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11.17 14:25
원성훈 기자.
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샅바싸움을 넘어 극한 정쟁으로 치닫게 되면서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가 발생할 것이 우려되고 있다. 

법정 예산 처리 시한은 12월 2일이다. 지금부터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내년 예산안에 대해 합리적으로 협의한다 해도 시간이 모자르다. 현재 상태를 보면 예산안 확정까지의 길은 '산 넘어 산'이다.

여야는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면으로 맞붙었다. 윤석열 정부가 신설한 '경찰국'의 예산 문제를 놓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섰다. 민주당이 지난 10일 행안위 예결소위에서 단독으로 경찰국 예산 6억300만원 전액을 삭감하고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은 7050억원을 증액하자, 국민의힘 소속 이채익 행안위원장은 예산안 상정을 거부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이날 국토교통위원회 예결소위에서도 용산공원 조성사업 예산 303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또한 지난달 기획재정위원회에서는 대통령실 영빈관 신축예산 497억원이 전액 철회됐다. 이에 더해 외교통일위원회에선 외교부가 과거 청와대 영빈관을 대신할 연회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편성한 외교네트워크 구축 예산 21억7400만원을 전액 삭감했으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청와대 개방·활용 예산 59억5000만원이 감액됐다.

이밖에도 민주당은 향후 운영위원회에서도 대통령실 이전 관리예산 54억6000만원도 삭감할 태세다. 특히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사업 중의 하나인 원자력 관련 예산도 모두 줄줄이 삭감하려고 벼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자신들이 '10대 민생사업'으로 지정했거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선 공약과 관련이 깊은 예산은 5조4946억원을 늘렸거나 상당폭의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지원 예산 7050억원을 되살린 게 대표적 사례다. 지역화폐 예산은 정부 예산안에는 빠져있었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핵심 공약이다. 

또한 민주당은 향후 중소기업·소상공인·취약자주 지원 사업 및 영구·국민 임대주택 공급 확대 및 재생에너지 지원 등 자신들이 10대 민생사업으로 삼은 부문에 대한 증액을 의결할 예정이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윤석열표 예산은 삭감하고 이재명표 예산은 되살리거나 증액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69석으로 국회의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는 민주당이 우월한 의석수를 배경으로 정부의 내년 예산안에서 민주당의 입장을 힘으로 관철시키려는 것이다.

물론, 민주주의를 유지하는데 다수결의 원칙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된다. 다만 모든 분야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기에 전력하는 것은 정치관례나 도의상 지나치다는 비판도 나온다. 더구나 새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려는 사업 중 타당성이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된 것이라면 야당도 대승적으로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다른 측면에서 역대 예산안 처리 기한을 보더라도 내년 예산안 처리까지 소요된 기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이다. 국회 예결위의 심사 착수부터 본회의 통과 때까지 걸린 시간을 살펴보면 2005년(11월14일∼12월30일)과 2007년(11월12일∼12월28일)이 47일로 가장 길었고, 2002년(10월29일∼11월8일)과 2008년(11월19일∼12월13일)이 각각 11일과 25일로 상대적으로 짧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개년만 보면 새해 예산안이 2021년에는 12월 2일에, 2020년에는 12월 10일에 최종통과됐다. 결국 12월초 정도에는 예산안이 통과된 것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11월 17일 현재까지도 여야가 새해 예산안을 합의하기는 커녕 서로 각자의 길을 가겠다는 식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렇듯 여야 대치로 난항이 예상되면서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진정한 의미에서 긴축이라 부르기 어렵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오히려 '증액'을 벼르고 있어 재정건전성 확보가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현재의 난맥상을 민주당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정부와 여당이 과연 민주당을 협상의 파트너로 충분히 존중했느냐를 따져야한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다. 과거 일부 지역에서 지역사랑상품권의 활용으로 경기가 반짝 특수효과를 누렸다. 정책 효과를 놓고 논란이 있지만 지역사회에서 환영하는 정책인 것만은 분명하다. 지역상품권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입장을 고려해 처음부터 야당과 절충하면서 합리적인 규모로 예산에 반영하는 정무적 고려가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정부와 여당이 정치적 유연성을 갖추고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하는데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마디로 대야(對野) 정책을 치밀하게 마련하지 않았기에 예산안 난항을 키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제 준예산 편성에 대한 우려도 공공연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비록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준예산 편성 가능성에 대해 "한 번도 준예산 편성을 생각해 본 적 없다. 국회가 합리적인 결정을 할 것"이라고 피력했지만 이 같은 질문이 나온 것 자체가 준예산 편성 우려가 크다는 반증으로 해석된다. 

'준예산'은 국가의 예산이 법정기간 내에 성립하지 못한 경우, 정부가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전(前)회계연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적인 예산이다. 그러므로 준예산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 국내외 상황을 반영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여야가 끝내 내년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게 된다면 피해를 직접 받게되는 것은 정치권이 아니라 중소기업들과 소상공인이다. 한마디로 대다수 국민들이 피해를 바로 받게 된다. 이 같은 최악의 사태에 이르기전에 국회는 각자의 입장에서 '두 발' 물러난 채 상대방의 요구를 '한 발' 앞에서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 끝내 타협과 절충을 기반으로 삼는 정치력을 발휘하는데 실패한다면 여야 모두 국민들의 지탄을 받을 것이다. 언제까지 '3류 정치권'이란 비난을 들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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