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3.06.19 23:38

'근대역사 박물관'서 독립운동의 비장함 느끼고… 맥주 페스티벌서 '젊은 군산의 가능성' 엿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초원사진관. (사진=원성훈 기자)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초원사진관. (사진=원성훈 기자)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일본제국주의는 1945년 8월 15일에 패망했지만 적어도 전북 군산에선 일제시대가 박제된 형태로나마 남아있었다. 2차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인들이 이땅에서 떠나면서 집까지 떠메고 달아날 수는 없었기에 이 땅에 적산가옥은 그 흔적을 남겼다.

군산 신흥동에 있는 일본식 가옥의 이름은 이른바 '히로쓰 가옥'. 이 집의 주인이었던 히로쓰는 일제 강점기 시절 군산의 돈을 싹싹 긁어모았다고 한다. 해설사는 "히로쓰 가옥이 아직까지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상대적으로 조선인들에 대해 그다지 악랄하게 굴지 않았기에 해방이 되고 나서도 조선인들이 굳이 이 가옥을 때려부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설사의 설명과는 달리 히로쓰가 나쁜 놈이었다는 증거는 이 집 금고의 거대함만으로도 증명됐다. 건물 자체가 별도의 금고인 별채였으니 말이다. 

군산의 적산가옥. (사진=원성훈 기자)
군산의 적산가옥. (사진=원성훈 기자)

일본식 정원으로 잘 꾸며놓은 이 집은 당시에는 아주 귀했을 통유리를 집 건물의 곳곳에 설치했고 집안의 마루는 들기름 칠을 해서 아주 반들반들했다. 히로쓰는 또 자신이 부유했던 만큼 자객의 침입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해놨다. 히로쓰의 가옥에는 문살 바깥쪽으로 창호지를 붙여서 자객의 그림자를 볼 수 있도록 했다. 

◆'혼합식 유럽스타일'의 옛 군산세관 

1908년 완공된 군산세관은 최적의 수탈기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혼합식 유럽스타일의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시절 군산세관이 해왔던 일의 편린이 느껴진다. 시대별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일을 해왔는지 당시 세관의 '짝퉁 구별법'까지 설명해놨다.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소박하기까지 하다. 여행자들은 당시의 군산세관이 '우리나라에 남은 서양 고전주의 3대 건축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옛 서울역, 한국은행 본점과 같은 양식의 건물, 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있는 사이 어언 100년이 훌쩍 지나간듯한 바로 그런 느낌을 준다. 

옛 군산세관. (사진=원성훈 기자)
옛 군산세관. (사진=원성훈 기자)

◆로맨스와 추억이 상품이 된 '초원사진관'

휴대폰이 일반화되지 않았던 1990년대 후반. 배우 한석규와 심은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정원(한석규)과 다림(심은하)이 함께 거닐고 머물렀던 군산 시내 곳곳은 추억이 됐고 그 자체로 로맨스였으며 그것이 이젠 문화 상품이 됐다. 정원의 친구 철구가 스물아홉살 마지막 날에 "술 먹고 죽자"고 말한 횟집은 군산 사람들에게는 명소가 됐다. 

군산시는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온 초원사진관을 영화와 최대한 비슷하게 복원했다. 영화 촬영에 쓰였던 소품들도 그대로 가져다놨다. 다림이 타고 다녔던 주차위반 차량도 있고, 정원이 출장사진 찍으러 갈 때 탔던 오토바이도 사진관 앞에 뒀다. 하지만 첫 월급을 탄 다림의 사진을 찍어주면서 "입술에 침 발라 봐요"라고 말하던 정원은 죽고 없다. 

군산 초원사진관 옆 벽면에 조성해 놓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포토존. (사진=원성훈 기자)
군산 초원사진관 옆 벽면에 조성해 놓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포토존. (사진=원성훈 기자)

정원과 다림은 초원사진관 벽에 걸린 사진속에 있다. 물론, 아주 젊은 시절의 한석규와 심은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로맨스와 추억을 애써 헤아려 가며 초원사진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렇게 찍혀진 사진도 조만간 빛바랜 추억의 사진이 될 것으로 상상하면서 말이다. 

◆1930년대의 인력거에 올라 타다-근대역사박물관

군산 시내 한복판에 마치 선박 형태의 근대역사 박물관의 압권은 역시 3층의 근대생활관이다. 1930년대의 군산이 바로 이곳에 있다. 나는 놓여져있는 인력거에 몸을 싣고 동료에게 사진 찍어주기를 청하면서 잠시 그 시절 인물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그런 나의 뒤로는 잡화점이 있고, 고무신 가게와 술 가게도 보인다. 그런 후에 당시 지어진 세관이나 조선은행 건물 모양을 작은 화선지에 탁본을 뜬다. 이 곳의 이모저모를 둘러보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독립 운동가들이 당시에 느꼈을 비장함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 했다.

 

외관이 선박 형태인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 (사진=원성훈 기자)
외관이 선박 형태인 군산의 근대역사박물관. (사진=원성훈 기자)

영명학교 교실에는 일제 강점기 사람들에게 쓴 쪽지가 가득 붙어있다. 또 다른 한쪽에는 옛 교실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놨다. 일제 강점기때 아이들은 그 모진 환경속에서도 까불고, 지각하고, 도시락을 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그 당시 부모들은 갖은 고생을 다 하면서도 힘껏 아이들을 키워냈을 것이고 그렇게 키워낸 아이들이 지금 우리의 부모 세대거나 조부모 세대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영명학교 창으로 고개를 내밀면 뜬다리 부두, 임피역, 토막집이 보인다. 특히, 임피역에는 당시 군산 일대의 철도 교통 상태를 엿볼 수 있도록 열차시간표가 기재돼 있다. 

◆여러 종류의 수제맥주 맛보며 즐기는 '젊음의 향연'

지역 농산물을 원료로 만든 갖가지 수제맥주를 맛보며 음악을 즐기는 '2023 수제맥주&블루스 페스티벌'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 일대에서 개최됐다.

이 축제에서 판매된 모든 맥주는 군산 맥아를 주원료로 해 군산의 수제 맥주 양조장들이 만든 맥주로만 치러졌다. 또한 이번 행사는 친환경 축제로 만들기 위해 6개월 후 퇴비화가 가능한 100%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생분해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옆 주차장에서 열린 '2023년 수제맥주&블루스 페스티벌' 장소에서 각종 수제맥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옆 주차장에서 열린 '2023년 수제맥주&블루스 페스티벌' 장소에서 각종 수제맥주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원성훈 기자)

넓은 부지의 매머드 행사장에서는 여러 종류의 맥주를 즉석에서 만들어 줬고 맛나게 구운 촉촉한 오징어와 땅콩을 안주로 맥주잔을 기울이고 있다보면 젊은 대학생들이 주축이 된 밴드가 무대에서 흥겨운 노랫가락을 시전하고 일부 대학생들은 흥을 돋우기 위해 삐에로 등의 분장을 하고 무대 가운데를 누비면서 재미있는 멘트와 표정으로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린다.

흥겨운 기타 소리와 드럼 소리 및 고음 처리가 가능한 젊은 보컬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지면서 젊음의 향연은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대한제국에서 일제 강점기를 거쳐 현대의 역동적인 힘까지 모두를 보여줄 수 있는 문화·관광도시로 성장해가는 군산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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