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6.20 17:56

"국민의 억울함 해소하는 데 진영·정치논리 설 자리 없을 것"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진=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한동훈 법무부장관. (사진=법무부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법무부가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원회 사건' 피해자인 이창복 씨의 국가 배상금 반환소송과 관련해, 초과지급된 배상금 원금만 납부하면 지연 이자 납부는 면제해 주기로 결정했다. 

법무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이노공 차관 주재 하에 법무부, 서울고검, 국정원 관계자가 참여한 '초과지급 국가 배상금 환수 관련 관계기관 회의'를 20일 열고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예측할 수 없었던 대법원 판례 변경으로 초과지급된 국가배상금 원금 외에 거액의 지연이자까지 반환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의 잘못이라는 이유에서다.

법무부는 "거액의 배상금을 반환하라고 하는 게 정의관념과 상식에 비춰 가혹할 수 있고 '국가채권 관리법'상 채무자의 고의 중과실 없는 부당이득반환의 경우 원금 상당액을 변제하면 지연손해금 면제가 가능하다"고 봤다. 

한 장관은 이날 결정과 관련해 "이 건의 배상 진행과정에서 국가 실책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가지급 이후의 판례 변경이라는 이례적 사정으로 이른바 '줬다 뺏는' 상황이 생겼다"며 "국가 배상으로 받을 돈은 6억원인데 반환해야 하는 돈은 15억원이 돼 그대로 방치하면 해당 국민이 억울한 처지가 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직 팩트, 상식, 정의의 관점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려 노력할 것"이라며 "국민의 억울함을 해소하는 데 진영논리나 정치논리가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가정보원 관계자는 "과거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이번 사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화해권고안 수용입장을 적극 내세웠다"며 "국정원은 인권침해 등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를 위로한다는 측면에서 선제적으로 대안과 해결 방법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의 후속 조치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 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이 씨는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로 약 8년 간 옥살이를 했는데, 2008년 1월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씨는 이듬해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모두 승소, 배상금과 이자 상당액의 3분의 2인 11억원 가량을 가지급받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1년 1월 직급된 배상금의 이자 계산이 잘못됐다"며 "배상금의 절반인 약 5억원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 씨는 이를 갚지 못했다. 이에 매년 20%의 지연이자가 붙어 현재 갚아야 할 이자만 1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는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냈으나 1심에서 패소했다. 이후 법원은 정부 배상금 5억원 중 5000만원을 올해 말까지 내고, 나머지를 6월 말까지 상환하는 대신 10억원 상당의 이자는 내지 않도록 하는 화해권고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지난 4월 29일 '이 씨가 반환금을 갚지 못하면 화해를 무효로 하고 이자를 포함해 갚아야 한다'며 이의를 신청했다. 재판부는 정부 측 의견을 접수한 뒤 재차 화해권고 결정을 내렸다.

한편,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 사건'은 '2차 인혁당 사건'으로도 불린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1974년 유신(유신체제)반대 투쟁을 벌였던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을 수사하면서 이 배후·조종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이를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 내 지하조직이라고 규정한 사건이다. 중앙정보부는 1974년 4월 25일 "북한의 지령을 받은 인혁당 재건위 조직이 민청학련의 배후에서 학생시위를 조종하고 정부전복과 노동자, 농민에 의한 정부 수립을 기도했다"고 발표했다. 

민청학련 1024명이 연루된 '인혁당 재건위 및 민청학련 사건'에서 253명이 구속송치됐고 이 가운데 인혁당 관련자 21명, 민청학련 관련자 27명 등 180여 명이 긴급조치 4호·국가보안법·내란예비음모·내란선동 등의 죄명으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다.

1975년 2월 이철, 김지하 등 민청학련 관계자들은 대부분 감형 또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지만, 대법원은 1975년 4월 8일 도예종 등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확정했다. 그리고 국방부는 판결 18시간 만에 기습적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그러나 관련자 혐의에 대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은 데다 조사과정 중 고문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민주화운동 탄압을 위한 유신정권의 용공조작이라는 의혹이 계속됐다. 

결국, 2007년 서울중앙지법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 8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2006년 1월 23일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인혁당 사건이 수사당국의 가혹한 고문에 의해 조작됐고, 이 사건 관련자들의 행위가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민주화운동이라고 판단돼 관련자 1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1차 인혁당 사건의 피고인들과 유족들이 2011년 재심을 청구했고, 서울고법은 2013년 9월 재심 개시 결정을 내린 뒤 같은해 11월 무죄를 선고했다. 아울러 대법원이 2015년 5월 도예종 씨 등 2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 9명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함에 따라 1차 인혁당 사건 관련자들 역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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