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3.04.08 12:00

선화랑 1~4층 전관, 꽃·비·흙·물·하늘정원 꾸며…자연·환경 테마 작품에 좋은 향기·편안한 음향 제공되는 '오감 가득한 전시'

선악과 형상의 작품 옆에 서있는 심영철 작가. (사진=원성훈 기자)
선악과 형상의 작품 옆에 서있는 심영철 작가.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설치미술가인 심영철 교수의 개인 전시회인 'Dancing Garden'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건물 층별로 다른 테마의 전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주목된다. 1층부터 4층까지 선화랑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작가가 그간 일구어온 40여 년 작품 세계를 함축적으로 담아낸 새로운 작품들로 구성됐다. 

'자연'과 '환경'을 테마로 한 독특한 분위기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2002년 '환경을 위한 모뉴멘탈 가든'은 그녀에게 자연, 환경 속 인간 존재를 탐구했던 대표적인 사례였다. 코로나19·대지진·전쟁 등 재난이 가시화된 오늘날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환경과의 공생은 인류에게 주요한 화두이자, 그녀의 작업에 있어서 출발점이다. 

제3전시실의 물의 정원(Water Garden). (사진=원성훈 기자)
제3전시실의 물의 정원(Water Garden). (사진=원성훈 기자)

환경과 인간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탐구했던 '일렉트로닉 가든-모뉴멘탈 가든-시크릿 가든-매트릭스 가든-블리스플 가든'으로 이어진 작가 심영철의 작업이 인사동 선화랑에서 '댄싱 가든'이라는 이름으로 펼쳐졌다.   

그녀의 모든 '가든 연작'에서 미적 대상으로 탐구했던 '꽃'은 자연의 상징이자 생명성의 표상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그녀는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면 어김없이 피어오르는 '벚꽃'을 주요 테마로 삼아 대규모 신작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제작된 설치 작품들은 복합 채널의 다차원적 조형 작업이자 인터렉티브 아트로서 오랫동안 '듀얼 리얼리티(Dual Reality)'를 추구해 온 작가의 예술관을 보여준다. 

심 작가는 인사동 '선화랑'을 찾은 기자에게 "전시실 1층은 꽃비 정원이라 해서 Flower-Rain Garden으로 꾸몄고 2층은 흙의 정원인 Soil Garden으로 공간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3층은 물의 정원인 Water Garden으로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좀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조성했고 4층은 완전한 사랑 , 행복한 공간으로 '하늘 정원'인 Sky Garden으로 명명했다"고 설명했다. 

어머니의 '자궁' 내지는 '씨앗'을 형상화한 제1전시실로 통하는 입구. (사진=원성훈 기자)
어머니의 '자궁' 내지는 '씨앗'을 형상화한 제1전시실로 통하는 입구. (사진=원성훈 기자)

이어 "이같이 4개 층의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이 자신을 만나는 시간, 힐링하는 시간 그리고 뭔가를 느끼는 명상의 시간으로 활용했으면 한다"며 "그래서 각 층마다 음향효과도 있고 또 향기도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실제로 각 층에 마련된 전시실에는 아주 좋은 향기와 함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음향이 퍼져나왔다. 이를 통해 심 작가는 그야말로 '오감 가득한 전시'를 완성했다. 1층의 꽃비 정원(Flower-Rain Garden)으로 들어가는 문부터 특이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 심 작가는 이에 대해 "여성의 자궁을 상징하면서 동시에 생명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씨앗의 형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1전시실-꽃비 정원(Flower-Rain Garden)

꽃비 정원은 벚꽃이 비처럼 흩날리는 영상이 전시장에 전 방위로 투사되는 거대한 인터렉티브 공간이다. 천장에는 자개로 만든 거대한 벚꽃 형상이 매달려 있고, 바닥에는 벚꽃 형상의 거대한 거울 방이 자리한 채 인피니티 이미지를 관객에게 선사한다. 거울 방을 보는 순간 저절로 "와우"하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춤추는 꽃비 정원은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생명이 움트는 순간의 응축된 에너지를 느끼게 해준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중앙의 유리 벚꽃 형태의 공간 속에는 성경속에 나오는 태초의 선악과를 상징하는 붉은 사과 형태의 열매가 매달려 있다. 이 공간은 잘 연마된 금빛 메탈 소재를 사용해 천장부터 벽면에 이르기까지 마치 거울처럼 사물을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조성돼 있다.

제1 전시실의 핵심 조형물로 벚꽃을 형상화한 작품. (사진=원성훈 기자)
제1 전시실의 핵심 조형물로 벚꽃을 형상화한 작품. (사진=원성훈 기자)

◆제2전시실 - 흙의 정원(Soil Garden)

흙으로부터 발원한 곳이다. 흙의 정원은 자연이 자리한 공간이자, 역사적 전통을 지금, 여기에서 새롭게 해석하는 공간이다. 전시실 중앙에는 고려청자를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로 형상화했고 그속에 조명을 넣어 신비로운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도록 했다. 심 작가는 이를 빛의 도자기(Ceramics of Light)라고 명명했다. 

흙이 불을 만나 시간의 흔적을 남긴 역사의 공간을 형상화 했다. 이와 함께 한쪽 벽면에는 마치 세라믹 소재를 사용해 만든 순백색의 크고 작은 구슬이 이어져 있는 듯한 조형물이 있는데, 이를 '멀티플 스테인리스 스틸 볼'이라고 칭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세라믹 질감으로 느껴질 뿐 실제로는 스틸을 소재로 했다는 게 심 작가의 설명이다. 

전시장의 다른 쪽에는 한지를 사용해 만든 작품이 두 점 있었는데 기자가 '마치 고생대 삼엽충처럼 생겼다'고 하자 심 작가는 "제대로 보셨다. 한지의 매력이 무한하다. 한지를 사용해 만든 작품인데 벚꽃을 형상화 한 것으로도 볼 수 있고 고생대의 삼엽충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며 "보는 이에 따라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의미로 느껴지도록 한 게 제 작품이다. 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생명이 움트는 시초의 에너지를 표현하려 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밖에도 한쪽에는 작가의 이전 작업들을 실감나는 'VR 아카이브(VR Archive)'로 살펴볼 수 있도록 장비를 구비했다. 

고려청자 및 거대한 산맥을 형상화한 작품. (사진=원성훈 기자)
고려청자 및 거대한 산맥을 형상화한 작품. (사진=원성훈 기자)

◆제3전시실-물의 정원(Water Garden)

형형색색의 커다란 꽃이 만개한 듯한 3개의 꽃 조형물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형상화한 공간이다. 세 가지 꽃이 부드러운 곡선의 수조속에 마치 한 가족처럼 들어있다. 대체적으로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로 구성돼 있지만 물의 정원(Water Garden)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워터풀처럼 생긴 바닥 수조에는 실제로 물이 담겨져 있다.

여기서 물은 모든 것을 살리는 신성한 생명수라는 상징이다. 검은색 물이 채워진 커다란 수조 안에 스테인스 스틸로 만들어진 3개의 꽃이 마치 연꽃처럼 자리했다는 얘기다. 검은 수면에 반영된 꽃 이미지로 인해 물의 정원은 실재와 허상을 서로 만나게 하면서 두 간극을 하나의 덩어리로 품어 안는다. 꽃의 몸체를 빠져나온 여러 색상의 빛이 전시장 주변을 환상적인 공간으로 물들이는 동안 간헐적으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한지를 소재로 한 '벚꽃' 이미지의 작품. 고대의 삼엽충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원성훈 기자)
한지를 소재로 한 '벚꽃' 이미지의 작품. 고대의 삼엽충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사진=원성훈 기자)

◆제4전시실 - 하늘 정원(Sky Garden)

이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하늘 정원을 묘사했다. 그곳에는 원형의 스테인리스 스틸 판들로 만들어진 한 쌍의 연인이 가느다란 와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서로 입맞춤을 한다. 흙을 빚어 만들었다는 인류 최초의 사람인 아담과 하와의 형상으로 보일 수도 있고 아니면 1년마다 오작교로 서로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두 남녀의 몸체 속의 심장은 둥근 조명으로 표현했다.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지만 전체적으로는 황금 주화 내지는 황동 주화처럼 보인다. 색상과 형태 자체가 동전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 마치 수백개의 황금 동전들이 수채화로 치면 점묘화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몸체가 점점 페이드 아웃되면서 하늘로 승천하는듯한 모습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신화·설화 혹은 현실 속 인간의 사랑이 그들의 육체는 공중속으로 흩어져 사라지지만 결국 그들의 영혼은 하늘로 승천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한편, 'Dancing Garden 전시회'는 3월 31일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 '선화랑'에서 작품 전시가 시작됐다. 4월 29일까지 전시된다. 일요일에는 휴관한다. 

하늘 정원(Sky Garden)의 전시품. 아담과 하와 혹은 견우와 직녀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입맞춤하며 하늘로 승천하는듯한 모습이다. (사진=원성훈 기자)
하늘 정원(Sky Garden)의 전시품. 아담과 하와 혹은 견우와 직녀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입맞춤하며 하늘로 승천하는듯한 모습이다. (사진=원성훈 기자)

에필로그: 듀얼 리얼리티(Dual Reality) 추구, 심영철 작가 예술관

앞서 작품에서 볼 수 있듯 자연요소, 인공요소, 테크놀로지는 작가 심영철의 작품 속에 언제나 혼용되며 메시지를 전하는 코드이다. 자연과 인공, 물질과 데이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계의 변화를 작품을 통해서도 구현해내며 작가의 방법론적, 개념론적인 부분을 시사하고 대변한다. 

현대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점점 자연의 법칙을 거슬러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시도가 난무한 가운데 인간 또한 비대면속에서 컴퓨터와 마우스 클릭만으로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무엇이 진심이고 진실인지를 판가름하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됐다.

그것은 때때로 인간의 존재와 근원의 문제 속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초래하기도 한다. 물론 사회와 생활 곳곳에 녹아 들고 있는 최첨단의 여러 요소들을 잘 활용하고 받아들여 이상적인 삶의 형태와 질을 높이고자하는 것이 당연한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망각하지 말아야할 중요한 것들을 늘 염두해 두고 태초에 존재해온 자연과 현재와 미래에 다가오는 급속도로 발전하는 첨단의 환경이 협력하며 공존해야 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전시를 평한 김성호 미술평론가는 심영철의 작품세계를 푸코(M. Foucault)가 언급했던 개념인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s)'를 통해 읽고자 했다. 상상과 이상적인 세계의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가 아닌 현실 속에서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현실에서의 유토피아를 말이다.

다양한 매체를 사용한 아름다운 벚꽃 작품들을 통해 관객들과 교감을 시도하는 듀얼 리얼리티(Dual Reality)를 추구하는 심영철 작가의 예술관이 펼쳐지는 이번 전시로 새로운 시각적, 예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다른 사유의 공간을 선사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의 작가인 심영철은 토탈미술상(1994), 한국미술작가상(2001,) 석주미술상(2007) 등을 수상하며 미술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무엇보다 시대를 앞서나간 실험적인 작품과 전시를 개최해왔다는 점에서 호평을 받는다. 특히 2018년 한국여류조각회 회장직을 맡을 당시 여류조각회의 창립45주년 기념전을 이끌며 전시수익금을 미혼모 돕기 기부 운동에 앞장선 장본인이기도 하다. 현재 수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교수로서 후학 양성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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