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07.20 13:56

녹십자·보령바이오파마·SK디스커버리 2011년 제재 받고도 또 가담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국가가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 백신구매 입찰에서 낙찰예정자, 들러리 등을 합의한 32개 사업자가 제재를 받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개 백신제조사(글락소스미스클라인)와 6개 백신총판(광동제약,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SK디스커버리, 유한양행, 한국백신판매), 25개 의약품도매상 등 총 32개 백신 관련 사업자들이 2013년 2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조달청이 발주한 170개 백신 입찰에서 사전에 낙찰예정자를 정하고 들러리를 섭외한 후 투찰할 가격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409억원(잠정금액)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20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이 담합한 대상 백신은 모두 정부 예산으로 실시되는 국가예방접종사업(NIP) 대상 백신으로 인플루엔자 백신, 간염 백신, 결핵 백신, 파상풍 백신, 그리고 자궁경부암 백신(서바릭스, 가다실), 폐렴구균 백신(신플로릭스, 프리베나) 등 모두 24개 품목에 이른다.

백신입찰 시장에서의 장기간에 걸쳐 고착화된 들러리 관행과 만연화된 담합 행태로 인해 입찰담합에 반드시 필요한 들러리 섭외나 투찰가격 공유가 용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낙찰예정자는 전화 한 통으로도 쉽게 들러리를 섭외할 수 있었고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반복적으로 수행함에 따른 학습효과로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 굳이 투찰가격을 알려주지 않아도 알아서 투찰함으로써 이들이 의도한 입찰담합을 쉽게 완성할 수 있었다.

낙찰예정자가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낙찰받기 위해 '기초금액'(조달청이 시장가격, 전년도 계약가 등을 참고해 검토한 가격으로 입찰참여자들은 상한가격으로 인식)의 100%에 가깝게 투찰하고 들러리는 이보다 몇 % 높게 투찰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정부조달방식이 바뀌자 담합참여자들도 변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가 생산하는 백신(자궁경부암 백신, 폐렴구균 백신 등)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제3자단가계약방식'(정부가 전체 백신 물량의 5~10% 정도였던 보건소 물량만 구매)에서 '정부총량구매방식'(정부가 연간 백신 전체 물량을 전부 구매)으로 조달방식을 변경하자 글로벌 제약사와 백신총판이 백신입찰담합에 참여하면서 글로벌 제약사가 직접 들러리를 섭외하고 백신총판이 낙찰예정자로 등장했다.

백신조달에 있어 기존 제3자단가계약방식에서는 의약품도매상끼리 낙찰예정자와 들러리 역할을 바꿔가면서 담합했으나 정부총량구매방식에서는 낙찰예정자가 의약품도매상이 아니라 백신총판이 된 것이다.

이 사건 담합으로 낙찰받은 147건 중 117건(약 80%)에서 낙찰률이 100% 이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통상적인 최저가 입찰에서 100% 미만으로 낙찰받는 것과는 달리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적발된 170건 중 23건은 유찰되거나 제3의 업체가 낙찰됐다.

녹십자, 보령바이오파마, 그리고 SK디스커버리(구 SK케미칼) 등 3개사는 인플루엔자 백신 담합으로 2011년 6월 제재를 받은 이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이 사건 입찰담합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1항 제8호(입찰담합)을 적용해 이들 업체에 시정명령(행위금지명령) 및 과징금 409억원 부과를 결정했다.

과징금은 에이치원메디 115억5200만원, 한국백신판매 71억9500만원, 정동코퍼레이션 43억400만원, 에이치엘비테라퓨틱스 40억6500만원, 새수원약품 34억5500만원, 녹십자 20억3500만원, 송정약품 16억9700만원, 팜월드 10억4100만원 등의 순으로 많이 부과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앞으로도 국민 건강에 필수적인 백신 등 의약품 관련 입찰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법 위반행위가 적발되는 경우 엄정한 조치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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