균형도 커지고 있다"며 "지나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켜 우리의 성장잠재력을 훼손시킬 것이기에 이에 대한 해결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빠르게 늘고 있는 가계·정부 부채에 대한 우려도 내보였다. 이 총재는 "고령화로 복지 수요가 늘어날수록 경제성장에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어들 것"이라며 "부채의 지속적인 확대가 자칫 거품 붕괴로 이어질 경우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알고 있다. 거시경제 안정을 추구하는 한은으로서 부채 문제 연착륙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은 1862조1000억원에 달한다. 1년 사이 134조원이 불어나면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처럼 가계빚이 늘어난 데는 그간 지속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로 인해 부동산, 주식으로 자금이 쏠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리가 오르고 있어 취약차주의 이자부담 가중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국가부채는 1985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41조6000억원 늘면서 2000조원에 육박했다. 올해 1월에도 16조9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이 실행된 가운데 2차 추경도 거론되고 있는 만큼 국가부채는 올해도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가 이러한 도전을 제대로 이기지 못해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게 된다면 이로부터 헤어나오기란 여간 어려울 것"이라며 "정상궤도로의 회복을 위한 어떠한 정책수단도, 특히 통화정책의 경우 더욱이 그 효과가 제약될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 경제가 그러한 상황으로까지 가기 전에 당면한 과제들을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통화정책만으로는 안 되고 재정정책과 구조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한은도 통화·금융 정책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연구해 우리 경제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며 "쉽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전문성의 울타리를 넘고, 외부와의 소통의 울타리를 넘고, 국내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생각을 뛰어넘으면 충분히 이를 수행해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세계경제의 성장 동력이 떨어지면서 국내 성장률은 빨간불이 켜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19일 올해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2.5%로 제시했다. 1월 전망보다 무려 0.5%포인트나 떨어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및 긴축적 통화·재정정책, 중국 성장둔화, 코로나 영향 등으로 세계경제 성장세가 약화되면서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성장률 하락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은도 5월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새로운 올해 성장률 전망을 제시할 예정이다. 현재 한은 전망은 3.0% 수준이다. 지난 14일 금통위를 주재한 주상영 금통위원은 "경제성장 전망은 조사국에서 새롭게 수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며 "지난 2월에 전망한 것보다는 다소 낮아질 것이나 적어도 2% 중후반 정도는 될 거라고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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