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상우 기자
  • 입력 2023.09.05 16:10

[뉴스웍스=김상우 기자] 유통업계 초 관심사였던 우윳값이 3000원 이하로 결정됐다. 최근 음용유용 원유 기본가가 리터(ℓ)당 88원(8.8%) 오른 1084원, 가공유용 원유 기본가는 ℓ당 87원(10.9%) 오른 887원으로 각각 책정된 것이다.

시장에서는 역대 최대치의 원윳값 인상이 이뤄진 만큼, 흰우유 1ℓ의 3000원 돌파가 기정사실이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서울우유협동조합은 흰우유 가격 인상을 최소화하겠다며 3000원을 넘기지 않았다.

3000원을 넘긴다면 정부 압박은 물론이요, ‘밀크플레이션’을 들먹일 여론 악화도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유업계 맏형의 이러한 결정에 매일유업과 남양유업, 빙그레 등도 3000원 이하의 ‘눈금 재기’에 나설 전망이다.

한편으로는 매년 반복된 우윳값 논쟁이지만, 정부와 유업계가 성공적 사례를 일궈낸 적이 있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우윳값 갈등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됐음에도, 출구전략을 제시하며 의미 있는 결과로 이어진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유업계가 처한 본질적 문제인 출산율 감소와 우유 소비 저하는 20년 전부터 계속 나왔던 얘기고, 정부의 낙농지원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수없이 들어온 터다.

서글픈 사실은 이러한 ‘공회전’ 덕분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세계 다섯 번째로 비싼 우유를 먹고 있다. 몇 년 뒤에는 한국산 우유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말까지 들을 판국이다.

특히 정부의 낙농업 정책은 차치하더라도, 국내 주요 유가공업체들의 행보에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내수 중심의 구조에 안주하다가 재도약의 시기를 번번이 놓친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한다.

네덜란드 협동조합은행인 라보뱅크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매출이 높았던 상위 20개 유가공업체들은 전년 대비 약 9%의 매출 증가를 맛봤다. 코로나 여파와 주요국의 유제품 소비 감소 등 우호적인 시장 환경이 아니었지만, 적극적인 인수합병과 신흥국 중심의 수출 증대, 식물성 대체 음료 개척 등 위기 극복을 위한 움직임이 좋은 결과로 나타났다.

주목할 점은 신성장동력으로 저마다 ‘정밀 발효’를 점찍고 있다는 것이다. 정밀 발효가 고도화되면 푸드테크로 확장할 수 있어 유가공 시장의 판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 역할까지 기대하고 있다.

물론 국내 유가공 업체들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수출 증대를 꾀하고 건강기능식품 등 사업다각화에 나서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나름대로 생존을 위한 고심의 흔적이 묻어있지만, 안타깝게도 후발주자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출 시장의 미미한 영향력은 내수 우윳값에 민감히 반응할 수밖에 없는 ‘밥그릇 싸움’으로 점철된다.

지난달 매일유업은 만 50세 이상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고 한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몸집 줄이기로 재무 부담을 줄이겠다는 판단이지만, 얼마나 큰 효과를 볼지 의문이다. 매출의 1%도 안 되는 연구개발비를 더 줄이겠다는 마당에 표면적 한계가 명백할 것이다. 

20년 넘게 위기에 처한 유업계의 현 상황은 결국 피할 수 없는 결과로 돌아오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조금씩 국산 우유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오는 2026년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수입산 우유가 무관세로 들어오면 국산 우유의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앞으로 남은 3년, 유업계의 판단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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