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력 2022.05.07 00:15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세종대왕(1397~1450)이 태어난 날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이다.

15세기 전반, 세종의 시대는 훌륭한 정치, 찬란한 문화가 이룩된 시기였다. 세종은 빛나는 문화유산인 ‘한글(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만으로도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위대한 인물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저서 <총, 균, 쇠〉에서 한글을 ‘가장 독창적이고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했다. 한글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기도 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한글 창제에 대한 내용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집현전 학자들이 모여 한글을 만든 게 아니라 세종이 직접 28자를 지었다는 것이다. 최만리 등 신하들의 한글에 대한 반대가 이어진 것을 보면 철저한 보안 속에서 왕이 친히 한글을 만들고 친위 세력인 집현전 학자들을 통해 활용 방법을 연구토록 한 것으로 보인다. 

집현전 신하들은 “어리석은 자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한글은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고 닭 울음이나 개 짖는 소리까지 표현할 수 있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이어 “신들이 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전하께서는 하늘이 낳은 성인”이라며 왕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글창제 과정만 보아도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의 스승이었고 조선 백성들의 스승이었다. 600년이 지난 지금도 세종은 여전히 우리에게 훌륭한 스승이고 리더십의 표본이 되고 있다. 관련 서적만도 수 십 권이 출간됐다. 세종이 태어난 날을 스승의 날로 정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세종의 시대는 조선시대의 황금기임을 누구도 부정하진 않는다. 이 시기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가 정비되었으며, 다양하고 방대한 편찬 사업이 이뤄졌다. 또한 농업과 과학기술의 발전, 의약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500년 조선의 기틀을 확고히 한 시대였다. 

이는 백성의 안위를 고민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몰입했던 세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세종은 탁월한 통찰력으로 끊임없이 시대적 소명을 찾고 그 해결방법을 모색했으며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밀고 나갔다. 문자가 없어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 훈민정음을 만들고, 농서를 지어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자격루와 측우기 등을 만든 것은 모두 애민 정신에 기반한 세종의 탁월한 통찰력과 결단력, 추진력이 있었기에 이룬 업적이다.

세종은 훌륭한 인재만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 생각하고 인재경영에도 적극적이었다. 집현전 학자들을 양성했고, 장영실 등과 같이 신분에 구애 받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또한, 세종은 몸소 실천하는 솔선수범의 전형이었다. 농서를 편찬하는 일이 지지부진 하자 직접 경복궁 후원에 밭을 만들고 씨를 뿌렸다. 농사의 어려움을 관찰하고 선진농법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처소를 버리고 경회루 한쪽 옆에 초가를 짓고 2년을 살기도 했다. 백성의 고통을 함께하겠다는 뜻이었다.

애민정신에 기반한 통찰력과 추진력, 인재경영, 솔선수범의 ‘세종 리더십’은 6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것임은 물론이고 경제적 양극화와 세대분열,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과 고물가 등 사회 문제와 위기가 산적한 이 시대에 오히려 더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 한화 컴플위 자문위원 김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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