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07.18 12:19

"바로 잡지 않을 경우 부당한 ISDS 제기 이어질 가능성 농후"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300억원이 넘는 돈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대해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승인 과정에서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투표 찬성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2018년 7월 우리 정부를 상대로 7억7000만달러의 국가 배상을 요구하는 ISDS를 제기했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의 7.12%를 보유하고 있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달 20일 엘리엇 측 주장 일부를 인용해 우리 정부가 엘리엇 측에 5358만6931달러(약 690억원, 원달러 환율 1288원 적용) 및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명했다.

엘리엇 청구액 중 약 7%가 인용됐는데 지연이자와 법률비용 등을 포함하면 우리 정부가 지급해야 할 금액은 13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법무부는 18일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정부대리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여러 차례에 걸친 심도 있는 논의 끝에 중재판정부가 한-미 FTA상 관할 인정 요건을 잘못 해석해 이 사건에서 관할을 인정했고, 이는 영국 중재법상 정당한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특히 "한-미 FTA상 ISDS 사건의 관할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일 것'(당국의 조치), '투자자의 투자와의 관련성이 있을 것'(관련성), '그 조치의 책임이 국가에 귀속될 것'(귀속)이라는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재지인 영국법상 중재판정에 대한 취소 소송은 관할 위반(중재합의 범위 일탈 등), 절차상 중대한 하자(그 하자로 중대한 부정의가 초래됐다는 등의 사정), 영국법위반 등을 이유로만 가능한 바 이 사안은 주로 '관할 위반'이 문제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우선 법무부는 삼성물산의 여러 소수주주 중 하나인 국민연금이 합병에 대한 자신의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다른 소수주주인 엘리엇의 투자에 대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중재판정부가 국민연금이 한국법상 국가기관은 아니나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의결권 행사에 대한 책임이 정부에 귀속된다고 판단한데 대해서는 "한-미 FTA가 예정하고 있지 않은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에 근거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또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낸 합병무효 소송과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국내 법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 등 위법행위가 있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는 점도 취소 소송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외에도 한-미 FTA의 일방 체약국인 미국 역시 이 사건 중재판정 과정에서 공식적으로 제출한 비분쟁당사국 의견서를 통해 한-미 FTA상 당국의 조치로 인정되는 '당국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비정부기관의 조치'는 '그 기관이 위임받은 정부적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포함하지 않는다고 밝힌 사실이 있다.

법무부는 "정부가 취소 소송을 제기해 바로 잡지 않을 경우 향후 우리 공공기관 및 공적 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부당한 ISDS 제기가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취소 소송을 제기하지 않을 경우 본건과 유사한 사실관계에 근거하여 절차가 진행 중인 관련 ISDS 사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있다는 정부대리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중재판정문상 명백한 계산상 오류와 불분명한 판시사항에 대한 시정을 구하고 법리적으로 잘못된 이 사건 판정을 바로잡아 국민의 소중한 세금이 헛되이 유출되지 않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법무부는 엘리엇 ISDS 사건 판정문에서 중재판정부의 명백한 계산상 오류와 불분명한 판시사항이 있음을 확인해 중재판정부에 판정에 대한 정정·해석 신청서도 제출했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는 판정 이유에서 엘리엇이 입은 손해액을 산정하기 위해서는 삼성물산이 합병 후에 엘리엇 측에 지급한 합의금을 '세전 금액'으로 공제해야 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계산 과정에서 위 합의금의 '세후 금액'을 공제한 명백한 계산상 오류가 확인돼 오류의 정정을 신청했다"며 "중재판정부의 계산상 오류로 정부가 부담할 손해배상금 원금이 약 60억원 이상 증가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중재판정부는 판정 이유에서 정부에게 손해배상금 원금에 대해 붙는 판정 전 이자(약 326억원 상당)는 '원화'로 지급해야 한다고 했지만 판정 주문에서는 이자를 '미화'로 지급해야 하는 것처럼 판시했기 때문에 판정 이유와 주문의 불일치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신청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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