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문병도 기자
  • 입력 2023.09.07 12:14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높이 5.7m '입상'…발밑에 생령으로 청나라·조선 관리 배치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뉴스웍스=문병도 기자] 17세기에 조성된 '사천왕상' 8건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7일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 등 8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사천왕은 불교 우주관에서 세계 가운데에 있는 산인 수미산 중턱에 산다.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불국토를 지키다는 사천왕 중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맡는다. 사찰 정문인 일주문과 주불전인 대웅전을 연결하는 중심축에서, 사천왕상은 주불전으로 진입하기 직전인 천왕문에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갑옷을 입고 보검 등 지물을 들고 있다.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려 악귀 등 생령으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천왕상은 장흥 보림사 목조사천왕상 등 보물 3건을 포함해 현재 전국 20여 건이 전해지고 있다. 17세기부터 18세기 전반까지 조성되다가 불화 형태로 그려졌다. 전란 후 사찰 재건과정에서 불교 부흥이란 범불교적 역사적 소명을 담아 17세기에 집중적으로 조성됐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과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은 전란 후 벽암각성과 계특 대사가 사찰 복구 과정에서 조성한 것이다.

두 사천왕상 모두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제작된 의좌형 사천왕상이다. 중량감 있는 조형 감각, 사각형 주름진 큰 얼굴, 넓고 두텁게 표현된 콧방울 등은 동일 지역 내 17세기 전반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두 사천왕상 모두 발밑에 악귀 등 생령이 없는 게 특징이다.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도 전란 이후 벽암각성이 주요 전각을 순차적으로 중창하는 과정에서 조성한 것이다. 양식적 특징과 나무 나이테연대 분석 결과 17세기 중엽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 현전하는 사천왕상 중 매우 드문 입상이다. 5.7m에 이르는 최대 사천왕상이란 점에서 조형적으로 가치가 있다. 발밑에 생령으로 청나라 관리와 조선 관리를 등장시켰다. 이는 1636년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고 조선 탐관오리들에게 종교적 훈계와 교훈을 주고자 한 최초 조각이란 점에서 사회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으로는 드물게 발원문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1665년 완주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하던 단응, 탁밀, 경원, 사원, 법청 등 그의 유파 조각승을 초청해 조성한 것임이 밝혀졌다. 해당 사천왕상과 함께 방위가 적힌 묵서도 발견됐다. 그동안 논란이 됐던 사천왕상의 각 천왕별 방위도 파악됐다. 발원문을 통해 호남과 영남 조각승들의 불상 제작과 교류도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은 17세기 제작된 가장 이른 시기 목조사천왕상이다. 같은 전남 지역 화엄사, 흥국사 등의 사천왕상과는 전혀 다른 계통의 조각 양식을 띠고 있다. 천왕문 해체 복원 시 발견된 상량문, 복장발원문 등을 보면 1666년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나, 조각승은 밝혀지지 않았다. 개성적인 신체 비례, 곧은 자세에 정면을 향한 무표정한 얼굴, 단순하고 평면적 보관 등이 보인다. 가늘고 야윈 형태적 특징은 당시 궁핍한 백성들의 삶을 비교적 표현이 자유로운 사천왕상의 조형에 담은 것으로 이해될 여지가 있어 사회사적 관점에서도 연구 가치가 크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은 원래 전라북도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서 17세기 후반 제작됐다. 연기사 폐사로 설두선사가 1876년 영광 불갑사로 옮겼다. 여러 나무 조각을 접목해 전체 형태를 만들고 머리카락, 세부장식, 양감이 필요한 부분은 흙으로 제작해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적 특징을 보인다. 17세기 전반 중량감 있는 당당한 체격을 갖춘 사천왕에 비해 몸집이 정제돼 균형 잡힌 장신형으로 조형감각이 변모되고, 좁고 높은 화형 보관을 쓰고 있는 등 17세기 후반 조각적·예술적 양식을 갖고 있다. 원형 손상과 큰 변형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은 봉황문이란 현판이 달린 천왕문 안에 있다. 강원도에 현전하는 유일한 사천왕상이란 점에서 희소하고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다는 점에서 조각사적으로도 중요하다. 사적기를 통해 1676년 승려 여담이 조성했음이 확인된 17세기 후반 기준작이다. 조선 후기 사천왕상 형식과 양식 변천 이해에 귀중한 자료다. 규모는 작아도 여러 요소들이 세밀히 표현돼 우리나라 현전 사천왕상 중 세부 표현이 가장 뛰어나고 섬세하다.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사진제공=문화재청)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은 동방지국천왕 안에 남겨진 묵서를 통해 1683년 조성됐음이 확인된 작품으로, 사천왕상 편년 연구에 기준이 된다. 양식적 특징과 단응 유파가 제작한 영산전 과거칠불 등을 본면 이 사천왕상은 단응 유파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7세기 마지막 단계에 해당되는 소조기법으로 제작됐다. 직지사, 마곡사를 거쳐 예천 용문사 소조사천왕상으로 이어지는 단응계 사천왕상 양식 변화와 흐름을 연구할 수 있다. 17세기 사천왕 도상 및 조각 유파의 활동범위와 동향, 불상의 제작 방식과 제작 순서 등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문화제청은 지정 예고된 사천왕상들은 30일간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 수렴·검토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천왕상은 중요한 조각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 보존관리가 쉽지 않았으나 일괄 지정으로 환경적으로 열악한 문화유산에 대해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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