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10.13 21:56

문 전 대통령 지시 따라 '시신 소각'에서 '소각 추정'으로
해경, 증거 은폐·실험분석 결과 왜곡 통해 '월북 단정'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의 유족인 이래진 씨가 지난 11일 헌정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실상은 이렇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래진 씨 페이스북 캡처)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의 유족인 이래진 씨가 지난 11일 헌정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 실상은 이렇습니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래진 씨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감사원은 서해 상에서 2020년 9월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 씨 사건 처리와 관련, 5개 기관 소속 20명에 대해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13일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기관별로는 국방부 7명, 해경 6명, 국가안보실·통일부 각 3명, 국정원 1명이다. 수사요청 대상에는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 문재인 정권의 핵심안보라인 인사들이 포함됐다.

이에 앞서 국방부와 해경은 당초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이대준 씨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기존 발표 내용을 뒤집고 지난 6월 16일 월북을 인정할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감사원은 객관적이고 실체적인 진실 규명을 통해 국민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6월 17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해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19일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국가정보원,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해경 등 9개 기관에 대한 실지 감사까지 벌였다.

감사원은 특별조사국 인력 18명을 투입한 가운데 이번 감사기간을 2차례에 걸쳐 연장하며 넉 달 가까이 감사를 진행했다.

감사원은 이날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피살 공무원이 자진월북했다는 방향으로 관계기관을 몰고간 핵심 인물로 서훈 전 실장을 손꼽았다. 이대준 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취지로 사실상 결론을 내려놓았다는 것이다.

감사 결과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5시18분경 북한 해역에서 이대준 씨가 발견됐다는 사실을 국방부로부터 전달받고도 대북통지 등의 주관부처인 통일부를 제외한 채 해경 등에만 상황을 전파했다. 더구나 대응방향 결정 등을 위한 '최초 상황 평가회의'도 하지 않았다. 이후 같은 날 오후 6시 36분쯤 안보실은 청와대 내부보고망을 통해 당시까지 파악된 상황 등을 작성한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상신한뒤 상황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안보실장 등 주요 간부들이 오후 7시30분쯤 퇴근했다. 이씨가 발견된 시점은 실종이후 38시간이 지나 구조조치가 시급했는데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해당 기관들이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국가위기 컨트롤타워도 미작동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안보실은 이대준 씨가 피격됐다는 사실을 알고도 피격 이튿날 새벽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제외한 채 보고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해경의 잘못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감사원은 해경에 대해 "기존 증거 은폐, 실험 결과 왜곡,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생활 공개 등 사실과 다르게 이씨의 월북을 단정하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 정황을 사실확인 없이 월북의 근거나 동기로 삼고 확인된 증거는 은폐했으며 인위적 노력을 도출하기 위해 실험분석결과를 왜곡했다"고 덧붙였다.

자진월북의 근거로 제시된 '배에 남겨진 슬리퍼'의 소유자나 구명조끼 착용 여부 등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과 '도박자금 마련' 등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내용도 월북동기인 양 발표한 점을 문제삼았다.

더구나 해경은 피살 정보를 전달받고도 실종자를 발견하기 이전처럼 수색과 구조활동을 이어갔다.

고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된뒤 시신이 소각됐다는 국방부 발표가 '소각 추정'으로 바뀐 경위도 드러났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9월 27일 관계장관 화의에서 "24일 국방부가 시신소각과 관련해 발표한 내용이 너무 단정적이었다"라며 시신 소각과 관련해 국방부 장관에게 재분석을 지시했다. 이후 안보실은 국방부 등에 시신 소각과 관련해 '추가 조사가 필요하고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대응하라'는 지침을 내린뒤 국방부의 후속 발표는 '소각 추정'으로 바뀌었다. 

국방부와 합참은 이대준씨 발견정황을 처음 인지하고 상황평가회의를 했지만 인질 구출 등을 위한 작전은 검토하지 않은 채 통일부가 주관해야하는 상황인만큼 군에서 대응할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회의를 마쳤다.

통일부는 이대준씨 사건을 최초로 인지한 시점을 언제로 할지를 논의하면서 국정원으로부터 최초로 전달 받은 9월 22일 18시가 아니라 이대준씨가 피살된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23일 새벽 1시로 맞추기로 했다.

국방부도 군 첩보관련서를 삭제하는 등 은폐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감사결과에 대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감사위원회의 의결 등을 거쳐 관련 공무원에 대한 엄중문책 등의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서해 사건 관련 군사 기밀 삭제를 지시한 혐의로 서욱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이씨 유족은 지난 7월 서 전 장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 9월엔 해당 사건 수사를 지휘했던 해경 전 형사과장을 소환조사한 바 있으며, 대통령기록관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기도 했다.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에 여야는 극히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공식논평을 통해 "감사원이 오늘 고 이대준 씨 피격 사건에 대해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증거은폐와 실험결과 왜곡이 있었고 월북으로 단정했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했다"며 "국가의 첫번째 의무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인데도 문 정권은 공무수행 중이던 고 이대준 씨의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북한군에 의해 피격되었음에도 ‘월북’으로 조작하기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문 정권을 비난했다.

이어 "수사의뢰된 문 정권의 9개 기관과 관련자 20명은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에서 신기루 같은 종전선언을 위해 고 이대준씨를 명예살인까지 했다"며 "모든 사건 관련자에 대한 수사와 책임에는 그 어떤 예외도, 그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처음부터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사실관계를 비틀고 뒤집은 조작감사"라며 "대통령실에 주파수를 맞추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만들어낸 청부감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전임 정부의 정상적 판단과 조처에 불법과 범죄의 굴레를 씌우려는 파렴치한 시도는 결코 국민을 속일 수 없다"며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을 어떻게든 끌어들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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