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한익 기자
  • 입력 2022.06.26 14:00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도 '1위'…성태윤 교수 "가이드라인 제시 적절하지 않아"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스웍스 DB)
시중은행 대출창구 모습. (사진=뉴스웍스 DB)

[뉴스웍스=이한익 기자] 코스피 상장 기업에 근무하는 A씨(신용등급 3등급)의 월 대출 원리금 상환액은 지난 2020년 6월 212만원에서 올해 6월 249만원으로 2년 만에 36만원가량 늘었다. 아파트 구매를 위해 받은 주택담보대출 4억7000만원과 신용대출 1억원의 금리가 지난 2년간 2.69%와 2.70%에서 3.61%와 4.41%로 각각 올랐기 때문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현재 1.75% 수준인 기준금리가 연내 2.75%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되면서 상승분 1%포인트가 대출금리에 적용된다고 가정하면, 연말 시점에 월 상환액은 대출 당시보다 70만원가량 늘어난 283만원이 될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연 0.50%로 사상 최저 수준이던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지난해 8월부터 5차례에 걸쳐 1.75%까지 올랐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들이 과잉 유동성 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려잡으면서다.

이런 기준금리 상승으로 국내 대출자(차주)들의 이자 부담도 증폭되고 있다. 특히 고금리에 시달리는 취약 차주들의 부실화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결국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에 이어 윤석열 대통령까지 은행들의 '이자 장사'에 대해 경고했다. 이에 은행은 '관치금융'이라며 항변하고 있지만, 부실화를 막기 위해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고, 금리가 낮아지도록 경쟁해야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만만치 않게 나오고 있다.

◆금리 급등에 3%미만 가계대출 '멸종위기'…3%대 4배·4%대 7배↑

26일 한국은행 금융통계시스템의 '예금은행 금리수준별 여수신 비중(신규취급액 기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월 기준 74.5%에 달했던 금리 연 3% 미만 가계대출 비중은 올해 4월 13.7%로 급격히 줄었다. 

반면, 3%대 금리 비중은 2021년 4월 17.3%에서 지난 4월 53.9%로 3배 넘게 늘었고, 4%대 비중은 같은 기간 3.2%에서 21.4%로 7배 가까이 폭증했다. 5%대도 1.4%에서 4.3%로, 6%대는 1.2%에서 1.9%로 각각 증가했다.

기준금리가 오르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것은 불가피하며, 대출 금리도 덩달아 오르게 된다. 

5월 기준 자료에서 4%대 이상 금리 비중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1.50%에서 1.75%로 0.25%포인트 인상했기 때문이다. 

◆1분기 예대금리차, 기업은행 제일 커…국민은행·농협은행 순

통상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예대금리차는 대출로 은행이 차주에게 받는 금리와 예금으로 차주에게 지급하는 금리 차이를 말한다. 은행들이 대출을 실행해주기 위해 조달해오는 자금에도 이자가 붙는데, 금리 상승기에는 이 비용이 가파르게 올라 예대금리차가 벌어지게 된다.  

은행별 분기 실적 공시 및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원화예대금리차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대 국내 은행 중 기업은행이 2.29%로 가장 컸다. 

기업은행의 대출금리는 타 은행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예금금리는 다른 곳보다 낮았다. 올해 3월 말 기준 기업은행의 원화대출채권평균이자율(대출금리)은 2.91%였으며, 원화예수금평균이자율(예금금리)은 0.62%였다. 

다음으로 KB국민은행의 예대금리차가 2.02%로 높았다. 대출금리는 2.88%였고, 예금금리는 0.86%였다. 이어 농협은행이 1.92%(대출금리 2.87%·예금금리 0.95%), 신한은행이 1.88%(대출 2.89%·예금 1.01%), 우리은행이 1.83%(대출 2.83%·예금 1.00%), 하나은행이 1.82%(대출 2.93%·예금 1.11%) 순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을 살펴보면 기업은행이 0.30%포인트로 가장 많이 올랐다. 다음으로 우리은행이 0.22%포인트, 신한은행·하나은행이 각각 0.21%포인트 올랐다. 국민은행은 0.16%포인트, 농협은행은 0.02%포인트 각각 올랐다.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면 은행의 수익성도 개선된다. 이에 '역대급' 실적 잔치가 이어지면서 은행권에 '이자 마진 축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분기 국내 은행이 벌어들인 이자 이익은 12조6000억원으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1조8000억원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16.9%를 기록했다.

이자 이익이 1분기 은행의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0.6%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자 이익에 힘입어 은행을 주요 계열사로둔 KB금융·신한·하나·우리금융 등 금융지주들은 사상 최대 실적을 연이어 경신한 바 있다.

◆금융당국 "대출금리 인하" vs 은행권 "관치금융"…안동현 교수 "대손충당금 쌓은 뒤 상품 다양화해야"

정부는 취약계층 부실화를 우려해 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0일 은행장들과의 첫 간담회에서 "금리 상승기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며 "금리를 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준에 따라 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 한 고위 관계자 역시 "은행들은 지나치게 단기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기보다는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이해관계자)'인 국민들과 함께 중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도 "금리 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함께 협력해 나가야 한다.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줄 방안을 강구해달라"며 금융당국의 시각에 힘을 실었다.

이같은 금융당국의 경고에 은행권에서는 "관치금융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도 나오지만, 금리 인하 검토는 물론 은행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에 부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산금리나 우대금리를 조정해 대출 금리를 낮출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금융당국이 주문한 대로 인위적으로 조정할 경우,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출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 조치가 9월이면 종료된다. 291조원에 달하는 금액 중 얼마나 부실이 발생할지 미지수"라며 "시장 상황에 맞게 금리 조정이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대출 차주들의 부실화를 막기 위해 은행의 공적 기능을 강제하기보다는 대손충당금을 쌓고, 취약 차주들을 위한 상품을 제공하는 등의 방법으로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시장 경쟁을 부추겨 대출금리가 낮아지고 예금금리가 올라가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의 공적 기능에 대해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고려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가계부채가 부실 위험성이 있고, 은행이 무너지면 안 되기 때문에 대손충당금을 쌓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은행들은 예대마진을 전면적으로 낮추기보다는 사회공헌 차원에서 상품을 다양화해야 한다"며 "가산금리를 덜 받고 장기로 전환해주는 상품을 제공해 집단 디폴트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절충안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물론 (금융기관은) 주주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상장 주식회사이지만, 과거 부실이 났을 때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준 적도 있지 않냐"며 "국가 경제에 이바지하는 차원에서 공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는 양면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부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자체, 예대마진 자체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금융기관들의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 등은 문제 삼을 수 있지만, 담합한 것도 아니고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등을 반영해 결정하는 가격 자체에 개입하는 것은 타당성이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문제 해결에 대해 성 교수는 "예금과 관련된 경쟁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당연히 자산건전성에 대한 감독은 필요하지만, (관치금융 논란은) 이에 대한 감독이 아니다. 직접적으로 예대마진이나 이자율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경쟁을 저해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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