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06 10:00
사람의 눈은 감정을 표현한다. 그윽한 눈길일 때는 눈동자가 커져 있고, 노려보는 경우에는 그 반대다. 노여움이나 싫어함을 표현할 때는 눈동자가 작아지면서 흰자위가 크게 드러난다. 그런 상태를 '백안시(白眼視)'라고 한다.

사람의 눈짓을 이야기하는 한자 단어는 적지 않은 편이다. 지난해 이 칼럼에서 소개했던 추파(秋波)도 그 한 예다. 우리에게 또 잘 알려진 단어가 백안시(白眼視)다. 남을 좋지 않게 보는 눈빛이다.

위진(魏晋) 남북조 때 세속의 번잡함을 경멸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 완적(阮籍)은 눈동자 굴림의 명수였다. 눈짓 하나로 좋고 싫음을 명백하게 표시할 수 있었다니 말이다. 모친상 때 조문을 위해 찾아온 혜희(嵇喜)와 혜강(嵇康) 형제를 대하는 그의 눈짓은 분명했다.

한 사람에게는 백안(白眼), 한 사람에게는 청안(靑眼)으로 대했다. 백안(白眼)은 눈동자 흰자위가 많이 드러나는 일종의 사시(斜視)로, 눈을 흘기는 동작이다. 그에 비해 청안(靑眼)은 관심과 애정이 어린 그윽한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행위다. 세속에 찌든 형 혜희(嵇喜)에게는 눈을 흘겼고, 명리(名利)를 초월해 뜻이 맞는 동생 혜강(嵇康)에게는 애정 어린 눈짓을 보낸 것이다. ‘뭔가를 백안시(白眼視)하다’라는 백안(白眼)이라는 말뜻의 유래다.

사람의 흰자위를 일컫는 공막은 안구의 뒤쪽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 뒤쪽에 모두 6개의 근육이 붙어 있어서 안구(眼球)는 상하좌우로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 사람의 웬만한 감정은 이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극명하게 나타난다.

사람의 눈이 감정을 이처럼 뚜렷하게 나타낼 정도로 진화(進化)한 이유는 다른 존재와의 의사소통, 나아가 협력을 하기 위함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협력하는 눈’이라는 가설의 내용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의 실험에 따르면 침팬지와 고릴라 등 영장류의 경우 관찰자가 머리만 움직일 때 시선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이에 비해 인류의 아기들은 관찰자가 눈만을 움직여도 이에 반응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흰자위가 특히 발달한 점도 다른 존재와의 의사소통을 염두에 둔 진화결과라는 게 이 연구팀의 결론이다. 아울러 몸집에 비해 비례가 안 맞을 정도로 눈이 큰 점, 눈의 바깥 윤곽과 홍채의 위치가 선명하게 보이는 점도 같은 진화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라는 설명이다.

‘협력하는 눈’이라는 가설이 흥미롭다. 우리의 평소 눈짓을 두고 볼 때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얘기다. 그러나 어지럽다고 세상살이에 소극적이기만 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 나아가 싫은 사람에 눈을 흘기기만 했던 완적(阮籍)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세상은 그런 자세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옳다. 한 눈으로 세상을 대하는 애꾸눈의 독안(獨眼), 흘겨보는 데만 능한 사안(斜眼), 가까운 곳에만 머무는 근안(近眼), 차갑게만 대상을 보는 냉안(冷眼), 제 욕심에만 물든 혈안(血眼)은 다 경계하자.

그보다는 대상을 따뜻하게 보려는 자안(慈眼), 지혜롭게 사물과 세상 이치를 관찰하는 혜안(慧眼), 상대의 정체를 옳게 바라보는 정안(正眼), 공정하게 세상을 살피는 공안(公眼), 그로써 진리를 향하는 법안(法眼)이 우리에게 더 필요하다.

오랜 만에 이뤄진 청와대와 여야(與野) 3자 회동을 보며 생각한 눈짓, 눈빛 이야기다. 좋고 싫음만을 따지는 흑백(黑白)의 협곡에서 벗어나 크고 넓은 지평(地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다. 작고 어두운 눈빛을 떨쳐 크고 따뜻한 눈빛으로 함께 소통하는 정치를 기대한다.

 

<한자 풀이>

眼 (눈 안, 눈 불거질 은): 눈, 눈동자. 구멍. 안광, 시력. 요점. 어린 싹. 거품. 양수사(세는 단위). 보다, 만나다. 눈 불거지다 (은). 눈 불거진 모양 (은).

斜 (비낄 사, 골짜기 이름 야): 비끼다, 비스듬하다. 비뚤게 두다. 기울다. 굽다, 굴곡을 이루다. (원본을)베끼다. 골짜기 이름 (야). 땅 이름 (야).

慈 (사랑 자): 사랑. 어머니. 자비. 인정, 동정. 사랑하다.

慧 (슬기로울 혜): 슬기롭다, 총명하다, 사리에 밝다. 교활하다, 간교하다. 상쾌하다, 시원스럽다. 슬기, 능력. 지혜. 깨달음.

 

<중국어&성어>

青白眼 qīng bái yǎn: 완적의 일화에서 비롯한 단어다. 좋고 싫음의 눈빛이나 눈짓으로 대상을 보는 사람, 또는 그런 행위를 가리킨다.

走眼 zǒu yǎn: 눈(眼)이 지나치다(走)의 뜻. 무엇인가를 놓치는 일, 따라서 실수와 과오를 뜻하는 단어다.

眼明手快 yǎn míng shǒu kuài: 눈이 밝고 손이 빠르다. 일처리 잘 하는 사람을 이르는 대표적인 성어다.

眼高手低 yǎn gāo shǒu dī: 우리가 잘 쓰는 성어 안고수비(眼高手卑), 즉 안목은 높을지 모르지만 그를 수행할 실력(手)는 보잘 것 없음(低 또는 卑)을 일컫는 중국 성어다. 眼高手生(안고수생)이라고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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