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차진형 기자
  • 입력 2022.09.20 05:30

국내 손해보험 개척…내달 1일, 100년 역사 발자취 남겨
한진그룹 계열 분리 뒤 고속 성장…'홀로서기' 모범 답안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

[뉴스웍스=차진형 기자] 메리츠화재가 오는 10월 1일, '100년 장수' 기업명단에 오른다.

해외에선 100년을 넘어 200년 역사를 가진 기업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국내는 두산, 동화약품,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 뿌리 깊은 기업 수가 적은 편이다. 산업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탓도 있지만, IMF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명맥을 유지하기 힘든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100년의 금자탑은 쉽게 얻을 수 없는 타이틀로 꼽히는데 메리츠화재가 이를 해낸 것이다. 특히 그동안 위기를 기회로 삼고 돌파구를 마련하는 모습은 업계에서 '게임체인저'란 별명까지 얻어 수완도 뛰어난 기업으로도 꼽힌다.

◆대한민국 손해보험 개척자에서…다크호스로 부상

메리츠화재의 발자취를 뒤쫓아 가면 대한민국 보험의 시작점을 만날 수 있다. 메리츠화재는 일본 보험사가 주를 이루던 시기인 1922년 민족자본을 기반으로 조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란 사명으로 설립됐다.

조선화재해상보험은 일본보험사의 틈바구니에서도 1935년 당시 경성의 명물이었던 태평로 사옥을 짓는 등 명맥을 이어갔다. 이후 1950년 동양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로 사명을 변경, 1956년에는 보험업계 최초로 주식 시장에 상장하는 기록을 남겼다.

1967년 한진그룹에 편입된 뒤 2005년 그룹에서 계열 분리 후 지금의 메리츠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로 탈바꿈했다.

메리츠는 'merit(혜택)'와 복수형 어미 's'를 붙여 더 우수하고 장점과 혜택을 담은 보험회사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조정호 회장이 소비자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기업 이념을 사명에 반영한 것이다.

한진그룹에서 계열 분리 뒤 메리츠화재는 쾌속 순항 중이다. 지난 17년 동안 시가총액 23배, 자산 10배 성장이란 성과를 거뒀다. 2005년 2조7000억원 규모의 자산에서 현재는 28조원으로 팽창했다.

금융지주로 확대해서 보면 성장세는 더욱 눈에 띈다. 화재와 증권을 합친 자산 규모는 3조3000억원에서 올해 6월 기준 90조원으로 증가했다.

만년 5위였던 메리츠화재는 매년 사상 최대실적을 경신하며 2019년부터 당기순이익 기준 업계 3위로 올라섰다. 메리츠증권 역시 2021년 말 당기순이익 7829억원으로 업계 6위를 기록했다. 2010년 77억원에 불과했던 순이익이 11년 만에 100배 급성장한 것이다.

서울 중구 태평로 사옥.(사진제공=메리츠화재)
서울 중구 태평로 사옥. (사진제공=메리츠화재)

◆조정호 회장의 홀로서기 비결, 인재경영·성과주의 정착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이 2002년 세상을 떠나면서 형제 중 막내인 조정호 회장은 그룹 내에서 가장 규모가 작았던 금융계열사를 물려받았다.

당시만 해도 메리츠화재가 홀로서기에 성공할지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진가 형제 중 조정호 회장만큼 성과를 이룬 자는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메리츠금융이 이처럼 비약적 도약을 이룬 비결은 조정호 회장의 ‘인재경영’과 ‘철저한 성과주의’를 꼽을 수 있다. 조 회장은 회사의 성장 및 발전에 최적이라고 생각되는 우수한 전문경영인을 적극 영입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한번 맡기면 본인이 구체적인 경영활동에 간섭하지 않고 전문경영인이 맘껏 회사를 경영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메리츠금융 계열사 최고경영자(CEO)가 장수하는 것도 조 회장이 긴 안목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폭적인 권한 이양을 통해 대부분의 경영 사안은 각 사 CEO가 책임지고 진행한다. 긴급한 의사결정이 필요할 경우 몇 천억원짜리 투자까지 사후 보고로 진행된 적도 적지 않다. 

조정호 회장은 ‘메리츠는 사람과 문화가 전부인 회사’라고 강조한다. 사람이 전부인 회사인 만큼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도록 메리츠금융 모든 계열사는 확실한 보상 체계를 갖췄다. 

승진 연한이 따로 없어 계열사별로 40대 젊은 임원이 여러 명이다, 또한 학력이나 직급이 아니라 회사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만 보고 충분하게 보상한다. 그러다 보니 회장, 부회장보다 연봉이 더 많은 임원이나 팀장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으며, 매년 증권업계와 보험업계 직원 평균 급여 순위에서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다. 

(사진제공=메리츠화재)
(사진제공=메리츠화재)

◆"세상에 바꾸지 못할 것은 없다"…혁신 모델로 경쟁사 위협

금융업은 대부분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놔도 현장에서 적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메리츠화재는 도전에 주저하지 않는다. 결국 과거부터 이어온 도전정신이 오늘날 혁신 아이콘으로 부상한 원동력이 됐다.

지금은 대세로 자리 잡은 영업조직 획일화는 메리츠화재에서 시작됐다. 2015년 기존 '본부-지역단-점포'라는 3단계의 영업관리 조직에서 본부 및 지역단을 모두 없애고 본사 밑에 영업점포로 직결되는 구조로 슬림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절감된 영업관리 비용은 상품경쟁력 및 설계사 지원 강화 목적으로 활용했다. 2016년에는 전국 221개 점포를 본사 직속의 102개 초대형 점포로 통합하는 동시에 사업가형 점포장 제도를 시행해 업계 이목을 끌었다.

설계사 출진 본부장 승격제도 역시 파격적인 인사 행보로 꼽힌다. 그동안 영업조직에 알게 모르게 있던 신분제, 직업적 커리어의 한계를 완전 폐지한 것이다. 메리츠화재는 영업설계사가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성별, 나이, 학력 등의 차별 없이 영업관리자인 본부장으로 승격해 산하 본부의 성과만큼 월 단위로 보상을 지급한다.

더 나아가 본부장 중 6개월 이상 일정 기준 이상의 월매출을 연속 달성하고 본부분할여부를 판단해 임원으로 승격시키는 영업임원 제도도 도입해 눈길을 끌었다.

이와 같은 인사혁신은 김용범 부회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김 부회장은 직원들에게 극단적 합리주의에 기반한 사업가 정신을 통해 모두가 리더로 행동하길 주문하고 이에 맞춰 다양한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그 결과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만족도를 대변할 수 있는 핵심 지표도 상승하고 있다. 평균 근속연수는 2015년 8년 11개월에서 2021년 말 11년 6개월로 대폭 늘었다. 직원 평균 급여 또한 같은 기간 6700만원에서 1억20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성과주의에 기반한 급여 상승 덕분이다.

직원들의 적극성에 힘입어 회사는 더욱 성장했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ROE는 2015년 11.9%에서 2021년 24.7%로 두 배 이상 뛰었다. 경쟁사가 같은 시간 한 자릿수 증가에 머무른 반면 메리츠화재는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세로 위협을 가한 셈이다.

치밀한 계획도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김용범 부회장은 취임 후 3년마다 당기순이익 기준 업계 3위에 진입하겠다는 ‘33플랜’과 2021년까지 업계 2위를 달성하겠다는 ‘넥스트 33플랜’ 등 중장기 사업계획을 마련하고 실천해 왔다.

특히 위에서 일률적인 목표를 하위 부문에 내리는 톱다운 방식이 아닌 각 사업 부문별로 본인들이 이루고 싶은 세부 목표와 달성 계획을 직접 제시, 목표 달성의 효율성을 극대화했다.

즉, 단순 수치 개선이 아닌 본질적인 경쟁력 개선에 집중한 것이 그 동안의 중장기 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다.

메리츠화재의 다음 3개년 목표는 2025년 장기인보험 매출 1등, 당기순이익 1등, 시가총액 1등을 달성하는 '트리플 크라운'이다. 2~3등이라는 애매한 포지션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과 혁신 과제를 설정하고 달성해 당당한 업계 1위가 되겠다는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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