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유광종기자
  • 입력 2016.07.02 14:50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말을 해야 한다. 그러나 입으로 뱉는 말은 신중해야 한다. 연설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입을 닫고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도 대안의 하나다.

어느 자리에 가서 '한 말씀'해야 할 때가 적지 않다. 그런 행위가 바로 연설(演說)이다. 쓰임은 많아 말뜻을 모를 이는 거의 없다. 그러나 왜 앞에 두는 글자가 演(연)인지는 퍽 궁금한 대목이다. 적지 않은 연설을 하면서도 왜 하필이면 연설일까는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 많다.  

앞 글자 演(연)은 물길이 멀리 나아가는 모양을 가리킨다고 한다. 물이 번져 나가는 모습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고인 물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해 나아가는 물, 그런 과정에서 주변을 점점 적시는 물의 모습이다. 원래의 뜻이 그러하니 이 글자는 나중에 무엇인가가 점차 펼쳐져 나가는 상황을 가리키는 뜻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엇인가를 펼쳐 보이는 일, 우리 생활에서는 매우 친근한 행위다. 그런 일은 부지기수다. 재주를 펼쳐 보이는 일이 연예(演藝)다. 기술을 펼쳐 보이면 연기(演技), 말이 대상일 경우가 바로 연설(演說)이다. 자주 익히는 일을 반복하는 경우는 연습(演習)이다. 익히고 또 익히는 일이다.

실을 줄줄 풀어가듯이 일정한 이치(理致)에 따라 추리(推理)를 반복하면 연역(演繹)이라고 적는다. 놀음을 펼쳐 보이면 연희(演戱)다. 재주꾼, 익살꾼, 놀이꾼 등이 남들 앞에서 자신의 예능(藝能)을 펼쳐서 보여주는 행위다. 극(劇)으로 구성한 스토리를 남 앞에서 말과 행동으로 보이면 그게 바로 연극(演劇)이다.

봉장작희(逢場作戱)라는 성어가 있다. 원래는 불가(佛家)의 선어(禪語)다. 깨달음을 얻는다면 때와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구성은 상황(場)을 만나(逢) 놀음을(戱) 놀아본다(作)의 엮음이다. 여기서의 작희(作戱)가 곧 연희(演戱)다. 규범과 겉치레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신 있게 상황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노련함, 성숙함 등을 이야기할 때 쓸 수 있는 성어다.

말에 담긴 사정이 그러하니, 이 봉장작희(逢場作戱)라는 성어는 본래 나름대로 이미 한 경계에 이르러 외부적인 조건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주동적으로 그 상황을 이끌어 갈 수 있는 사람에게나 쓸 수 있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때로 바람피운 남성이 여성에게 둘러대는 말로 사용해 말 값어치가 다소 떨어지기도 하지만….

정치인을 비롯해 사회의 상층을 이루는 사람들의 발언은 때로 비상한 관심을 끈다. 중요한 정책과 행위 등에 관한 정보가 그 발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그로써 사회의 변화가 태동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에 미리 대응할 채비를 갖추며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말은 내어도 좋을 것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잘 골라 뱉어야 하는 긴장감도 있다. 공인으로서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담기 곤란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연설이 좋은 연설로 남기 위해서는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좋을 말을 고르는 일부터 잘 해야 한다.

남을 설득하기 힘든 발언, 명분이 부족해 궁색한 말, 제 주장만 잔뜩 풀어놓아 눈쌀을 찌푸리게 만드는 언어 등이 우리사회의 연설인들에게 자주 보인다. 흐름이 유연한 물처럼 평잔하면서도 멀리 나아가는 말솜씨를 기르는 데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으면 입을 아예 닫는 것도 다른 한 방법이다.

 

<한자 풀이>

演 (펼 연): 펴다, 늘이다. 부연하다, 자세히 설명하다. 넓히다, 넓게 미치다. 스며들다. 멀리 흐르다. 통하다. 헤아리다, 계산하다. 천천히 걷다.

繹 (풀 역): 풀다. 풀리다, 풀어내다. 끌어내다. 당기다. 다스리다. 연달아하다. 늘어놓다. 찾다. 실 뽑다. 실마리. 제사 이름.

戱 (희롱할 희, 탄식할 호): 희롱하다. 놀이하다. 놀다. 놀이. 연극. 탄식하다(호).

 

<중국어&성어>

演讲(講) yǎn jiǎng: 일반적으로 ‘연설’이라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演说(說) yǎn shuō도 쓰기는 하지만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表演 biǎo yǎn: 일반적인 공연, 연출 등을 광범위하게 일컫는 단어다.

逢场(場)作戏(戱) féng chǎng zuò xì: 뜻풀이는 본문과 같다.

故技重演 gù jì chóng yǎn: 옛(故) 기술(技)을 거듭(重) 펼쳐 보인다(演)는 뜻의 성어다. 새로움이 없는, 마냥 답보적인 사람 또는 그 행위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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