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한동수기자
  • 입력 2016.06.19 14:04

노사간 신뢰없으면 무용지물

[뉴스웍스=한동수기자] 정보통신기술이 직장 근무 문화도 바꿀 수 있을까. 출퇴근 시간은 물론 근무 공간도 자율적으로 정하는 탄력근무제가 전 세계 산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지금은 일부 국가에서 실험단계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확대, 운영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0년대초반 여러기업이 탄력근무제을 도입했으나 이내 흐지부지됐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재계 1위인 삼성을 중심으로 탄력근무자는 재점화됐다. 삼성전자는 직원들이 출‧퇴근시간을 정하는 자율출퇴근제 1년을 맞았고 이 제도는 그룹내 전자 업체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의 도요타는 보다 혁신적인 근무제도를 도입 최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 신문을 통해 소개됐다.

전체 직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오는 8월부터 재택근무를 실시한다는 게 골자다. 재택근무자로 지정된 직원들은 일주일에 2시간만 회사에 출근하면 된다.

이 신문은 이같은 근무 형태에 대해 숙련된 여성 직원들이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을 줄이고, 남성 직원들도 집에서 가사를 도우며 근무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같은 근무 형태 실험이 삼성과 도요타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구글을 비롯한 미국의 실리콘밸리 IT기업들은 이미 시행하고 직원들이 자율적인 공간과 시간 활용으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수년 후 이같은 근무 제도는 일반화될 수도 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탄력근무제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노사간 신뢰를 바탕으로한 직장 문화의 변화 ▲실적 증가와 같이 효과가 나타났다는 정량적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탄력근무제가 우리사회에 정착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1년넘긴 삼성의 '자율출퇴근제'

지난 2105년 4월13일부터 삼성전자 직원들은 일일 4시간이상, 주 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사이에 자율적으로 출‧퇴근 시간을 정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물론 근무 형태상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까지 시행되는데는 어려움이 있고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직원들은 사무직 중에서도 일부 부서에 한한다. 하지만 이 제도는 그룹내 전자업계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단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다.

만족도는 좋다. 다만 업황이 좋지 않고 실적이 뒷받침 되지 않을 때도 이런 제도가 유지될 수 있을 지에 의문을 품는 직원들도 있는게 사실이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이론 적으로는 금요일 오전 4시간만 근무하고, 주 40시간 근무를 채웠다면 주말을 이용해 해외여행도 갈 수 있다”며 “하지만 모든 직원이 매주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혁신'위한 도요타의 실험 

지난 9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도요타가 오는 8월부터 사무직의 경우 회사에서 2시간만 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집이나 외부에서 일하는 파격적인 근무형태 혁신안을 마련했다고 보도했다. 외근이 많은 영업직은 근무 후 회사로 들어와 일일보고 대신 귀가 후 이메일을 이용, 업무 현황을 보고하면 된다.

이번 도요타의 근무제도 변화앞에 ‘파격’과 ‘혁신’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재택근무 적용 인원 때문이다. 도요타의 3월말기준 사무직과 연구기술직 본사직원은 7만2000명에 달하는데 이 중 2만5000여명이 이번 혁신안의 적용대상이다.

눈여겨 볼 것은 도요타가 이 혁신안을 도입하면서 여직원이 육아를 위해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부모 간병 이직자들에 대한 외부 유출을 막겠다는 것도 이 제도 도입의 이유다.

또한 육아와 가사를 도와야 할 사무직 남성 직원들에게도 편한 근무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게 이 제도 도입의 취지다.

김범준 LG경제연구원은 “일본 현지 보도를 종합해보면 도요타가 인트라넷과 다양한 메신저 등을 활용,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것과 같은 업무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른 도요타의 근무형태 변화가 산업계발 사회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력근무제 정착하려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탄력근무제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자율적 근무시간 활용에 초점이 맞춰져있다면, 일본은 더 나아가 집에서 사적인일과 병행해 업무를 수행해도 된다는 의미다. 공(公)과 사(私)영역이 구분보다, 사적 영역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공적 업무의 실험인셈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식이든 일본식이든 탄력근무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사간의 신뢰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탄력근무제는 2000년대 초반 확산 움직임을 보이다 흐지부지됐다”며 “최고경영자가 직원들에게 인사에 불이익이 없다는 믿음을 주고, 직원역시 책임감을 가져야만 자율성과 창의성을 끌어 낼 수 있는 근무형태가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했다.

자율출퇴근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직원들 사이에 ‘자율출퇴근 했다가 짤리는 것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품게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유연한 사고방식과 기업문화 변화가 가시화된다면 일본 도요타식 출산과 육아, 노무모 간병과 가사분담을 위한 재택근무도 먼 얘기는 아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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