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6.29 16:32
시원한 비가 내리는 거리의 모습이다. 오래 내리는 장맛비는 음우(淫雨)라고도 적는다. 음란(淫亂)은 단순한 색정이 아니라, 뭔가에 빠져 깊은 혼란으로 빠져드는 행위 등을 일컫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남녀 사이의 어지러운 성(性) 관계를 일컬을 때 이 음란(淫亂)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남녀 사이의 어둡고 칙칙한 관계만을 염두에 두고 이 단어를 쓰기에는 원래의 뜻이 퍽 넓다. 우선 淫(음)이라는 글자가 그렇다.

이 글자의 초기 형태를 푸는 일은 쉽지 않다. 꼴과 의미 모두 분명치 않아서다. 따라서 이 글자를 연역해 사용한 후대의 용례를 보는 편이 낫다. 우선은 어떤 흐름을 좇아 묻히거나 흘러가며 이어지는 상태나 행위를 가리켰다. 초기 자전(字典)인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뜻풀이에 따르는 경우다.

옷감 등에 물을 들이는 일, 즉 염색(染色)의 영역에서도 이 글자가 등장한다. 그 다음에 나타나는 뜻이 남녀 사이의 통간(通姦)이라는 의미다. 이어 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마구잡이로 벌이는 행동인 방종(放縱), 탐욕과 탐심, 다시 그런 욕망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미혹(迷惑)의 새김도 얻는다.

침음(浸淫)이라는 단어는 위의 첫 풀이에 해당한다. 어딘가에 깊이 빠져드는 일이다. 오래 이어져 제 범위를 넘어서는 권력을 일컬을 때는 음위(淫威)라고 한다. 끊이지 않고 내리는 장맛비는 음우(淫雨), 음림(淫霖)으로 적을 수 있다. 책 읽기에만 빠져들면 서음(書淫), 시 짓기에만 골몰하면 시음(詩淫)이다.

남녀 사이의 어둡고 칙칙한 관계를 이야기하는 단어는 많다. 매음(賣淫), 음담(淫談), 음욕(淫慾), 음탕(淫蕩), 간음(姦淫) 등이 다 그렇다. 지나칠 정도로 그에 매달리면 황음(荒淫)이라고 적었다. 더 심한 경우가 황음무도(荒淫無道) 또는 황음무도(荒淫無度)다.

정상적이지 못한 일에 깊이 빠지거나, 아니면 색(色)을 밝혀 헤어 나오지 못해 아주 어지러운 상태에 드는 경우가 바로 음란(淫亂)이다. ‘음란물’과 ‘색정’ 등에 국한해서 이 단어를 쓸 수 없는 이유다. 淫(음)의 행위가 이어지고 또 이어져 수습할 수 없는 상태로 치달았을 때를 일컫는 말이다.

음란(淫亂)은 결국 제 욕망을 추스르지 못해 생기는 결과다. 가지려는 욕심, 거느리려는 욕심, 품에 안으려는 욕심이 원인이다. 그런 욕심이 끝없이 이어져 종국에는 저 스스로를 허물고 사회적으로도 깊은 곤경에 처한다.

우리는 ‘음란 공화국’일지 모른다. 공금으로 제 가족을 고용한 국회의원, 리베이트로 국고를 축냈던 정당, 면세점 입점 로비로 거액을 챙긴 대기업 오너 친족, 나라의 구조자금으로 제 주머니 채웠던 기업인, 부정당한 거래로 거금을 벌어들인 전직 검사, 돌봤던 여학생과 성 관계를 맺은 경찰까지 다 그렇다.

욕망의 바람이 불어 이제 기운으로까지 번졌다. 이를 우리사회의 풍기(風氣)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정도다. 어쩌면 이 사회가 지닌 기운의 모습, 기상(氣象)일지도 모르겠다. 2300년 전의 맹자(孟子)는 바람직한 사람, 대장부(大丈夫)를 이렇게 표현했다.

“부귀함도 미혹에 들게 할 수 없고, 가난하고 미천함도 움직일 수 없으며, 센 힘으로도 무릎 꿇릴 수 없다(富貴不能淫, 貧賤不能移, 威武不能屈)”고 말이다. 요즘 우리사회가 이룬 음란함의 풍기와 기상을 두고 볼 때 아무래도 첫 구절이 눈에 유독 든다.

부귀영화의 달콤함에 빠져들지(淫) 않는 사람 말이다. 대장부라고 했지만, 그저 바람직한 사람의 상이다. 남녀노소의 구별이 필요 없는 말이다. 그런 사람 우리사회에 얼마나 될까. 멸종위기에 처한 대상 아닐까. 음풍(淫風)이 가득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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