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06.20 16:07

"학생들 몰리는 대학 잘 되고 그렇지 않은 대학 문 닫도록 해야"

(자료제공=KDI)
(자료제공=KDI)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수도권 대학교의 입학정원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일 발간한 '수요자 중심의 대학 구조개혁' 보고서에 따르면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4년제 일반대학의 재학생 수는 2014년 이후 줄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된다.

전망에 따르면 재학생 수는 2021년 142만명이었으나 약 20년 후인 2045년에는 69만~83만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게 된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의 어려움은 이미 가시화됐다. 신입생 충원율은 2021년 96.0%로 100%를 하회하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대학(사립 90.5%, 국립 97.0%)의 경우 충원율이 급락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대계열별로는 공학계열의 충원율이 94.5%로 가장 낮다.

인구 감소로 학생이 줄어들어 대학이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됐다. 김대중 정부 이래 모든 정부는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박근혜 정부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에 따라 2015년에 '대학구조개혁평가'를 실시하고 재정지원과 연계해 대학의 정원감축을 유도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8년과 2021년에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실시해 하위권 대학 중심으로 정원을 조정했다.

다만 교육부가 대학평가 및 재정지원과 연계해 대학에 정원감축을 요구하는 방식은 정치적 고려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고려로 인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권역별로 대학을 평가해 정원감축을 유도했다. 정원감축 대상 대학도 대폭 축소했다.

국가장학금 지급 및 재정지원 사업참여가 제한되는 대학을 '하위 대학'이라고 부를 때 하위 대학(일반+전문)의 수는 2015년 평가에서는 66개(D 및 E 등급)였으나 2018년 진단에서는 20개(재정지원 제한 대학 Ⅰ 및 Ⅱ)로 줄어들었고 2021년 진단에서는 17개로 줄었다. 이처럼 하위 대학의 수가 줄어들면서 정원감축 실적도 급감했다.

또 대학에 대한 규제와 간섭이 만연한 상황에서 현재의 방식은 대학의 자율과 창의를 더욱 침해하고 정부 의존성을 높일 우려가 있다. 현재의 방식이 인력공급을 왜곡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늘어나야 할 전공부문에 대한 판단을 정부가 주도하는 것보다 시장에 맡기는 편이 인력의 과잉 및 과소 공급을 줄이는 데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들은 특성화가 아닌 일률적 학과정원 감축으로 재학생 수 감소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대학교육의 질을 하락시킬 우려가 있다. 각 학과 안에 다양한 세부전공별 교수가 있어야 하는데 학과규모가 줄어들면 이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공급 측면에서는 교수들의 반발이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인 것으로 파악된다. 교수들의 반발을 극복하기 어려운 원인 중 하나는 대학 지배구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수들을 설득하고 리더십을 발휘할 경영진의 역할이 미흡하기 때문에 구조개혁이 지연된다는 것이다. 또 국립대학의 경우 정부가 예산과 교직원 고용을 보장해 주기 때문에 구조개혁 유인이 떨어진다.

수요 측면에서는 학생들이 충분한 정보 없이 성적에 맞춰 대학을 선택함으로써 성과가 낮은 대학이 구조조정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이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정부e브리핑 캡처)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이 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정부e브리핑 캡처)

고영선 KDI 선임연구위원(부원장)은 대학 구조개혁 과제에 대해 "등록금과 수도권 입학정원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며 "학생들의 선택을 받아 몰리는 대학은 잘 되고 그렇지 않은 대학은 문을 닫도록 해야 되는데 등록금이 워낙 낮은 수준에 묶여 있어 학생이 몰려도 그만큼 수익을 창출할 수가 없어 학교를 위한 재투자가 제대로 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학자금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장학금이나 대출과 같은 부분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대학에 직접 주지 말고 학생들을 통해서 준다면 학생들의 선택에 따른 대학의 발전도 기대할 수가 있고 소득이 낮은 학생들의 가계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도권 입학정원 규제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수도권 입학정원 규제의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지방에 있는 학생들이 아니다.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 보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입학정원이 묶여 있기 때문에 지방 학생들이 수도권으로 가기가 굉장히 어렵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야 될 자리에 중국 등 외국 유학생들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학생 수가 절반 정도로 줄면 비수도권에 있는 대학들은 국립이든 사립이든 사실 거의 살아남기 어려운 상황이 될 것"이라며 "모든 지방에 있는 대학들을 살릴 수는 없다는 것을 일단 인식해야 할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에서는 그래도 살아남을 대학을 빨리 선별해 브랜드를 쌓고 명성을 쌓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발로 하는 투표'를 통한 대학 구조개혁도 주문했다. 고 부원장은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했던 방식은 교육부가 중심으로 평가를 하고 정원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평가를 할 궁극적인 책임은 학생에 있다. 학생들이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학생들이 더 잘 판단할 수 있도록 취업률뿐만 아니라 연봉도 공개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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