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2.12.05 18:08

최고경영자 교체 최소화·젊은 인력 전진 배치·능력 인정 여성 임원 약진

이재용(왼쪽부터)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사진제공=각 그룹)​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올해 4대 그룹 연말 인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안정'이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을 고려해 최고경영자(CEO)를 유임하고, 인사 폭을 줄인 모습이 눈에 띈다. 대신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인원들을 전진 배치하며 힘을 실었다. 능력과 성과를 인정받은 여성 대표와 임원들이 주요 보직에 오르며 '유리천장'이 깨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의 2023년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끝으로 4대 그룹 연말 인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파격 인사를 단행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경영 안정에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어려운 만큼,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인사 기조가 우선된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한종희 DX부문장 부회장과 경계현 DS부문장 사장의 '투 톱'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한다. 사업부장들도 유임됐다. 이정배 메모리사업부장(사장), 최시영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 박용인 시스템LSI사업부장(사장)은 내년에도 반도체 사업을 이끈다. DX부문에선 노태문 MX(모바일경험) 사업부장(사장)이 자리를 지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취임 후 첫 인사로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 등 대대적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으나, 뚜껑을 열어보니 변화폭은 크지 않았다. 

SK그룹도 조직 안정에 방점을 둔 2023년도 임원 인사 및 조직 개편을 진행했다. 기존 부회장단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를 대부분 유임했다. 그룹 최고 의사결정협의체 SK수펙스추구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조대식 의장은 그룹 역사상 최초로 4연임에 성공했다. 조 의장 연임과 함께 SK수펙스추구협의회의 7개 위원회 체제도 그대로 유지된다. 다만 기존 전략위원회를 전략·글로벌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위원장 5명을 전환 배치하는 식으로 변화를 줬다.

현대차그룹도 변화를 최소화하는 안정적 인사 기조를 보였다. 그룹을 통틀어 사장 승진자가 1명 나왔다. 루크 동커볼케 그룹 CCO가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관심을 모았던 부회장 승진자는 없었다. 대표이사 교체는 현대글로비스에서만 이뤄졌다. 이규복 현대차 프로세스혁신사업부 전무를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대표이사로 내정했다. 

4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 역시 '안정 속 혁신'을 키워드로 CEO 대부분을 재신임했다. 권봉석 ㈜LG 최고운영책임자(COO) 부회장, 정호영 LG디스플레이 사장, 신학철 LG화학 부회장 등이 모두 유임됐다. 

김우준(왼쪽부터) 삼성전자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 남석우 삼성전자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 사장, 송재혁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 사장. (사진제공=삼성전자)
김우준(왼쪽부터) 삼성전자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 남석우 삼성전자 글로벌 제조&인프라총괄 제조담당 사장, 송재혁 최고기술책임자(CTO) 겸 반도체연구소장 사장. (사진제공=삼성전자)

베테랑 CEO들이 자리를 지키며 안정을 꾀한 가운데, 차세대 사업과 주력 사업 분야에서 인재를 대거 발탁하며 미래 준비에 힘을 실었다. 

삼성전자는 네트워크 사업 성장에 기여한 김우준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 전략마케팅팀장 부사장을 DX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서울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인 그는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네트워크 전문가로 꼽힌다. 반도체 사업의 개발과 제조 역량 강화에 기여한 부사장 2명도 사장 승진자에 이름을 올렸다. 

SK그룹은 첨단소재, 그린, 바이오, 디지털, 반도체 등 핵심 사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방향으로 인사 및 조직 개편을 진행했다. 현대차그룹은 그룹 핵심사업 간 연계 강화를 통한 미래 모빌리티 그룹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글로벌전략책임자(GSO)를 신설하기로 했다. GSO의 각 부문 인사 및 세부 역할은 이달 중 결정할 예정이다.

LG그룹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꼽히는 핵심 사업에서 승진 인사를 확대했다. 배터리 시장 선두를 지키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에서 승진자를 배출했고, 양극재 등 배터리 소재 사업을 키우고 있는 LG화학 첨단소재사업본부에서도 승진자가 나왔다. LG전자는 글로벌 1위를 달성한 가전 사업과 최근 흑자 전환에 성공한 전장(VS) 사업에서 승진 인사를 단행했다. LG이노텍과 LG CNS 등에서는 추가적인 성장 모멘텀을 만들 수 있도록 차세대 리더를 적극 발탁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영희(왼쪽부터)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 박애리 지투알 CEO 부사장, 안정은 11번가 각자대표 내정자. (사진제공=각 사)
이영희(왼쪽부터)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 이정애 LG생활건강 사장, 박애리 지투알 CEO 부사장, 안정은 11번가 각자대표 내정자. (사진제공=각 사)

여풍(女風)도 거셌다. 4대 그룹 핵심 보직에 여성 CEO들이 등용됐다. 

삼성전자에선 이영희 DX부문 글로벌마케팅센터장 부사장이 DX부문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역사상 첫 번째 여성 사장이며, 그룹 전체를 둘러봐도 비오너가 출신 여성 사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삼성 계열사 여성 사장은 오너 일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유일했다. 

SK그룹에서도 창사 이래 첫 여성 CEO가 탄생했다. 온라인 쇼핑몰 11번가 CEO로 내정된 안정은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주인공이다. 안 COO는 향후 이사회를 거쳐 하형일 사장과 함께 각자 대표로 공식 취임할 예정이다. 

지난달 임원 인사를 단행한 LG그룹은 4대 그룹에서 오너 일가가 아닌 여성 CEO를 가장 먼저 배출했다. 이정애 LG생활건강 신임 사장과 박애리 지투알 신임 대표이사 부사장이 이번 인사를 통해 CEO에 선임됐다. 

한편, 4대 그룹 중 SK는 본격적인 3세 경영 신호탄을 쐈다. 최성환 SK네트웍스 사업총괄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최 사장은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의 장남이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조카다. 

주요 그룹 오너 일가 3·4세의 임원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SK 역시 이러한 흐름에 동참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화그룹에선 김승연 회장의 장님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삼남 김동선 한화호텔앤리조트 전무도 한화솔루션 갤러리아 부문 전략본부장을 맡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도 미래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중책을 맡았다. GS그룹, LX그룹도 젊은 오너 3~4세를 전진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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