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6.09 20:00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소비자물가가 가히 살인적 수준이다. 냉면 한 그릇은 2만원에 육박했고, '국민 간식' 치킨은 배달비를 포함해 3만원은 써야 겨우 맛본다. 이런 외식비가 겁나 대형마트를 찾아도 10만원이 우습게 날아간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으로 라면은 1년 전보다 13.1% 올랐다. 주요 가공식품의 가격 상승률도 10% 안팎에 달했다. 1년 만에 두 자릿수가 껑충 뛰었다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완만한 물가 상승은 소비와 투자 촉진으로 경제를 부양하는 긍정적 역할을 한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증거이기에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의 물가 상승은 그런 긍정적 효과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인건비와 환율 상승, 원자재 가격 인상 등, 코로나 이후 한꺼번에 몰아닥친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인 것을 다양한 통계자료가 입증한다.

혹자는 우리와 소비 행태가 흡사한 일본과 비교할 때 왜 우리나라만 이렇게 오르느냐고 묻는다. 실제로 최근 일본 외식 프랜차이즈들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점심값 500엔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마트에서는 우유 1ℓ를 200엔에 팔고 있다. 최근 환율(100엔당 약 920원)로 따져보면 점심값은 5000원 이하, 우유 1ℓ는 2000원이 채 안 된다. 점심값 1만원이 '국룰'인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한편에서는 디플레이션 현상 때문에 일본의 소비자물가가 억제된 것이라며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디플레이션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일본 소비자들의 소비 행태가 가격 결정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소비자에게 가격을 전가하는 기업의 인상 행위가 암묵적으로 제한된다. 원자잿값이 올라 부득이하게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한다는 식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이들 소비자는 기업이 외부 충격도 흡수할 역량이 없다면 시장 퇴출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사회적 시각이 마냥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업이 가격 인상분만큼 투자를 줄이거나 인건비를 억제해 대체한다면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소비 침체라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일본이 오랫동안 디플레이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도 이런 악순환의 한 단면이겠다.

하지만 일본은 소비자가 가격 결정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기업들은 유통구조를 단순화하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별다른 저항 없이 마냥 치솟는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소비자의 현명한 소비가 뒤따를 필요가 있다. 과도하게 값을 올린 제품이라면 과감하게 소비 대상에서 제외해 기업의 가격 결정권을 약화시켜야 한다. 시장 지배력을 맹신해 기업이 거리낌 없이 가격 인상만 이어간다면 한 번 정도는 경종을 울려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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