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현건 기자
  • 입력 2022.09.17 06:30

현대제철·동국제강 10월초 정상화…포항제철소 압연라인 가동 기약없어 수급 차질 불가피
이은형 "선재 생산 이어 철강제품 수급문제 불거질 수 있어…분양가 인상 요인 커져"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1구역에 위치한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주안' 건설현장. (사진=전현건 기자)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주안1구역 건설현장. (사진=전현건 기자)

[뉴스웍스=전현건 기자] 추석이 지나고 분양 성수기로 알려진 가을이 됐지만 건설사들의 고민은 점차 깊어져 가고 있다. 올해부터 본격화된 원자잿값 급등 속에 금리 상승 기조가 겹치면서 분양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져 수익성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포스코·현대제철·동국제강의 포항공장이 침수 피해로 생산·출하를 중단하면서 건설사들의 시름은 점차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태풍 힌남노로 인해 침수된 포스코의 포항제철소 피해 여파가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직원까지 동원해 이른 시일 내에 고로를 재가동했지만, 압연 라인 등 완제품과 연계된 시설 및 설비들이 정상화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우려된다. 포항제철소는 열연을 이용해 고급 완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지였다. 이로 인해 건설업계도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시멘트·철근가격 상승에 이어 침수피해로 인한 공급 불안

17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시멘트 가격이 15% 가량 인상됐다. 시멘트업계는 지난해 7월 시멘트 가격을 t당 7만5000원에서 7만8800원으로 5.1% 인상했고, 올해 초에도 15%가량 올렸다. 한 차례 추가 인상되면서 시멘트 가격은 t당 10만원을 넘어섰다.

시멘트업계는 주요 원자재인 유연탄 가격 급등, 전력비, 물류비, 환경부담금, 인건비 상승에 따른 경영악화로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시멘트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만 24% 오른 화물 운임과 전력요금 인상, 금리 인상, 환율 급등 등 악재가 겹쳐 내부적으로 손실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철근가격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철근 가격은 2020년 t당 68만원에서 올해 6월 117만원까지 72% 올랐다. 철근 가격은 통상 t당 70만~80만원 사이를 오갔지만, 지난해 원자재 수급 대란과 중국의 철강재 수출제한조치로 인한 수급 불안을 겪으면서 지난해부터 치솟고 있다.

건자재값 급등 여파로 공사비 역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건자재값은 전체 공사비의 30%를 차지한다. 자재 가격이 오르면 공사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최근 태풍 힌남노의 침수영향으로 포항공단 내 위치한 철근과 형강 등을 제조하는 주요 제강사의 철강공장이 침수 피해를 입으며 공사비 상승을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지난 6일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경북 포항에 최대 500㎜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포항제철소 고로(용광로) 3기가 49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빗물이 빠지면서 고로가 재가동하기는 했지만, 쇳물을 굳혀 철강 제품으로 만드는 압연 라인은 아직 배수 작업조차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압연 라인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쇳물을 생산하더라도 철강 완제품 생산은 어렵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건설 등 여러 후방 산업까지 철강쇼크를 받을 수 있다.  

포항제철소의 조강 생산량은 지난해 기준 1685만톤으로 국내 총 생산량의 35%를 차지한다.

제품별 비중으로 보면 배를 만드는 데 쓰이는 후판(338만t) 비중이 가장 크다. 이어 냉연(291만t)·선재(274만t)·열연(220만t) 순이다. 그 외 자동차 등에 쓰이는 전기강판(83만t)과 전기아연도금강판(62만t)은 타사에서 대체 불가능한 제품을 전담 생산한다.

당분간 포항제철소의 제품을 이용해 왔던 조선과 자동차, 건설산업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포항에는 현대제철의 철근과 특수강을 생산하는 봉강라인과 중대형 형강라인 등 3개 생산라인이 있고, 동국제강은 코일철근과 형강을 생산하는 라인이 위치했다.

2개 제강사의 연간 생산량은 모두 합쳐 철근 105만t, 형강 200만t에 달한다. 국내 연간 철근 수요의 10%, 형강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규모여서 건설업계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포항공장 모두 10월 초에야 완전한 생산·출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제철 대형 생산라인은 13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대보수를 진행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공장복구와 보수를 같이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동국제강은 자체 공장 침수보다는 공단 내 산소공급업체가 가동을 중단하며 공장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다. 산소공급업체 가동 정상화에 생산 재개 일정이 달렸다. 일단 산소공급업체가 16일부터 임시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어서 월말에는 정상가동이 가능할 전망이다.

포항공장에서 생산하는 철근·형강이 생산 규모는 작더라도 대구경·내진철근과 중대형 형강 생산을 담당하다 보니 업계에서는 특정 품목의 수급 차질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에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철강업계에서는 조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 복구 물품 조달과 주 52시간 근로제 한시적 완화 등을 정부에 요구했다.

더욱이 오는 16일부터 동국제강은 H형강 중소형 규격의 고시가격을 t당 5만원 인상(125만→130만원)할 계획이다. t당 124만원 안팎인 시중 유통시세를 넘어서 가격을 올리겠다는 의지다.

'힌남노'로 인해 침수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사진제공=포스코)
'힌남노'로 인해 침수 피해를 입은 포항제철소. (사진제공=포스코)

주택 착공 물량·분양물량 동시 급감

추석 연휴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공사현장 성수기를 맞이한 상황에 수급 불안과 가격 인상이 맞물리면 시황은 자칫 불안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공사비 부담이 커지자 주택 착공 물량도 급감한 모습이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전국 주택 착공 물량은 22만308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31만937가구보다 28.3% 줄었다.

특히 건자재값 상승에 따른 부담은 중견·중소건설사 현장에서는 더 크게 두드러지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견사의 경우 원자재 비용 부담을 해소할 방법이 제한적이고, 공사 한 건이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소 높아 선택할 수 있는 수가 많지 않다. 중소사도 급등한 건자재를 그대로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공사 차질까지 빚고 있는 모습이다.

분양물량도 급감했다.

부동산114 집계 결과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수도권 일반분양 물량은 6만724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 7만1975가구보다 16% 감소했다. 또 향후 분양가 상승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가 지난 7월에 이어 2개월 만에 기본형건축비를 인상하면서 규제지역 분양가 상승 역시 불가피할 전망이다. 원가 상승으로 인해 분양가를 높여 수익성 확보를 원하는 건설사와 자금 마련에 부담을 느끼는 수요자들의 입장이 상충하면서 분양시장 어려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은 기자와의 연락에서 "선재 생산에 이어 철강제품 수급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면서 "철근가격 및 원자재값 상승 문제로 인해 공사원가 상승이 분양가 인상에 가중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평시에 원자재의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대량 구매자의 바잉 파워(buying power) 등과 비교해 실익을 따져야 한다"면서 "미래의 수급 상황을 예측해서 장기계약을 맺는 것은 예측 실패에 따른 파급까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이번 시기를 국내 공사에서도 무분별한 수주를 벗어나 장기 관점에서 수익성 중심의 수주 관행을 경험하고 축적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면서 "발상의 전환과 성장의 기회라는 것은 본래 소수의 준비된 우량기업들이 먼저 잡아채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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