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21 15:39
제사에 사용하는 희생(犧牲)의 털 색깔, 나아가 건강을 체크하는 일에서 비롯한 단어가 물색(物色)이다. 여럿의 의견이 일어나는 일은 가리킬 때는 물의(物議)다.

만물(萬物)이나 사물(事物) 등 ‘나’의 바깥에 있는 물체(物體)의 존재를 가리킬 때 흔히 쓰이는 한자가 물(物)이다. 살아가면서 늘 지니거나 쓰는 대상인 물건(物件) 등을 모두 지칭하고 있으니 우리에게는 매우 가까운 글자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글자의 원래 출발점은 ‘여러 가지가 섞여 있는 것’이라는 뜻에 가깝다.

일반적인 명칭으로 먼저 등장하는 뜻은 ‘얼룩소’다. 털 빛깔이 여러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소를 일컬었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게 ‘여러 가지 색이 섞인 비단’이다. 이른바 잡백(雜帛)이다. 그렇게 여러 색깔이 섞인 천으로 만든 깃발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다.

털빛이 여러 색으로 뒤섞인 얼룩소,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진 비단인 잡백 등의 원래 명사에서 더 발전해 나온 게 만물과 사물 등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물체’라는 의미다. 세상 모든 물체의 운동과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이 물리(物理), 그 물건의 값이 물가(物價)라는 이름을 얻었던 이유들이다.

한국에서도 자주 쓰는 단어가 물의(物議)다. 物(물)이라는 한자의 일반적 의미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단어는 ‘알쏭달쏭’이다. 그러나 物(물)이라는 글자의 원래 뜻을 생각해 보면 이 단어의 의미는 자명해진다. 직접 풀자면 ‘여러 가지 논의’라는 뜻이다.

여러 사람의 마음은 물의(物意), 여러 사람의 평판은 물론(物論), 여러 사람의 구설(口舌) 등을 물청(物聽)이라고 적는 게 비슷한 용례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단어가 물의(物議)인데, 누군가의 행위나 생각 등이 여러 사람의 시비(是非)를 일으키면서 빚어지는 말썽이다. 역시 일반적인 여론(輿論)의 의미도 담고 있지만, 이런 물의(物議)를 일으키는 행동은 결코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物(물)이라는 글자는 나중에 ‘찾아내다’ ‘살피다’라는 뜻의 동사(動詞) 의미를 얻는다.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물색(物色)이다. 물색(物色)이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고대 사회에서 제사를 치를 때 잡는 소와 양 등 희생(犧牲)의 털 색깔이었다. 제사를 앞두고 건강과 외모가 이상이 없는 희생을 고르고, 또 살피는 일이 중요했다. 물색이라는 단어가 ‘찾다’라는 뜻으로 발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싶다. 땅 찾는 일은 물토(物土), 좋은 말 고르는 작업은 물마(物馬)라고 적기도 한다.

이름이 제법 난 인물(人物)들이 재물(財物)과 뇌물(賂物)을 지나치게 물색(物色)했음인지 한 기업인의 자살에 이은 리스트 공개로 대한민국 사회가 여러 물의(物議)로 소란하기 짝이 없는 요즘이다. 검찰의 수사를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우선은 실망이다. 여러 사람의 기대를 모으는 일이 물망(物望)일진대, 우리의 정치적인 희망이 겨우 이런 인물들에게 걸려 있었다는 게 한심스럽기만 하다.

꽃은 졌다가도 다시 핀다. 봄은 갔다가도 어김없이 또 돌아온다. 부정과 비리로 물의(物議)를 빚어 솟구치다 곤두박질치는 유명 정치인 등이 그런 순환을 닮았다. 때가 이르면 반드시 나타나는 그런 물의(物議)의 주인공들-. 얼굴은 매번 다르지만 행태는 어쩌면 그렇게 순환과 반복을 거듭하는 세월의 흐름을 꼭 닮았을까.

 

<한자 풀이>

物 (물건 물): 물건. 만물. 사물. 일, 사무. 재물. 종류. 색깔. 기(旗). 활 쏘는 자리. 얼룩소. 사람. 보다. 살피다, 변별하다. 헤아리다, 견주다.

議 (의논할 의): 의논하다. 토의하다. 책잡다. 가리다, 분간하다. 의견. 주장. 의논. 문체의 이름.

 

<중국어&성어>

物极(極)必反 wù jí bì fǎn: 사물은 극점(極點)에 달할 경우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는 도가(道家)철학의 용어. 극한까지 치달았다가 원래로 돌아오는 그 무엇을 가리킬 때 자주 쓴다.

物是人非 wù shì rén fēi: 사물(物)은 그대로(是)인데, 사람(人)은 옛날 그대로가 아니다(非)는 뜻의 성어. 우리 시조에 등장하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의 내용에 부합하는 말이다.

物以类(類)聚 wù yǐ lèi jù: 사물은 같은 종류끼리 모이게 마련이라는 뜻의 성어. 유유상종(類類相從)의 성어와 같은 말이다. 뒤에 人以群分 rén yǐ qún fēn을 붙여 함께 쓰기도 한다. 뒤의 말뜻은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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