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정은지 기자
  • 입력 2023.07.20 10:57

6가지 첨단 나노소재 기술 선보여

20일 개최한 '나노 테크데이' 행사 현장에서 현대차·기아 선행기술원장 이종수 부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20일 개최한 '나노 테크데이' 행사 현장에서 현대차·기아 선행기술원장 이종수 부사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뉴스웍스=정은지 기자] 직장인 A씨는 출근하려고 차를 봤더니 범퍼 쪽에 약간의 긁힘을 발견했다. 차에 적용된 셀프 힐링 기술 덕택에 곧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A씨는 전기차를 언제 충전했는지도 잊었다. 높은 효율의 태양전지가 차량 곳곳에 적용돼 있어 자체 생산한 전기로 출퇴근길 주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야외 주차장에 차를 댔다. 한여름이라 차 안이 엄청 더울 것 같았지만 글라스에 부착된 특수한 필름이 차 안을 한결 쾌적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꿈같은 기술들이 현대자동차와 기아의 '나노(Nano)' 소재 기술로 현실화할 전망이다.

현대차와 기아는 20일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나노 테크데이 2023'을 개최하고, 미래 모빌리티 실현의 근간이 될 나노 신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1nm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된다. 이렇게 작은 크기 단위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배열을 제어해 새로운 특성을 가진 소재를 만드는 것을 나노 기술이라 부른다.

현대차·기아 선행기술원장 이종수 부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기술 혁신의 근간에는 기초이자 산업융합의 핵심 고리인 소재 혁신이 먼저 있었다"며 "앞으로도 산업 변화에 따른 우수한 첨단 소재 기술을 선행적으로 개발해 미래 모빌리티에 적극 적용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와 기아가 공개한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 기술을 적용한 소재.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현대차와 기아가 공개한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 기술을 적용한 소재. (사진제공=현대차그룹)

◆고분자 코팅 기술 등 6개 기술 공개 나서

현대차·기아는 이날 각기 다른 목적과 활용도를 가진 총 6개의 나노 소재 기술을 소개하고 별도의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개발 중인 6개 기술은 ▲손상 부위를 스스로, 반영구적으로 치유하는 '셀프 힐링(Self-Healing, 자가치유) 고분자 코팅' ▲나노 캡슐로 부품 마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 ▲자동차와 건물 등 투명 성능 요구되는 모든 창에 적용 가능한 '투명 태양전지'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자랑하는 모빌리티 일체형 '탠덤(Tandem) 태양전지' ▲센서 없이 압력만으로 사용자의 생체신호를 파악하는 '압력 감응형 소재' ▲차량 내부의 온도 상승을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투명 복사 냉각 필름' 등이다.

현대차·기아는 1970년대부터 소재 연구를 시작해 왔으며, 1990년대 후반에는 첨단 소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갖추고 대규모 투자와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해 오고 있다.

특히 자율주행과 전동화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적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핵심 부품에 발생한 미세한 상처나 마모는 치명적 오류를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카메라와 라이다에 난 조그만 상처는 외부환경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지장을 초래한다. 또 대용량 모터의 초고속 회전으로 움직이는 전기차는 동력 부품의 내마모성과 내구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차·기아는 나노 소재를 활용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두 가지 고분자 코팅 기술을 선보였다.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은 차량의 외관이나 부품에 손상이 났을 때 스스로 손상 부위를 치유하는 기술이다. 상온에서 별도의 열원이나 회복을 위한 촉진제 없이도 두 시간여 만에 회복이 가능하고, 반영구적으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이 기술은 셀프 힐링 소재가 코팅된 부품에 상처가 나면 분열된 고분자가 화학적 반응에 의해 맞닿아 있던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성질을 활용한 것이다. 자율주행의 핵심 부품인 카메라 렌즈와 라이다 센서 표면 등에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에는 차량의 도장면이나 외장 그릴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0일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열린 '나노 테크데이 2023'에서 참가자들이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나노 신기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은 셀프 힐링의 또 다른 방식인 나노 캡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능성을 확장해 개발된 스핀 오프(spin-off) 기술이다. 이 기술은 부품에 저 마찰과 내마모성을 부여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킨다. 나노 캡슐이 포함된 고분자 코팅을 부품 표면에 도포하면 마찰 발생 시 코팅층의 오일 캡슐이 터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윤활유가 흘러나와 윤활막을 형성하는 원리다.

액체 윤활이 불가능한 부품에는 그리스(Grease)와 같은 반고체 윤활제가 적용되는데, 급유나 교환, 세정이 까다롭고 액체 윤활에 비해 냉각 효과가 적어 고속으로 회전되는 부품에는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오일 캡슐 기술은 액체와 고체 윤활제의 장점을 모두 갖춘 것이 특징으로, 발열과 마찰이 큰 차량의 핵심 동력 전달 부품에 적용하면 내구성과 효율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전기차 모터와 감속기어의 회전량 손실을 줄여 전비 개선을 도모하고 부품 수명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엔진의 구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드라이브 샤프트(Drive Shaft)에 이 기술을 적용해 양산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 중이다. 

탠덤 태양전지 셀과 모듈.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탠덤 태양전지 셀과 모듈. (사진제공=현대차그룹)

◆나노 소재 투명 태양전지…세계 최초 1.5W급 성능

현대차·기아가 이날 공개한 '투명 태양전지'는 우수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을 지닌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소재를 이용한 태양전지 기술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효율이 높아 태양전지로 제작했을 때 발전효율이 실리콘 태양전지 대비 30%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차·기아는 페로브스카이트의 또 다른 특징인 투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를 통해 광흡수층 두께 조절을 통해 태양광 발전과 물리적인 투명 상태 구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기존 셀 단위(1㎠) 소면적 연구에서 벗어나 대면적(200㎠ 이상)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듈 단위로 커진 상황에서도 1.5W급 성능을 보이는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한 것은 세계 최초다.

투명 태양전지는 차량의 모든 글라스에 적용돼 더 많은 발전량으로 전기차 효율을 극대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건물의 창문을 대체할 경우,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외관상으로도 크게 이질감 없는 건축 설계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현대차·기아는 현대건설 등과 함께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현대차·기아는 2022년 UNIST(울산과학기술원)와 공동연구실을 출범하고, 고효율의 탠덤 태양전지를 개발 중이다. 자체 시험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30% 이상에 달하는 에너지 효율을 기록했다.

회사 측은 친환경차의 후드, 루프, 도어 등 태양광을 직접적으로 많이 받는 부위에 탠덤 태양전지를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일상 주행이 가능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일 평균 태양광 발전만으로(국내 평균 일조량 4시간 기준) 20km 이상의 추가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투명 복사 냉각 필름 온도 비교. (사진제공=현대차그룹)
투명 복사 냉각 필름 온도 비교.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생체 신호 감지 시트, 실내 온도 낮추는 투명 필름 선보여

‘압력 감응형 소재’는 별도의 센서 없이 소재에 가해지는 압력을 전기 신호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로, 차량의 발열시트 폼(foam) 내부에 적용돼 탑승자의 체형 부위만 정확하게 발열시켜 준다. 소재 개발에는 탄소나노튜브(CNT)가 활용됐다.

현대차∙기아는 이 소재를 특수 용액에 균일하게 분산시켜 스펀지와 같은 시트 폼에 코팅하는 공정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다른 센서를 대신해 탑승자의 정확한 자세 감지가 가능하고, 호흡, 심박수와 같은 생체 신호를 감지해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회사 측은 예상했다.

마지막으로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은 차량의 유리에 부착돼 더운 날씨에도 별도의 에너지 소비 없이 차량 내부의 온도 상승을 낮추는 친환경 기술이다. 특히 차량의 글라스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양산성을 고려해 대면적화까지 성공한 사례는 현대차∙기아가 세계 최초다.

다층 필름 구조로 이뤄진 이 소재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과 같은 열을 차단하고 효과적인 복사 냉각을 위해 원적외선대의 열을 방사한다.

현대차∙기아가 실제 차량에 적용해 자체 시험한 결과에 따르면, 복사냉각 필름을 부착한 차량은 기존 틴팅 필름 적용 차량보다 최대 7도가량 실내 온도가 떨어졌다. 여름철 차량 탑승 직후 에어컨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어 차량 운행주기 탄소배출량은 약 0.3~0.8% 저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기아 기초소재연구센터장 홍승현 상무는 "오늘 공개된 나노 기반 기술들은 현대차그룹 소재 전문가들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며 "나노 소재 기술은 모빌리티 산업 변화를 선도할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현대차∙기아는 21일 열리는 ‘나노 테크데이 2023’ 2일차 행사에 소재 분야 전공 대학생들을 초청해 나노 소재에 대한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연구원들이 답하는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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