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3.03.02 15:26

박홍근, '미래 준비 못하면 과거의 불행 반복될 것'→ '국권 상실하고 고통받았다'로 왜곡
원내대표 교체 목소리 커지자 무리수 지적…매국노 이완용 발언, 역풍 우려 커

지난달 27일 국회 본청 예결위장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홍근(왼쪽) 민주당 원내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지난달 27일 국회 본청 예결위장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박홍근(왼쪽) 민주당 원내대표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일 윤석열 대통령을 '매국노 이완용'에 비유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 "참으로 충격적으로 매국노 이완용의 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꼬 쏘아붙였다. 

이어 "모두 일제 강점과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식민사관"이라며 "일제의 식민 재배에 전 국민이 항거한 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순고한 항쟁의 정신과 건국 이념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박 원내대표는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세계적 대세에 순응하기 위한 유일한 활로이다'라는 이완용의 말을 인용하면서 3·1절 기념사에서 실린 윤 대통령 언급을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박 원내대표는 원래 윤 대통령이 한 말을 원문 그대로 인용하지 않고 살짝 변용해 윤 대통령이 마치 '우리가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다'라고 한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의 말이) 매국노 이완용의 말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쏘아붙였다. 

또한 "모두 일제의 강점과 지배를 합리화시키는 식민사관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에 전 국민이 항거한 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숭고한 항쟁의 정신과 건국이념을 부정하는 대통령의 기념사였다"고 맹폭했다.

아울러 "전통시장 가서도 헌법 정신을 운운하더니, 정작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념사에서는 명백히 반역사적·반헌법적인 인식을 드러낸 것"이라고 힐난했다. 

이 지점에서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왜곡한 것으로 관측된다. 윤 대통령은 분명히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박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말을 살짝 비틀어서 윤 대통령이 "우리가 세계사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다"고 말한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이 각각의 문장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박 원내대표의 이 같은 주장은 윤 대통령 기념사를 자신이 공격하기 좋게 왜곡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에 대해 여당인 국민의힘은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다. 여당은 이재명 대표가 또다시 '죽창'을 들어 사법 리스크를 모면하려 한다고 반격에 나섰다. 

정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 "대통령의 기념사를 두고 3·1운동 정신을 훼손했다며 죽창을 다시 들고 나섰다. 굴종외교, 종속외교를 앵무새처럼 반복했다"며 "문재인 정권이 초래한 북핵 안보위기에 대비해 한일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그렇게 못마땅하냐"고 역공을 가했다.

이어 "입만 열면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강조하는데 안보만큼 중요한 실용적 가치가 어디 있냐. 김정은 거짓말에 속에 5년 내내 평화쇼만 벌인 문 정권의 잘못을 또 반복하자는 얘기냐"며 "법의 심판을 받으라는 지엄한 민심의 명령을 죽창가로 덮을 수 있다고 믿는 거냐"고 질타했다. 이는 이재명 대표가 자신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하면서 모면하려고 한다는 인식을 드러낸 셈이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 대해서도 "윤 대통령의 기념사는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였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 시대 상황이 변하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 아니겠냐"며 "대통령 워딩 한 토막 한 토막이 옳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호평했다. 

계속해서 "민주당 반응을 보면 그런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으로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겠다는 건지 측은지심이 든다"고 덧붙였다.

정 비대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맹공을 이어나갔다. 그는 "일본과의 협력을 얘기만 하면 토착 왜구요 식민사관이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으로 과연 대한민국을 이끌 수 있을지, 이재명의 민주당은 자문해 보기 바란다"고 성토했다.

그는 또 "한일 관계가 가장 좋았던 때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문화계의 격렬한 반대에도 일본 문화 개방을 단행했고,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4년 1월 우리의 자존심인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일본의 국기인 스모 경기가 열렸다"고 회고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수상이 1998년 선언한 한일 파트너십의 정신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라며 "한일 파트너십 선언은 더 이상 첨삭이 필요치 않은, 한일 관계의 이정표"라고 규정했다.

또한 "한일 관계에 관한 한,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한 계승자는 윤석열 대통령이지 이재명이 아니다"라며 "만해 한용운 선생(1879~1944)의 글을 하나 덧붙인다. '이재명의 민주당'은 만해 선생을 식민사관으로 공격할 것이냐"고 따져물었다. 

정 위원장이 인용한 만해 한용운 선생의 1936년도 글은 '반성(反省)'이라는 글이다. 이 글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만고를 돌아보건대, 어느 국가가 자멸하지 아니하고 타국의 침략을 받았는가?, 어느 개인이 자모(自侮·스스로를 멸시함)하지 아니하고 타인의 모멸을 받았는가?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다. 

망국(亡國)의 한이 크지 아니한 것은 아니나, 정복국만을 원망하는 자는 언제든지 그 한을 풀기가 어려운 것이다. 불행한 경지를 만나면 흔히 하늘을 원망하고 사람을 탓한다. 강자를 원망하고 사회를 저주하고 천지를 원망한다. 얼핏 보면 영웅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기를 약하게 한 것은 다른 강자가 아니라 자기며, 자기를 불행케 한 것은 사회나 천지나 시대가 아니라 자기다.

망국의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이상 제이, 제삼의 정복국이 다시 나게 되는 것이다. 자기 불행도, 자기 행복도 타에 의하여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가련하기도 하지만 가증스럽기가 더할 수 없다."

한편, '중도'를 표방하는 정치권의 한 핵심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가 최근 이재명 체포동의안에서 찬성표가 애초 예상보다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민주당내에서 원내대표 교체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무리수를 쓴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그런다고 해서 그가 곤경을 빠져나갈 것 같지도 않다"며 "윤 정부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넘어 매국노 이완용에까지 비유한 것은 오히려 상당한 역품을 맞을 확률이 높아보인다. 사과는 윤 대통령이 할 게 아니라 박 원내대표가 해야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웍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