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벼리기자
  • 입력 2016.07.15 08:50

[뉴스웍스=김벼리기자]

#1 “온몸에 털이 있던 네안데르탈인은 그렇지 않은 호모사피엔스보다 생존에 유리했지만 결국 멸종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네안데르탈인은 동굴에서 고립생활을 하며 자급자족했고 호모사피엔스는 서로 교류하며 부족한 것들을 서로 바꾸고 살았습니다.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커뮤니케이션의 능력이 있었고, 소셜 네트워크를 발달시킨 거죠.”(지난달 7일 박희재 청년희망재단 이사장이 ‘청년희망 특강, 열려라! 청년 일자리’ 강연 중 한 말)

#2 호텔 로비는 화려하다. 드레스, 턱시도, 샹들리에, 레드카펫 등 고급스러움의 총체다. 그러나 정작 이런 이미지들이 호텔에서 자치하는 비중은 지극히 미미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날이 호텔을 찾지만 매번 바뀌는 수많은 개인들이다. 만약 지금 당장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안주하며 호텔 문을 닫고 ‘검증 안 된’ 손님을 들이지 않는다고 상상해보자. 그 호텔은 바로 파산행이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호텔 비유’를 재구성)

 

지난 6일(현지 시각) 닌텐도가 출시한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로 전 세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포켓몬 고 광고의 한 장면.

지난 6일(현지 시각) 닌텐도가 미국·호주·뉴질랜드 3곳에 선(先)출시한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로 전 세계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포켓몬 고'는 일본 애니메이션 ‘포켓몬스터’에 증강현실(AR) 기술을 접목한 게임이다. 현실세계를 배경으로 포켓몬을 포획, 훈련, 대전, 거래 등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위치추적시스템(GPS)을 활용해 게임 속 지도와 실제 지도를 연동하는 등 현실감을 더했다.

특히 이번 '포켓몬 고'의 성공은 깊은 경영위기에 빠져있던 닌텐도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일본 도쿄 증시에서 닌텐도의 주가는 최근 사흘 간 38% 급등하기도 했다.

이렇게 닌텐도가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위기를 모면, 환호하고 있는 이 시점에 바다 건너 한국에서는 지난 13일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했다. 

개발보다는 마케팅을 중시하고, 산업자본을 형성해 기업을 견고히 키워나가는 대신 개인적 이해관계에 급급해 투기자본에 몰입하는 등 미흡한 기업가 정신이 초래한 비극이다. 닌텐도의 재기와 김 회장의 검찰 출두 뒤에 가려져 있는 같은 듯 다른 두 기업의 성공과 위기를 조명해본다.   

◆재기의 원동력 ‘창조적 파괴’…닌텐도를 살린 세 가지 결정적 순간들

닌텐도의 전신은 일본의 전통 화투 하나후다(花札)를 만드는 전통기업으로 지난 1889년 세워졌다. 1963년 현재의 ‘닌텐도’로 이름을 변경한 이후 1977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 Color TV 6을 발매한 것을 기점으로 닌텐도는 전자게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다.

닌텐도의 전성기는 80년대였다. 1981년 출시한 비디오 게임 ‘동킹콩’, 1983년 발매한 ‘패밀리 컴퓨터(패미컴)’, 1985년 출시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모두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1989년 닌텐도가 출시한 ‘게임보이’는 최초로 소프트웨어(게임팩)를 갈아 끼우면서 한 기기로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었다.

-결정적 순간 하나

그러나 패미컴으로 이룬 성취는 닌텐도에게 만족은커녕 오히려 고민거리를 안겨다주었다. 패미컴을 뛰어넘을 만한 후속 게임기를 고심하던 닌텐도는 1989년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를 내놓았다.

이전에도 휴대용 게임기는 있었다. 그러나 닌텐도는 기기 자체에 들어있는 게임만 할 수 있는 기존 게임기의 한계를 인식, 소프트웨어를 게임기 본체 밖으로 꺼내는 혁신을 감행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게임보이였다. 게임보이는 소프트웨어를 갈아 끼우면서 여러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배터리 사용이 문제가 되자 닌텐도는 흑백화면을 선택하는 과감함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닌텐도는 컬러화면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게임보이는 출시 직후 연일 매진사례를 이어나갔다. 2주 만에 30만대가 팔렸고 북미에선 수출을 시작한 그 해 100만대 이상을 판매해 23억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2004년 출시한 닌텐도DS는 ‘게임은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보란듯이 뒤집는 콘셉트의 게임들을 선보였다.

-결정적 순간 둘

2000년대 들어 게임 시장의 지형도가 급속히 바뀌었다. 특히 2000년 소니에서 출시한 ‘플레이스테이션(Playstation) 2’은 앞서 ‘플레이스테이션 1’, 세가새턴(Sega Saturn) 등으로부터 이어져온 3차원(3D) 그래픽 게임 비디오콘솔의 본격적인 대중화의 서막을 열었다.

그러나 닌텐도는 이런 시장 판도의 변화에도 도전정신을 발휘하며 혁신을 거듭했다. 그렇게 출시한 것이 2004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NDS)’다. ‘게임은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을 거부하며 두뇌트레이닝, 강아지키우기 게임 등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든 것이다. “게임은 만인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이와타 사토루 당시 닌텐도 대표의 독특한 철학이 담긴 제품이었다. 

또한 2년 뒤 ‘차세대 가정용 게임’ 위(Wii)를 출시해 ‘게임과 가족’, ‘게임과 건강’ 등 어울리지 않는 두 요소를 결합하고 동작인식 기술을 활용하는 등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이를 통해 다시 상승세를 잡은 닌텐도는 지난 2008년 ‘비즈니스위크’가 꼽은 세계 유망기업 1위에 오르기도 했다.

- 결정적 순간 셋

그러나 닌텐도의 진정한 위기는 2009년부터였다. 도화선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였다.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은 스마트폰이 게임시장까지 뒤흔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5년 비디오게임과 PC게임의 성장률은 각각 2%, 7%에 그쳤던 반면 모바일게임 시장 성장률은 21%에 달했다.

이런 위기 끝에 나온 것이 바로 포켓몬 고다. 그리고 이번 성공 또한 혁신, 뚝심 등 닌텐도의 기업가 정신이 빛을 발한 결과다.

우선 위기를 몰고 온 모바일 게임 시장에 역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전략을 취했다. 지난해 닌텐도는 일본 모바일 게임사 ‘DeNA’와 함께 모바일게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번 포켓몬 고에 이어 오는 3분기에는 ‘파이어 엠블렘’, ‘동물의 숲’을 출시할 예정이다.

또한 이번 성공에서 포켓몬스터라는 만화 자체의 파급력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돌고 있다. 따라서 앞서 “한 물 갔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포켓몬스터, 슈퍼마리오 등 캐릭터의 지적재산권(IP)를 관리해온 닌텐도의 뚝심이 효과를 봤다는 평이 나온다. 특히 IP는 앞으로 닌텐도의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닌텐도는 월트디즈니와 더불어 IP 최다 보유기업으로 손꼽힌다.

지난 13일 진경준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매입하고 넥슨 재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한 혐의로 넥슨 창업자 김정주 NXC 회장이 검찰에 출석했다. 이는 개발보다는 마케팅을 중시하고, 산업자본을 형성해 기업을 견고히 키워나가는 대신 개인적 이해관계에 급급해 투기자본에 몰입하는 등 한국의 미흡한 기업가 정신이 초래한 비극이다.

◆닌텐도와 김정주…한국 ‘기업가 정신’의 부재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 13일 김정주 NXC 회장이 검찰에 출석했다.

지난 2005∼2006년 김 회장의 대학동기 진경준 검사장이 넥슨 주식을 매입하고 넥슨 재팬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제공한 혐의다.

뿐만 아니라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11일 조세 포탈 등의 혐의로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같은 게임 회사임에도 바다를 사이에 두고 극과극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넥슨에 붙여진 별명 중 하나는 ‘돈슨’이다. 과도하게 돈을 밝힌다고 해서 게임 유저들이 조롱을 담아 만든 별칭이다.

이는 김 회장의 경영방침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개발, 혁신 등 장기적으로 기업의 힘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외면하고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유통·마케팅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인수합병을 선호했다.

결과적으로 넥슨은 국내 최대 게임업체에 이름을 올리긴 했다. 그러나 당장 직면한 현금의 흐름만을 강조하는 모습에 실망해 여러 유능한 개발자들이 잇달아 회사를 떠났다. 어느정도 성공의 발판이 마련된 이후 '고객의 니즈'는 경영의 차선일 뿐이었다. 

이런 악순환이 이어진다면 단기적으로야 무난할지라도 장기적으로 회사가 몰락하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평이 나온다.

특히 최근 넥슨이 출시한 게임 ‘서든어택2’의 실패는 이를 방증한다. 앞선 시리즈인 ‘서든어택’과의 유일한 차이는 ‘여성 캐릭터의 선정성이 더욱 적나라해진 것’이라는 비아냥이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일고 있다. 기술적 변화 없이 이미지 등 단편적인 호응만을 강조해 유저를 끌어들이려는 전략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나 이는 단지 넥슨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기업의 전반적인 풍토가 혁신보다는 안전을 좇고 있으며 기업가 정신이 점점 흐릿해져가는 것이 현실이다.

혁신없는 기업, 미래는 없다 

삼성·삼호·삼양·개풍·동아·락희·대한·동양·화신·한국유리를 기억하는가. 지금으로부터 52년전인 1964년 한국의 10대 기업이다. 이 중에서 살아남은 업체는 몇개일까. 정답은 2개다. 삼성과 락희(LG)뿐이다. 

박용삼 포스코경영연구원 연구원은 "50여년 후 살아남은 2개기업의 특징은 안주하지 않고 혁신했기 때문"이라며 "삼성은 제당·방직에서 전자·금융 등으로, 락희는 화학·무역에서 가전·소비재 등으로 주력 업종을 바꿨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렇듯 지속성장의 해답은 동태적 변화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하는 데 있다. 닌텐도의 성공이 그렇다. 잘 나갈 때 미리미리 다음 먹거리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잘 나갈 때 사회적 네트워크 확대에 힘썼던 김 회장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박 연구원은 "닌텐도 이전에도 개인용 컴퓨터의 원조 격인 IBM이 본업은 중국에 팔고 서비스 기업으로 업종 전환을 한 것이나, 나일론이라는 신천지를 개척했던 듀폰이 화학을 넘어 종합화학회사로 변신한 것에서 진정한 성장의 미학(美學)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한국 기업가정신지수(GEI·Global Entrepreneurship Index)는 지난 1976년 150.9였던 것이 2013년 66.6으로 절반이 넘게 떨어졌다. 이를 두고 3·4세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안전제일주의 경영으로 일관하는 등 야성이 사라진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한 한경연이 ‘2015년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 평가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는 OECD 34개 회원국 중에 22위에 그쳤다.

이를 두고 한 전문가는 “한국의 기업가정신이 원래부터 미흡했던 것은 아니었다. 2002년 드러커는 기업가정신이 가장 높은 나라로 한국을 꼽기도 했다. 그러나 갈수록 한국 기업에서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가정신을 너무 거창하게 보는 것이 문제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 공공기관, 비영리단체뿐만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까지 기업가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기업가정신을 좇는 풍토를 마련한다면 기업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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