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전다윗 기자
  • 입력 2023.05.28 14:00

"가능성 희박하지만 시장 재편 시 삼성 유리…'낸드 공룡' 등장은 긴장해야"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 작업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반도체 제조 라인에서 작업자가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전자)

[뉴스웍스=전다윗 기자] 역대급 메모리 반도체 한파로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격변의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지금까지 하락세를 거듭하고 있는 낸드 가격 탓에, 가격이 더 하락할 경우 기업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불가피하게 '치킨게임' 양상으로 접어든 것입니다. 업계 2위 키옥시아와 4위 웨스턴디지털(WD) 합병설 역시 현재 낸드 시장의 구조 자체를 뒤바꿀 수도 있는 이슈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낸드 업계 1위 삼성전자의 표정은 어떨까요. 짐짓 심각한 척 속으로 웃고 있을지, 초조한 마음으로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지 손익계산서를 따져봤습니다. 

◆끝없이 추락하는 가격…D램 이어 낸드 시장 재편되나

낸드플래시 가격은 지난해 6월부터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습니다. 일부 제품은 원가보다 판매가가 더 낮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전례 없는 수요 절벽에 재고량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가격이 하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 가격은 지난해 중순 4.81달러였으나, 올해 4월 말 기준 3.82달러로 20%가량 하락했습니다. 

사실상 업계 전체가 적자를 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삼성전자 DS부문과 SK하이닉스가 본 적자 중 상당 부분이 낸드 사업에서 생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양사는 올해 1분기 합산 8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낸드 업계 2위 일본 키옥시아홀딩스는 올해 1분기 1조7000억원, 4위 미국 WD는 5696억원이라는 영업손실을 봤습니다. 대만의 파이슨일렉트로닉스의 푸아케인승 최고경영자(CEO)는 "추가적인 낸드 가격 인하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 시장이 회복되지 않으면 공급업체가 파산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은 당분간 더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낸드 평균판매단가는 전 분기보다 8~13% 하락할 전망입니다. 모바일 시장이 침체가 이어지고 있지만, 과잉 생산이 지속되면서 공급 업체들의 재고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글로벌 낸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거론됩니다. 3사가 독과점하고 있는 D램 시장과 달리 낸드 시장은 여전히 5개가 넘는 업체들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수준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경쟁하고 있습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낸드 업계 1위는 33.8%의 점유율을 차지한 삼성전자, 그 뒤를 ▲키옥시아(점유율 19.1%) ▲SK하이닉스(17.1%) ▲WD(16.1%) ▲마이크론(10.7%) 등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시장 하락기를 견디지 못한 중하위권 기업들이 결국 사업을 접게 된다면, 낸드 시장도 D램 시장처럼 과점 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입니다.  

최근 돌고 있는 키옥시아와 WD의 합병설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낸드는 D램보다 기술 문턱이 낮아 가격 경쟁력이 중요합니다. 특히 요즘 같은 혹한기를 버티려면 원가 경쟁력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 두 회사가 합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겁니다. 양사 합병이 현실화하면, 1위 삼성전자의 자리를 위협하는 '낸드 공룡'이 출현하게 됩니다.

삼성전자 8세대 V낸드. (사진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8세대 V낸드. (사진제공=삼성전자)

◆낸드 혹한기 반기는 삼성전자?…"파산이 쉬울까"

낸드 시장 지각변동의 조짐이 보이는 이때, 업계 1위 삼성전자는 어떤 생각일까요. 일반적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그나마 삼성이 가장 여유 있지 않겠느냐"고 입을 모읍니다. 불가피한 치킨 게임이 벌어지더라도 삼성전자는 원가 경쟁력과 수익성, 불황에도 버틸 수 있는 기초체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삼성전자가 낸드 혹한기를 반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번 하락기를 지나 낸드 시장이 재편되면 웃게 되는 건 삼성전자라는 거죠. 실제로 과거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벌어진 치킨게임에서 삼성전자는 항상 승자였습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만약 낸드 시장이 재편된다면, 삼성전자가 가장 유리하다. 경기가 안 좋을 때는 항상 시장 점유율이 높은 기업이 유리하다"며 "힘든 기업들은 선제적으로 감산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감산 결정을 늦게 했다. 버틸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회복됐을 때 이러한 늦은 감산 결정이 점유율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도 마냥 웃을 상황은 아니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는 "문제는 재편이 되면 유리한 건 맞지만, 재편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는 것"이라며 "낸드 시장이 D램 시장보다 플레이어가 많은 것이지 일반 산업과 비교하면 독과점과 다름없다. 다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기업이기에 파산할 만한 곳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만일 키옥시아와 WD의 합병이 성사된다면 삼성전자가 긴장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양사의 실제 생산 능력이나 재무 상태 등을 고려하면 단순 합산 점유율처럼 삼성전자를 앞지르지 못할 것으로 보이지만, 위협적인 플레이어가 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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