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09.15 14:24

적용 대상, 하청·특수고용 노동자·프리랜서로 확대…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정당한 쟁의로 포함

정의당 이은주 비대위원장이 지난 7월 1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투쟁승리를 위한 정의당 촛불연대'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홈페이지 캡처)
정의당 이은주 비대위원장이 지난 7월 13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 앞에서 열린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투쟁승리를 위한 정의당 촛불연대'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정의당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정의당이 노동조합에 불합리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15일 당론으로 발의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5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노동조합 파업으로 생긴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한하는 내용의 노란봉투법을 대표 발의했다"고 밝혔다.

세칭 '노란봉투법'은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을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이다. 2014년 쌍용차 파업 참여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내려지면서 시작된 시민들의 모금운동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해당 법안은 19·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고, 21대 국회에는 관련 법안 4건이 계류돼 있다.

이 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은 중단됐지만 470억 원이라는 막대한 손배소가 남았다"며 "사실상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하청 노조에 470억 원의 손배소는 노조의 존속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개정안은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한 노조의 단체교섭·쟁의 행위에 대해 노조나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존 발의됐던 노란봉투법과 달리 법 적용 대상을 하청과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에까지 확대한 것도 이번 개정안의 특징이다.

이 위원장은 쌍용자동차와 현대제철 사태를 언급하며 노동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2009년 사측을 상대로 파업을 벌였는데, 경찰은 진압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다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수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현대제철의 경우 사측이 노조를 상대로 246억여원대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그는 또 "(쌍용차 사태의 경우) 2009년 쟁의가 끝난 후 국가와 회사에 의해 제기된 손배소로 인해 노동자와 그 가족 수십명이 목숨을 잃었고, 우리 사회에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는지 잘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며 "(현대제철은) 노조를 무력화하고 정규직 고용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손배소가 활용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아울러 "선진국으로 도약한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노동조합을 하고 쟁의하는 것은 여전히 '목숨 내놓고', '인생 거는 일'이 되고 있다"며 "선진국에서는 법률 체계에서만 존재할 뿐 사실상 사문화된 손배가압류가 2022년 대한민국에서는 모든 쟁의 후에 따라붙는 루틴(일상적인 일)이 되고 말았다"고 성토했다.

정의당이 이번에 당론으로 발의한 이른바 '노란봉투법'의 주요 내용에는 바뀐 노동시장을 반영해 하청과 특수고용, 플랫폼 등 비정형·간접노동자들의 쟁의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근로자와 사용자의 정의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불법파업으로 규정되지 않도록 원청기업에 대한 교섭과 쟁의가 가능하도록 했다.

또 쟁의를 근로조건 및 노동관계 당사자 사이 주장의 불일치로 발생한 분쟁상태로 규정, 임금 및 근로조건 등으로 좁게 해석되고 있는 쟁의의 범위도 확대했다. 현재는 불법으로 여겨지는 정리해고 반대 파업도 정당한 쟁의로 포함시켰다.

이 밖에도 폭력이나 파괴로 인한 직접 손해를 제외한 단체교섭,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선 노조나 근로자에게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청구할 수 없도록 한 것도 특징으로 꼽힌다. 노조에 의해 계획된 쟁의인 경우 개별 근로자에게 손해배상과 가압류도 할 수 없다.

이 위원장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노란봉투법'을 통과시키자"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민 결사에 대한 구시대적 강압과 금지의 굴레를 끝내야 한다. '노란봉투법'은 단지 노조를 편들기 위한 법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실질적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드는 법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정의당 의원 6명 전원과 민주당 소속 의원 46명, 무소속 의원 등 총 56명이 공동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민주당에서는 4선의 김상희·3선의 남인순·도종환·서영교·한정애 의원 등 중진 의원 등도 동참했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서도 노란봉투법 입법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이 법을 이번 정기국회 내 통과시켜야 할 22대 중요 입법 과제 중 6번째에 선정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노란봉투법 추진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며 "다만 과도한 손배소 등을 통해 노동3권이 억제되는 현실을 바꿔보자는 법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모든 불법행위 등을 조건 없이 용인하겠다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당한 노동권 보호를 위한 구체적 사례나 해외 입법 선례를 깊이 있게 검토하고 논의하면서 입법을 준비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다만 정부·여당은 법안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법안의 정기국회 내 처리까지는 난항이 예상된다. 당정은 노란봉투법의 면책 범위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기존 법안의 엄격한 집행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경영계의 반발 또한 변수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전날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경영계의 우려를 전달했다. 

전 위원장은 이날 면담 후 "(노란봉투법은)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를 못 하게 하는 게 아니라, 파괴 행위를 제외한 (쟁위에 대한) 손배를 제한하자는 것"이라며 "정부 입장도 들어보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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