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원성훈 기자
  • 입력 2023.06.23 11:55

"올해 서울 지역 15개 대학 중 14개 대학 수학 논술 문제서 교육과정 벗어난 문제 출제"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교육부)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AI 디지털교과서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제공=교육부)

[뉴스웍스=원성훈 기자]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준 킬러 문항'이나 '준준 킬러 문항'도 손보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더해 '논·구술 고사 문제'의 폐해도 거론되면서 입시 제도 전반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근본적으로 부수어야 한다는 여론이 서서히 힘을 받고 있는 양상이다. 

대학은 매년 수시모집에서 논·구술 전형을 통해 신입생의 4.2% 정도(2024년 대입 기준 1만1187명·종로학원 분석)를 선발한다. 시험은 국어·영어·수학·과학 등에서 나온 지문을 보고 정답을 약술 혹은 서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수도권 주요 대학과 지역거점국립대가 논·구술 전형을 시행하고, 학생부종합전형 등에 비해 내신 비중이 낮아 경쟁률도 높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3학년도 44개 대학의 논술 전형 경쟁률은 39.6대 1이었고, 소수를 뽑는 의예과 등 일부 인기 학과 논술 전형은 세 자릿수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는 다수의 논·구술 문제가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된다는 점이다. 교육부는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6년부터 선행학습 영향 평가를 하고 있다. 최근 5년간 고교 교육과정 수준과 범위를 벗어났다고 적발된 대학은 19개교다. 지난해엔 서울대, 연세대, 경희대 등 상위권 대학의 수학·영어·과학 8문항이 적발됐다. 하지만 구체적인 문항은 공개되지 않았다.

2012년부터 논·구술 문항의 교육과정 준수 여부를 검증해 온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2023학년도 입시에서도 서울 지역 15개 대학 중 14개 대학 수학 논술 문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됐다"고 주장했다.

연세대는 올해 수학 논술 고사에서 대학 교재로 쓰는 '적분과 측도 이론(An introduction to measure theory·테렌스 타오)' 등의 원문 일부를 번역해 출제했고, 서울대에선 세 번 합성한 함수를 다룬 문제가 출제됐다. 지난해 경희대 문제에선 고교 교육과정에 없는 기호(함수 아래 첨자)가 출제돼 논란이 됐다.

서울 대치동의 한 논술학원 관계자는 2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수리 논술을 치르려면 학원 수업은 사실상 필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전반적으로 손보지 않는 한 '언발에 오줌누기'로 끝날 수밖에 없다. 전반적인 교육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까닭에 서울 대치동의 유명 논술 학원은 서울대반·연고대반 등 대학별 학급을 편성해 한 달에 수십만원의 학원비를 받고 있다. 아울러 일부 학원 홈페이지에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석사, 물리학과 박사 출신 강사들에 대한 홍보가 깔려있다. 

공교육 범위 내에서 논술 입시를 대비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서울의 한 입시전문가는 "논술고사를 보려는 학생은 넘쳐나는데 학교별로는 10명도 안 되는 소수의 인원이 논술을 준비하므로 공교육 차원에서는 별도로 학습을 시킬 수 없다"고 밝혔다. 논술이 사실상 사교육업계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논술 시험에도 적용될지는 미지수다.

이런 가운데,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22일에서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방침을 확실히 했다. 그는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번 수능부터 킬러 문항은 일절 없을 것"이라며 "어떻게 아이들에게 교육과정에서 전혀 다루지 않은 내용을, 교수도 못 푸는 정도로 배배 꼬아서 낸 문항들이 있는지, 킬러 문항을 접해본 분들은 공분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이제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반드시 제거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람마다 킬러 문항 판단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지적엔 "최근 3년간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추려내고 있다"며 "오는 26일 예시를 공개해 '이런 것이 킬러 문항이구나'라고 바로 감이 오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어려운 문제를 내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교육과정 밖에 있는 것을 내선 안 된다는 것"이라며 "이건 결국 학부모, 학생을 불안하게 만들어 사교육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사교육 이권 카르텔의 대상은 우리 아이들"이라고 질타했다.

이 장관의 이 같은 언급은 결국 정부의 기본 방침이 교육과정 밖에 있는 문제들은 다루지 않을 것이고 교수도 못 풀 정도로 배배 꼬아서 출제하는 것은 반드시 배제하겠다는 원칙을 확고히 한 셈이다. 이를 통해 공교육만으로도 수능에 대비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고 결국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붕괴시키겠다는 의지로 읽혀진다.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킬러 문항'을 비롯해 '논·구술 고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적절하지 않은 점이 발견된다면 모든 문제점은 공교육 내에서 해결하겠다는 원칙 속에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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