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운연 기자
  • 입력 2023.09.29 08:00

의무 아닌 '선택' 인식 확산…최효미 "부모급여 더 확대되면 정책 효과 포착 예상"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뉴스웍스=허운연 기자] 추석을 맞아 오랜만에 가족들과 친척들이 모였다. 과거보다는 나아졌지만 어김없이 '결혼은 언제할거냐'의 시간이다. 결혼을 했다면 '아이는 언제 가질 것이냐'는 압박이 따라온다. 

결혼과 출산에 대한 오지랖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명절 레퍼토리지만 우리나라는 혼인은 줄고, 출생아 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인구절벽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19만2000건으로 1년 전보다 800건(-0.4%)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른 참석인원 수 제한 등의 영향으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줄었던 혼인 건수가 작년에도 반등하지 못 했다. 다만 올해 1~7월 기준 혼인 건수는 11만5859건으로 1년 전에 비해 7805건(7.2%) 늘었다.

저출산 상황은 반전의 기미가 없다. 지난해 처음으로 25만명 아래로 떨어진 출생아 수는 올해도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40만명대를 유지했던 연간 출생아 수는 2017년(35만7800명) 30만명대로 떨어졌고 2020년(27만2337명)에는 3년 만에 30만명대가 무너졌으며 작년(24만9186명)에는 25만명을 미치지 못했다.

올해는 24만명도 위태롭다. 1~7월 출생아 수가 13만9445명으로 1년 전보다 9518명(-6.4%) 적은 만큼 남은 기간 반등하지 못하면 24만명에도 미치지 못하게 된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인 합계출산율은 올해도 역대 최저가 예상된다.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0명으로 1년 전에 비해 0.05명 감소해 2분기 기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1분기 합계출산율도 0.81명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2018년부터 0명대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유일하다.

우리나라가 저출산 극복을 위해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5년간 약 280조원에 달하는 예산을 투입했지만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일단 인식 자체가 크게 변했다. 청년에게는 더이상 결혼과 출산이 필수가 아니다. 통계청이 지난 8월 발표한 '사회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청년(19~34세)은 36.4%, 즉 3명 중 1명에 불과했다. 10년 전에만 해도 56.5%로 절반이 넘었다.

또 절반이 넘는 청년(53.5%)은 결혼 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2018년(46.4%)보다 소폭 늘어난 수치다.

'결혼을 안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미혼 남자는 '결혼자금 부족'이 40.9%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미혼 여자도 '결혼자금 부족'이 26.4%로 1위를 차지했다. '결혼 필요성 못느낌'은 23.7%로 2위에 자리했다.

이처럼 저출산 원인으로는 결혼과 출산 필요성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한몫한다. 종전에는 의무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선택일 뿐이다. 이에 더해 높은 주거 비용와 사교육비, 취업난 등 사회구조적 문제가 결혼을 막고 덩달아 출산율을 낮추고 있다. 특히 다락같이 오른 집값은 결혼을 망설이게 만든다. 주택 마련은 미혼 남녀의 결혼 이행뿐만 아니라 신혼부부의 출산 이행에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난 4월 대통령 직속기구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2023년 청출어람단 저출산 정책제안 청년토론회'에 참석한 청년 219명은 '저출산 대응을 위한 10개의 정책 중 가장 우선적으로 시행할 분야' 조사에서 주거 지원을 1순위 과제로 꼽았다.

이날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청년은 "주거 공간 마련의 기회가 있어야 청년이 자산 형성과 결혼·출산·육아를 계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공동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수혜 기간을 연장하며 결혼 적령기 청년들의 평균소득, 맞벌이 부부 평균소득 등을 고려해 주택 구입과 전세자금 대출 소득 기준을 완화할 것을 제안했다.

2024년도 정부예산안에 포함된 저출산 대응 '주거서비스' 대책. (자료제공=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2024년도 정부예산안에 포함된 저출산 대응 '주거서비스' 대책. (자료제공=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정부는 내년도 저출산 극복 관련 예산을 15조4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특히 신생아 특별공급을 신설해 연 7만 가구 수준으로 공급키로 했다.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출산 가구에 대해 주택구매 자금 대출 소득 기준을 현행 신혼부부 기준 7000만원 이하에서 1억3000만원까지 대폭 완화하고, 최저 수준 금리로 주택 구입 및 전세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현금성 지원도 확대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만 0세가 되는 아동은 월 100만원, 만 1세가 되는 아동은 월 50만원의 부모급여를 받는다. 올해는 0세 70만원, 1세 35만원이 지급됐다.

부모급여는 출산이나 양육으로 인한 소득 감소를 보전해 가정에서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장하고 양육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올해 1월부터 도입된 제도다.

최효미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초저출산 현상을 유발하는 원인은 매우 다양하나, 가장 주된 요인은 양육 비용 부담을 들 수 있다"며 "2023년생은 부모급여의 도입으로 수급 총액이 크게 상승했고 이로 인해 영유아 가구의 양육 부담 완화에 기여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정부가 내년 부모급여 지원 금액을 확대하는데 이처럼 부모급여가 더욱 확대되면 영아기 집중 투자에 따른 정책 효과를 보다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정책의 효과성 제고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자료제공=국회예산정책처)
(자료제공=국회예산정책처)

우리나라의 저출산 정책의 경우 현금성 지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23 정기국회·국정감사 한눈에 보는 재정·경제 주요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저출산 예산이 지속 증가했으나, 저출산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높은 가족지원예산은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OECD 국가간 비교 가능한 통계인 가족지원 예산의 GDP 대비 비중을 보면 우리나라는 1.56%로 OECD 평균 2.29%에 비해 낮다. 아동수당, 육아휴직급여 등 현금성 지급예산도 우리나라는 GDP 대비 0.32%로 OECD 평균 1.12%의 약 30% 수준에 그친다.

박선권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주요국 중 최저 수준인 가족지원의 정상화와 경제적 불확실성의 해소를 지향해야 한다"며 "청년들의 귀속적·성취적 지위에 따른 사회경제적 격차가 결혼·출산·양육에서의 중첩된다. 결혼·출산 선택과 양육에서 계층화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물론 '골든타임'이 지났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이미 경쟁이 치열해지고 계층화가 뚜렷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불과 몇 년 전 열풍이 불었던 '빚투', '영끌' 등의 단어는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반영한다. 단순히 직장을 다니며 받는 월급으로는 내 집 구매와 같은 재산 형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청년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MZ세대 관점으로 본 진단과 해법' 토론회에서 한명진 한성대 교수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으로 출산을 하지 않는 가정도 있다"며 "저출산 대응 정책의 핵심은 결혼과 출산을 선택의 문제로 보는 현재 세대의 인식과 의견을 고려해야 한다. 경제적 문제와 장시간의 노동이 필수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라는 것을 해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는데 굳이 아이를 가져야 할까. 내가 행복한 것과 자식이 행복한 것은 다르지 않겠느냐"며 결혼 4년 차에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는 한 부부의 말이 대한민국의 현재를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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