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2.12.29 11:01

무소속 윤미향 동원 법사위 '패싱'…국회선진화법 이후 최초

소병훈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이 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소병훈 의원 페이스북 캡처)
소병훈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이 29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소병훈 의원 페이스북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시장에서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수하게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의 힘을 이용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 곧바로 부의해달라고 국회의장에 요청했다. 

지난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최초로 이뤄진 '직회부 요청'이다. 국민의힘은 즉각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방탄용 양곡관리법"이라며 "(민주당 의원들은) 민주당 지도부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라고 쏘아붙였다.

지난 28일 여야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다. 쌀값 안정을 위해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법안은 이재명 대표가 7대 민생과제 법안 중 하나로 선정하면서 국회에서 논란의 핵심이 됐다. 여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안건조정위원회를 만들어 10월 법안을 통과시켰고 같은 달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도 야당 단독으로 다시 처리했다.

여당은 법사위에서 이 법안을 심사하지 않고 지연작전에 나섰고 60일이 지나자 야당이 법사위를 '패싱'하고 본회의에 바로 보내기 위한 표결을 할 목적으로 이날 농해수위를 연 것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법사위에 회부된 법률이 이유 없이 60일간 심사되지 않았을 때 해당 상임위 위원장이 여야 간사와 협의해 본회의로 바로 보낼 수 있다. 여야 간사간 협의가 안되면 위원회 재적위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직회부를 결정할 수 있다.

농해수위는 총 19명으로 이중 민주당이 11명이지만 무소속 윤미향 의원까지 더하면 12명으로 정족수가 충족된다. 민주당은 윤미향 의원을 가세시켜 '의원수로 밀어붙이기'에 나섰다. 

이에 따라 여야는 험악한 분위기 속에 논쟁을 이어갔다.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은 이 법이 만능이 아니란 취지로 "쌀값이 4.9%만 떨어지면 어떻게 할거냐. 법으로 규정하면 절대 융통성을 발휘할 수 없다"며 "시장상황을 보고 적절히 대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의 정희용 의원도 "(국회에) 기표소가 미리 설치돼있고 이미 짜여진 각본처럼 흘러가고 있다"며 "민주당이 언제까지 다수당 할 거 같냐. 언젠가 상황이 거꾸로 됐을 때 여기 있는 민주당 의원들은 항상 거론될 것이다. 그때 민주당도 그렇게 처리했다고"라고 성토했다.

이런 가운데, 이원택 민주당 의원은 "최근 농민단체들이 (이 법안에 대해) 신중론으로 나오고 있다"며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 보고서가 단초가 됐다. 농식품부 영향으로 농민단체 내 농민들이 갈라치기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결론도 나기 전에 직회부 보도자료가 먼저 기자들에게 돌기도 했다. 농해수위 여당 간사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회의 시작 전에 양곡관리법 본회의 부의 의결됐다고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민주당에서 일사불란하게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이라며 "어떻게 이게 (농해수위 야당) 위원들 뜻이라고 받아들이냐"고 항의했다.

소병훈 농해수위 위원장은 이에 정회를 선언했고 농해수위 야당간사인 김승남 민주당 의원은 "의결 후 기자회견을 할지 안할지 실무자들이 안을 만든 것이고 이게 특정 언론인에게만 배포된 것"이라며 "유출이 맞다"고 인정했다.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소병훈 농해수위 위원장은 정오께 투표 개시를 선언했고 여당 의원들은 소 위원장 자리로 몰려가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여당 의원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윤미향 의원까지 나머지 12명이 모두 투표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지면서 결국 직회부가 결정됐다.

하지만, 이 법안은 최소 한달간은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전망이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의장은 상임위 차원의 본회의 부의 요구가 있을 때 해당 법안을 여야 원내대표와 합의해 부의하게 돼 있다. 30일간 합의가 안되면 이후 처음 열리는 본회의에서 본회의 부의 여부를 무기명 투표로 결정하게 된다. 본회의 부의가 결정되면 다시 표결을 통해 법안 통과 여부가 정해진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본회의 부의에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 확실시 되기 때문에 빨라야 1월 27일 이후에나 본회의 문턱을 넘게될 전망이다. 양곡관리법이 본회의 문턱을 넘게 된다면 이재명표 1호 강행 입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법안이 설령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게된다고 해도 여전히 법 시행은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 때문이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전체회의 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건의하겠다"고 피력했다. 이에 따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법안이 될 전망이다.

이날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대해 농해수위 소속의 한 여당 의원은 "대부분이 호남 지역구 의원이라 민주당 지도부의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당에 밉보여 공천을 못 받으면 호남에선 당선되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실제로 11명의 농해수위 야당 의원 중 9명이 호남 혹은 제주도 지역구 의원이다.

정부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농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산업의 지속적인 유지, 발전을 위해 추진했던 그 동안의 많은 노력들을 수포로 만들 것"이라며 "농업·농촌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남는 쌀을 의무 매입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공급 과잉과 불필요한 재정 부담을 심화시킨다"며 "쌀값을 오히려 하락시켜 농업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텐데 왜 법 개정을 강행하는지 안타깝다"고 개탄했다. 

농경연은 최근 '양곡관리법 개정안 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개정안 시행 시 오는 2030년에는 1조4659억원의 예산이 소요된다고 지적했다. 산지 쌀값은 2030년 80㎏ 당 17만2709원으로 지금의 18만7000원보다 낮은 수준에서 정체될 것으로 예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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