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은지 기자
  • 입력 2023.01.13 15:45
정은지 기자.
정은지 기자.

[뉴스웍스=정은지 기자] 좋은 아이디어와 자본이 있는 스타트업은 십중팔구 외국으로 나간다. 왜 국내에서 기술력을 펼치지 않을까.

넓은 시장과 투자자가 넘치는 선진국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 부차적 설명에 불과하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국내의 공고한데다 높기까지 한 '규제허들' 때문이다. 현행 규제를 적용하지 않고 시험하고 검증하는 '규제 샌드박스'라는 제도가 존재하긴 하지만, 정부는 이를 토대로 또다른 규제를 만들어 버리곤 한다. 도저히 혁신이라곤 펼칠 수 없는 생태계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인 'CES 2022'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올해는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열렸다. 전 세계 174개국에서 3300여개 기업이 참가했다. 이중 15%에 달하는 500여개의 한국 기업이 CES에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CES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가장 혁신적인 기업과 기술을 선정해 시상하는 'CES혁신상' 620여개 중 한국 기업은 무려 139개를 수상했다. 혁신상의 22.4%를 한국 기업이 휩쓴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이같은 놀라운 혁신 기술을 보유하고도 국내에서 사업을 펼칠 엄두는 못 내는 상황이다. 선보인 신기술은 이미 '불법'이다 보니 관련 규제를 풀지 않으면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워서다. 

혁신 기술을 보유한 국내 스타트업 사이에서는 '규제 풀러 세종시만 들락날락 하다 볼 장 다 본다'는 말이 심심지 않게 나온다. 연구 개발에 매진하기도 바쁜 스타트업 입장에서 숱한 규제는 넘기에 너무 벅찬 벽이다. 

이번 CES에서 국내 기업들은 원격 의료나 치매 진단 등 헬스케어와 관련한 다양한 신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하지만 이들은 규제로 둘러싸인 국내에서 연구개발 하는 것을 포기하고 해외로 발걸음을 돌린다. 신기술에 우호적인 국가로 진출하는 것만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어서다.

한국은 해외로 진출 후 국내로 복귀(리쇼어링)하는 기업 비율도 상당히 낮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 유턴법 시행 이후 국내로 복귀한 기업은 총 126개며, 이중 지난해 국내 복귀 기업은 24개에 불과하다. 리쇼어링이 활발한 미국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에만 1156개 기업이 본국으로 돌아간 것과 대조된다.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정해진 것만 해야 하는 '포지티브 규제'의 한계는 명확하다. 기실 정부의 뒷받침은 바라지도 않는다. 지원한다고 말로만 떠벌리는 것보다 기업이 열정과 추진력을 갖고 어떤 시도든 과감히 할 수 있도록 '네거티브 규제' 시스템으로 빠르게 전환하는 것이 시급하다. 유사·중복 규제 존속을 통해 밥그릇을 지키려는 공무원들이 하루빨리 퇴출되어야만 기업하기 좋은 한국으로의 변신도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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