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2.05.23 05:00

유정훈 "홍콩 도시철도공사의 'R+P 모델' 개발 방식 차용해야"

GTX 장래철도노선망. (사진제공=국민의힘)
GTX 장래철도노선망. (사진제공=국민의힘)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공약을 마구 내놓고 있다. GTX 신설역이 들어설 경우 교통 인프라가 개선되는 데다 집값 상승효과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GTX 신설역 유치를 기대하는 주민들이 많은 만큼 예산 등에 대한 고려 없이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제성을 평가하는 예비 타당성 조사, 국가철도망 구축계획, 민간사업자의 사업성 검토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 데다 재원 조달 방안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 첫 삽을 뜨기 전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으로 예상했다.

여야 지자체 후보들, GTX 공약 '혈전'

GTX 공약을 두고 가장 큰 혈전이 벌어지는 곳은 단연 경기도다. 모든 노선 대부분이 경기도를 지나고 가장 많은 수혜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는 최근 경기도의회에서 열린 교통공약 발표회에서 'GTX 플러스(+)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서울에 가로막힌 경기도의 동서남북을 직선으로 뚫는다는 계획으로 GTX A·B·C노선을 연장하고 D·E·F노선을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 GTX A는 경기도 파주 운정~화성 동탄, GTX B는 인천 송도~남양주 마석, GTX C는 경기도 양주 덕정~수원을 잇는 노선이다.

김 후보 공약에 따르면 GTX A+노선은 동탄에서 평택까지, GTX B+는 남양주 마석에서 가평까지 연장한다. GTX C+ 구간은 아예 남북으로 나뉜다. 북부 구간은 동두천, 남부 구간은 오산, 평택까지 연장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GTX D노선은 김포~강남~하남~팔당 구간으로 늘리고, GTX E는 인천~광명·시흥신도시~서울~포천을 잇는다는 복안이다. 파주에서 삼송~서울~위례~광주~이천~여주까지 이어지는 GTX F노선 공약도 더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 공약을 대체로 반영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GTX E·F노선 신설과 기존 GTX A·C노선의 평택 연결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 공약에 따르면 GTX A노선은 기존 운정~동탄에서 운정~동탄~평택까지 연장된다. C노선은 기존 양주 덕정~수원에서 동두천~덕정~수원~평택까지 늘린다. 둘 다 김동연 후보 공약과 다르지 않다. D노선은 김포~대장~신림~사당~삼성~하남~팔당 라인을 기본으로 삼성에서 분기된다. 삼성~수서~광주~여주를 잇는 라인을 추가해 옆으로 눕힌 Y자 형태로 건설할 계획이다.

인천 검암에서 김포공항~정릉~구리~남양주로 이어지는 GTX E노선 역시 윤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것이다. GTX F는 수도권 전체를 하나의 메가시티로 묶는 순환선으로 만들 방침이다. 고양~서울~부천~시흥~안산~화성~수원~용인~성남~하남~남양주~의정부~양주~고양 등 서울 외곽 거점도시를 원형으로 연결하는 순환형 노선이다. 

김은혜 후보 측은 "경기도의 입장을 대변하려면 집권 여당 도지사가 필요하다"며 'GTX 조기 완공'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동연 후보는 "저희는 직주근접 방사형이고 김은혜 후보는 수도권 외곽 연결 순환형이다. GTX 기본 성격인 급행 기능을 중시했다"면서 "예산심의결정권은 국회에 있고 민주당이 다수 의석인 만큼 교통 공약은 충분히 이행할 수 있다"고 맞섰다.

인천 역시 GTX로 전쟁 중이다. 

유정복 국민의힘 인천시장 선거 후보는 지난 19일 부평 문화의거리에서 열린 국민의힘 지방선거 출정식에서 인천발 KTX·GTX-B· GTX-D Y자·GTX-E 등 조기 추진을 내걸었다. 

출정식에 함께 나선 이준석 대표는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노선 건설, 인천발 KTX(고속철도) 신설, 영종대교·인천대교 통행료 무료화 등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유정복 시장이 계실 때 추진됐던 사업들이 순탄하게 이어졌다면 이미 빛을 봤을 사업들이 아직까지 늘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인천시민들께 지난 선거에서 지는 바람에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수가 없다"며 "꼭 승리해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GTX 노선들의 성공적인 추진이야말로 저희가 제1과제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며 "작년에 이미 우리 당은 GTX Y자 노선을 추진해 인천시당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서울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천이 주거 지역으로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서울까지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하루에 20분 더 빨리 가고, 더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40분의 시간만큼 가족과 시간을 더 보낼 수 있고 그 시간만큼 인천에서 돈을 더 쓸 수가 있다"고 말했다.

현 인천시장인 박남춘 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19일 GTX-D 사업을 반드시 추진하겠다며 맞불을 놓았다. 

박 후보 역시 출정식에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D Y자 노선과 제2경인선 건설은 인천시민의 오랜 염원이다”며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빠졌고 인천시민의 염원이 깡그리 무시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3일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 GTX 공약과 관련해 "GTX A‧B‧C 및 서부권 광역급행철도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신규 노선 확대 방안도 검토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선 기간 동안 관심을 모은 GTX E·F노선 신설 공약은 국정과제에서 빠졌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GTX E·F 신설 공약이 사실상 배제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박 후보는 "박남춘이 이재명과 함께 지키겠다"며 "이재명이 국회의원이 되면 확실히 지켜줄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책임 있는 강한 야당 민주당과 함께 인천시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GTX-D, 제2경인선, 경인전철 지하화를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산행 SRT 고속열차가 출발하기 위해 수서역에서 대기 중이다(사진=손진석 기자)
부산행 SRT 고속열차가 출발하기 위해 수서역에서 대기 중이다(사진=뉴스웍스 DB)

이은형 "조속한 시일 내 가시적인 진전 기대하기 쉽지 않아"

전문가들은 정치권의 '묻지마식 GTX 신설'공약이 쉽게 이행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예산 확보 등 재원 조달 방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고 민자구간 사업자를 선정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자와의 연락에서 "지방선거의 공약으로 부각되더라도 현재로서는 조속한 시일 내 가시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GTX와 같은 대형사업은 지자체보다는 중앙정부에 보다 영향을 받는 부분이 크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가철도망계획에 반영하는 것도, 예타도, 민자구간의 사업자를 찾는 것 등 모두 만만치 않은 사안들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철도 같은 국책 사업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보다는 중앙정부에 좌우되는 측면이 크다. 현재 공사 중인 GTX A노선도 3기 신도시 교통망 확충이라는 현 정부의 정책 의지와 맞물렸기 때문에 그나마 진척이 있었다는 것이다.

GTX가 다양한 지역을 지나는 사업인 만큼 주민 간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점도 넘어야 할 산이다.  

C노선의 경우 노선 지상화 문제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국토부는 서울 내 전 구간을 지하화하겠다는 구상을 발표했지만 도봉산역~창동역 5.4㎞ 구간을 지상 노선으로 변경했다. 이후 주민은 물론 도봉구청까지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지난달 25일부터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는다. 감사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까지 고려하면 사업은 1년 이상 지연될 수 있단 관측이 나온다. A노선은 2020년 말 광화문역 인근 5공구 환기구 공사 과정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발굴돼 5개월 가량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GTX E·F노선 신설 공약 역시 정부 예산만으론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약속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기존 노선 연장과 신설 노선 건설에 약 20조원의 사업비가 필요한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는 GTX 확충에 막대한 재정 투입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민간자본을 활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이번 신규 GTX 사업을 재정이 아닌 민자 방식 추진을 우선 검토한다는 구상이다. 막대한 예산 소요가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재정으로만 사업을 진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GTX 역 인근을 개발한 재원으로 건설비를 충당하는 방안도 검토될 예정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연히 민간자본과 결합해야한다"면서 "역세권 도시개발을 통한 재원조달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이미 일본 홍콩 유럽 등 선진국에서 해온 'R+P 모델'(Rail + Property model) 개발 방식을 차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중교통 운영기관이 직접 역세권이나 버스 공영차고지를 개발하고 그 수익을 이용해 운영적자를 해소하자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홍콩 도시철도공사 MTR의 철도(Rail)와 부동산(Property) 개발을 연계한 R+P 모델이다. 

MTR은 대중교통 운영기관 중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기관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MTR의 대주주인 홍콩 정부는 MTR에 역사의 입체 복합개발권과 역사 주변의 공공토지에 대한 개발권을 이양하고, MTR은 민간 경쟁입찰을 통해 주택이나 상가를 개발해 판매 수익이나 임대료 징수를 통해 개발이익을 환수한다. 최근에는 사업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전체 분양가구 수의 30%를 공공임대주택으로 건설하고 있다.

MTR 모델을 서울시에 적용하면 서울교통공사가 주체가 돼 건설 예정인 경전철과 GTX의 역사와 역세권 부지를 입체 복합개발하고 개발이익을 민간으로부터 환수해 지하철 운영을 지원할 수 있다. 

유 교수는 "향후 GTX 공모사업에는 홍콩 MTR같은 사업처럼 지하철 역세권에 민간 운영사들도 참여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 해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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