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6.23 15:15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문재인 정권에서 임명된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문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임기가 남아있다는 이유로 자진사퇴를 하지 않고 임기를 채우려는 모습을 보면서 '구조적으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왔다.  

정권에 따라 지향하는 통치 철학이 각기 다르기에 국정 목표의 지향점은 물론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 철학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인사를 고위공직자로 임명했을 것이다. 이처럼 이전 정권에서 '코드인사'로 임명된 정무직들은 여야 정권교체로 추구하는 결이 완전히 다른 새 정권이 들어섰다면 임명권자가 물러남과 동시에 자신의 운명도 함께 하는 것이 정치도의에 부합한다.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어떤 측면에선 해당 공직자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길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고위공직자와의 동반 퇴진이 제도적으로 정착된다면 정권교체기 마다 논란이 돼 온 '인사 알박기 논란'도 사라질 수 있다. 

물론, 정권 연장이나 교체에 무관하게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그대로 보장해주면 될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도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직업 공무원도 아닌 정무직이 임기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정부의 성격도 다르고 통치 방향도 다른데 굳이 임기를 채우겠다는 것은 몽니나 다름없다"고 언급했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새로운 정권의 국정철학에 대해 손을 들어준 의미를 감안한다면 타당한 지적으로 여겨진다. 무엇보다 '어공'(어쩌다공무원)과 '늘공'(늘공무원)은 입직 경로부터 상이하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효율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런 가운데,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최근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을 통해 공공기관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새 정부의 출범(5월 10일) 이후에도 350개 공공기관의 기관장 및 상임감사 총 460명(공석 23명 포함) 중 290명(63%)은 임기가 1년 이상 남아 있다. 이중 207명(45%)은 잔여 임기가 2년을 넘는다. 

이 같은 현실은 법적·제도적으로 개선을 하지 않는다면 정권 교체기 마다 '불합리'가 반복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가장 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조치가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이다. 이 법에 따라 공공 기관장은 물론이고 이사·감사들은 임기가 보장돼 있다. 공운법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전문성을 갖춘 기관장을 선발하기 위해 임원 후보의 공개모집과 추천, 임원추천위원회의 심사와 추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검토 등의 절차도 규정하고 있다.

핵심 문제는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 소모적 논란을 막기 위해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아예 대통령의 임기와 맞추는 방안을 고려해보자는 제안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여러 전문가들에 의해 공공기관장 임기 3년을 유지하면서 1년씩 두 번 더 재임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는 방안, 임기를 2.5년으로 하는 방안, 장·차관처럼 별도의 임기를 정해두지 않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민경률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지난 2019년 8월 '공공기관 임원 임명에 관한 논의 좌담회'에서 "기관장의 임기를 대통령 임기와 연계해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균형점을 갖추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전 민주당 의원(현 조달청장)은 지난 2019년 새 정부 출범 시 기존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만료된 것으로 간주하는 공운법 개정안을 발의한 전례도 있다. 다만 기관장 견제를 위해 독립성이 필요한 공공기관의 감사, 검찰총장·감사원장 등 정치적 독립이 필요한 자리는 임기를 보장하자는 의견이 많다.

제도와 현실 간의 괴리를 해소하려는 적극적 의지만 있다면 법률 개정을 통해 이 같은 논란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설사 현행 법률이 유지된다해도 집권세력의 자기 희생이 뒤따른다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게 된다. 후임 대통령 임기 시작일을 감안, 집권 후반기에는 자기 사람을 공공기관장 혹은 이사나 감사 자리에 임명하려는 욕구를 억누르면 '공공기관장의 도돌이표 임명'이라는 악습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가 공공기관장과 공공기관의 이사 및 감사의 임기를 현행 규정보다 6개월 짧아진 2년 6개월로 하면 어떨까. 일부 인사들의 불만을 감수한 채 이처럼 결단하고 시행한다면 윤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민의힘의 지지도도 상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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